외면당한 존재들에게 보내는 거장의 따뜻한 시선…영화 '괴물'
입력
수정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신작…아동 성소수자 얽힌 사건 그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신작 '괴물'은 제목 그대로 괴물 같은 역작이다.
사카모토 유지의 각본을 토대로 한 이 영화는 일본의 작은 마을에 사는 두 소년이 태풍이 몰아치는 날을 전후해 겪는 이야기로 요약된다. 그러나 둘만이 아는 비밀에 가닿기까지의 여정은 그리 간단치 않다.
관객은 영화 속에서 벌어지는 사건의 실체를 파악하려 애써보지만, 극이 전개될수록 더 깊은 미궁에 빠지게 된다.
비로소 진실을 마주하고 난 뒤에는 둔기에라도 맞은 듯 뒤통수가 얼얼한 기분이 들 수도 있다. 두 소년이 그렇게 찾는 괴물이 다름 아닌 우리를 가리킨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기 때문이다.
"나는 절대로 쓸 수 없을 플롯"이라던 고레에다 감독의 말처럼 '괴물'은 구조나 디테일 면에서 그의 기존 작품들과 차이가 있다.
지루할 틈 없이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한 채 극을 끌고 가는 힘도 각본에서 나온다. 세계 최고 영화제라는 칸국제영화제에서 각본상을 받은 작품답다.
그러나 이 영화를 완성하는 것은 고레에다 감독의 따뜻한 시선이다.
특히 후반부에선 소년들에 대한 애정이 화면에 뚝뚝 묻어난다. 위기 가정 아동, 미혼모, 이복 자매, 비혈연 관계 가족 등 다양한 소수자들의 삶을 비춰온 고레에다 감독은 이번에는 좀 더 구석진 곳으로 눈길을 보낸다. 영화는 장(章)을 명시하지는 않지만, 내용상 1∼3장으로 구성됐다.
같은 기간 벌어진 일련의 사건을 각기 다른 인물의 시선으로 보여주는 방식이다.
주인공은 같은 반인 초등학교 5학년생 미나토(구로카와 소야 분)와 요리(히이라기 히나타)다.
미나토의 엄마 사오리(안도 사쿠라) 관점으로 전개되는 1장은 미나토의 이상행동을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췄다.
지극히 평범했던 미나토는 어느 날 갑자기 혼자서 머리를 자르고, 달리는 차에서 뛰어내리는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을 한다.
학교에서 귀를 다치거나 챙겨간 물병에 흙이 가득 담겨 돌아오는 일도 벌어진다.
사오리는 아들이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한다.
미나토는 그제야 담임교사인 호리(나가야마 에이타)에게 체벌받아 왔다고 털어놓는다.
학교에 찾아간 사오리에게 하는 수 없이 사과하는 듯한 호리의 태도를 보면 이 영화의 '나쁜 놈'은 그가 분명할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하지만 호리 입장을 담은 2장이 펼쳐지면서 누가 악인인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2장에서 미나토는 반 친구들을 벌벌 떨게 할 만큼 폭력 성향이 강한 아이로 묘사된다.
심지어 반에서 가장 약한 요리를 타깃으로 삼은 것처럼 보인다. 그는 체벌 피해자일까 아니면 학교폭력 가해자일까.
거듭되는 수수께끼는 3장에 이르러서야 풀린다.
미나토와 요리가 서로에게 친구 이상의 감정을 느끼는 사이라는 게 드러나면서다.
둘은 성정체성에 대한 고민과 알 듯 말 듯 한 사랑으로 방황했을 뿐이다.
아동 성소수자는 우리 사회에서 가시화되지 않은 약자 중 하나다.
어딘가에 분명히 존재할 이들을, 어른인 우리가 너무 외면해왔다고 고레에다 감독은 말하는 것 같다.
두 소년을 둘러싼 엉뚱한 오해들이 만들어진 것도 어른의 시각이 개입하면서부터다.
이 영화에는 괴물이라고까지 탓할 만한 인물은 거의 없다.
하지만 두 소년은 폭력적인 상황에 끊임없이 노출된다.
'일반적인' 세계가 익숙한 어른들이 별생각 없이 뱉은 말의 토대 위에서, 미나토와 요리는 자신들의 세상을 '비정상'으로 간주하게 된다.
두려운 마음은 자학과 위악도 낳는다.
악의가 없는 행동이라 할지라도 누군가에게는 깊은 상흔을 남기곤 한다.
고레에다 감독은 '괴물'을 통해 나도 모르는 사이 일어나는 가해와 피해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한다.
좀 더 그럴듯한 어른이 돼 아이들의 순수를 지켜주자 당부하는 것처럼 들린다.
이런 점에서 고레에다 감독의 전작 '아무도 모른다'(2005)가 떠오르기도 한다.
하지만 '괴물'은 비교적 고발적 성격이 옅고 드라마는 강하다.
특히 엔딩은 한바탕 꿈처럼 풀어내 해석의 여지를 남긴다. 올해 3월 별세한 사카모토 류이치의 음악은 이 영화의 마지막 퍼즐을 맞춘다.
때로는 애연하게, 때로는 싱그럽게 스토리 전개를 돕는다.
대표곡 '아쿠아'(Aqua) 등 기존 음악과 새로 만든 곡을 조화롭게 배치했다.
사카모토는 세계적인 거장들과 여러 차례 협업한 음악가지만, 고레에다 감독 작품에 참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괴물'은 그의 유작이기도 하다.
고레에다 감독은 누구도 사카모토 음악을 대체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에게서 거절당하면 영화의 근본적인 발상부터 바꿔야 할 수준이었다고 한다.
다행히 사카모토는 작품 제안을 수락했고 편지로 의견을 주고받으며 음악을 완성해갔다.
고레에다 감독은 최근 국내 언론과 한 화상 간담회에서 "'괴물'이 사카모토의 유작이 돼 매우 안타깝다"며 "그분의 작업에 내 영화가 조금이라도 관여된 것은 큰 긍지"라고 감사를 표했다. 29일 개봉. 127분. 12세 이상 관람가.
/연합뉴스
사카모토 유지의 각본을 토대로 한 이 영화는 일본의 작은 마을에 사는 두 소년이 태풍이 몰아치는 날을 전후해 겪는 이야기로 요약된다. 그러나 둘만이 아는 비밀에 가닿기까지의 여정은 그리 간단치 않다.
관객은 영화 속에서 벌어지는 사건의 실체를 파악하려 애써보지만, 극이 전개될수록 더 깊은 미궁에 빠지게 된다.
비로소 진실을 마주하고 난 뒤에는 둔기에라도 맞은 듯 뒤통수가 얼얼한 기분이 들 수도 있다. 두 소년이 그렇게 찾는 괴물이 다름 아닌 우리를 가리킨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기 때문이다.
"나는 절대로 쓸 수 없을 플롯"이라던 고레에다 감독의 말처럼 '괴물'은 구조나 디테일 면에서 그의 기존 작품들과 차이가 있다.
지루할 틈 없이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한 채 극을 끌고 가는 힘도 각본에서 나온다. 세계 최고 영화제라는 칸국제영화제에서 각본상을 받은 작품답다.
그러나 이 영화를 완성하는 것은 고레에다 감독의 따뜻한 시선이다.
특히 후반부에선 소년들에 대한 애정이 화면에 뚝뚝 묻어난다. 위기 가정 아동, 미혼모, 이복 자매, 비혈연 관계 가족 등 다양한 소수자들의 삶을 비춰온 고레에다 감독은 이번에는 좀 더 구석진 곳으로 눈길을 보낸다. 영화는 장(章)을 명시하지는 않지만, 내용상 1∼3장으로 구성됐다.
같은 기간 벌어진 일련의 사건을 각기 다른 인물의 시선으로 보여주는 방식이다.
주인공은 같은 반인 초등학교 5학년생 미나토(구로카와 소야 분)와 요리(히이라기 히나타)다.
미나토의 엄마 사오리(안도 사쿠라) 관점으로 전개되는 1장은 미나토의 이상행동을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췄다.
지극히 평범했던 미나토는 어느 날 갑자기 혼자서 머리를 자르고, 달리는 차에서 뛰어내리는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을 한다.
학교에서 귀를 다치거나 챙겨간 물병에 흙이 가득 담겨 돌아오는 일도 벌어진다.
사오리는 아들이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한다.
미나토는 그제야 담임교사인 호리(나가야마 에이타)에게 체벌받아 왔다고 털어놓는다.
학교에 찾아간 사오리에게 하는 수 없이 사과하는 듯한 호리의 태도를 보면 이 영화의 '나쁜 놈'은 그가 분명할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하지만 호리 입장을 담은 2장이 펼쳐지면서 누가 악인인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2장에서 미나토는 반 친구들을 벌벌 떨게 할 만큼 폭력 성향이 강한 아이로 묘사된다.
심지어 반에서 가장 약한 요리를 타깃으로 삼은 것처럼 보인다. 그는 체벌 피해자일까 아니면 학교폭력 가해자일까.
거듭되는 수수께끼는 3장에 이르러서야 풀린다.
미나토와 요리가 서로에게 친구 이상의 감정을 느끼는 사이라는 게 드러나면서다.
둘은 성정체성에 대한 고민과 알 듯 말 듯 한 사랑으로 방황했을 뿐이다.
아동 성소수자는 우리 사회에서 가시화되지 않은 약자 중 하나다.
어딘가에 분명히 존재할 이들을, 어른인 우리가 너무 외면해왔다고 고레에다 감독은 말하는 것 같다.
두 소년을 둘러싼 엉뚱한 오해들이 만들어진 것도 어른의 시각이 개입하면서부터다.
이 영화에는 괴물이라고까지 탓할 만한 인물은 거의 없다.
하지만 두 소년은 폭력적인 상황에 끊임없이 노출된다.
'일반적인' 세계가 익숙한 어른들이 별생각 없이 뱉은 말의 토대 위에서, 미나토와 요리는 자신들의 세상을 '비정상'으로 간주하게 된다.
두려운 마음은 자학과 위악도 낳는다.
악의가 없는 행동이라 할지라도 누군가에게는 깊은 상흔을 남기곤 한다.
고레에다 감독은 '괴물'을 통해 나도 모르는 사이 일어나는 가해와 피해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한다.
좀 더 그럴듯한 어른이 돼 아이들의 순수를 지켜주자 당부하는 것처럼 들린다.
이런 점에서 고레에다 감독의 전작 '아무도 모른다'(2005)가 떠오르기도 한다.
하지만 '괴물'은 비교적 고발적 성격이 옅고 드라마는 강하다.
특히 엔딩은 한바탕 꿈처럼 풀어내 해석의 여지를 남긴다. 올해 3월 별세한 사카모토 류이치의 음악은 이 영화의 마지막 퍼즐을 맞춘다.
때로는 애연하게, 때로는 싱그럽게 스토리 전개를 돕는다.
대표곡 '아쿠아'(Aqua) 등 기존 음악과 새로 만든 곡을 조화롭게 배치했다.
사카모토는 세계적인 거장들과 여러 차례 협업한 음악가지만, 고레에다 감독 작품에 참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괴물'은 그의 유작이기도 하다.
고레에다 감독은 누구도 사카모토 음악을 대체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에게서 거절당하면 영화의 근본적인 발상부터 바꿔야 할 수준이었다고 한다.
다행히 사카모토는 작품 제안을 수락했고 편지로 의견을 주고받으며 음악을 완성해갔다.
고레에다 감독은 최근 국내 언론과 한 화상 간담회에서 "'괴물'이 사카모토의 유작이 돼 매우 안타깝다"며 "그분의 작업에 내 영화가 조금이라도 관여된 것은 큰 긍지"라고 감사를 표했다. 29일 개봉. 127분. 12세 이상 관람가.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