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 트럼프' 속속 집권…지구촌 극우 포퓰리즘 재부상

아르헨 대선, 극우 밀레이 당선…네덜란드 총선서 극우 자유당 압승
변방 머물던 극우정당, 反이민 정서 편승해 권력 심장부로
'아르헨티나판 트럼프', '네덜란드판 트럼프'….
강경한 반(反)이민 정책과 극단적인 자국 우선주의를 앞세운 정치 세력이 지구촌 곳곳에서 속속 집권에 성공하는 등 극우 포퓰리즘의 물결이 다시금 넘실대고 있다. 재임 시 '아메리칸 퍼스트'를 내세우며 국제질서를 뒤흔든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1년 앞으로 다가온 미국 대선에서 지지율 1위를 달리며 호시탐탐 복귀를 노리고 있는 가운데,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닮은 꼴'로 평가받는 정치인들이 잇따라 선거에서 승전보를 전하며 극우 물결에 힘을 보탰다.

'아르헨티나의 트럼프'로 불리는 하비에르 밀레이(53)는 지난 19일(이하 현지시간) 치러진 아르헨티나 대선에서 집권 좌파 후보를 꺾고 당선되는 파란을 일으켰다.

기성정치권에 대한 민심 이반을 등에 업고 혜성처럼 떠오른 그는 아르헨티나 페소화를 달러로 대체하는 달러화 도입, 중앙은행 폐쇄, 장기 매매 허용 등 과격한 공약으로 승리를 일궜다.
지난 22일 치러진 네덜란드 조기 총선에서는 '네덜란드판 트럼프'로 불리는 헤이르트 빌더르스(60) 자유당(PVV) 대표가 돌풍을 일으켰다.

자유당은 강력한 반이슬람 정책과 망명 허용 중단을 주장하는 극우 정당으로, 전체 하원 150석 가운데 37석을 확보해 제1당으로 뛰어올랐다.

연정 구성까지 험로가 예상되긴 하지만, 깜짝 압승으로 연정 구성의 주도권을 쥐게 된 만큼 빌더르스 대표가 총리직에 오를 가능성도 점쳐진다. 빌더르스 대표까지 집권에 성공하면 최근 유럽에서 뚜렷이 감지되고 있는 극우 바람의 위력은 더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유럽연합(EU) 3위 경제 대국인 이탈리아에서는 작년 10월 '여자 무솔리니'로 불리는 극우 성향의 조르자 멜로니 총리가 취임해 이미 1년 넘게 국정을 이끌고 있다.

그는 전통적인 가족관, 반이민 정책 등으로 보수층의 뜨거운 지지를 받으며 입지를 굳혔다. 헝가리에서는 반이민 정책, 언론·사법부에 대한 정부 통제 강화로 '동유럽 트럼프'로 불리는 오르반 빅토르 총리가 2010년부터 4차례 연임하면서 장기 집권 중이다.

친러시아 성향의 그는 그동안 EU가 러시아에 제재를 부과할 때마다 앞장서 제동을 거는 등 서방과 사사건건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나치즘의 역사로 극우가 금기시돼 온 독일에서도 이민자에 대한 혐오를 공공연히 드러내는 극우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지난 9월 여론조사에서 21%로 지지율 2위로 뛰어올랐다.

AfD는 집권 연정 한축인 중도좌파 사회민주당(SPD·사민당)을 앞지르는 한편 중도우파 기독민주당(CDU·기민당)에도 불과 4%포인트만 뒤처졌다.

2000년 오스트리아 연정의 한축으로 자리매김하면서 유럽을 충격에 빠뜨린 오스트리아 극우정당 자유당도 반이민, 반이슬람 정서를 등에 업고 현재 오스트리아에서 지지율 선두를 달리고 있다.

이밖에 올해 유럽 주요국 선거에서도 반난민을 기치로 내건 극우·우파 정당의 약진은 두드러졌다.

지난 달 스위스 총선에서는 우익 성향의 제1당 스위스국민당(SVP)이 62석을 확보, 41석을 얻은 좌파 사회민주당(SP)을 누르고 승리했다.

스위스국민당은 급증하는 이민자 유입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겠다는 정책 노선을 선거 내내 내세웠다.

지난 4월 핀란드 총선에서는 극우 핀란드인당이 46석을 얻어 2당으로 약진, 1당인 중도우파 국민연합당(48석)과 연립정권을 세워 집권 세력으로 발돋움했다.

이처럼 세계 곳곳에서 극우 포퓰리즘이 재부상하는 것은 코로나19 대유행(팬데믹) 종식 이후 이민자들이 대거 유입되고 있는 상황에 대한 반발이 자리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팬데믹 종식으로 여행 제한이 풀린 데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로 유럽으로 이민·난민이 밀려들면서 사회 불안, 주택 부족, 건강보험 부담 등이 가중되자 이에 불만을 가진 유권자들이 반이민을 내세운 극우 정당으로 쏠리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에서 부유한 국가로 이주한 이민은 전년 대비 약 500만명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코로나19 이전보다 80% 정도 증가한 수치다.

가령, 네덜란드의 경우 작년 이민자 순유입이 22만명에 달해 전년 대비 2배 이상 증가했다.

독일의 경우 올해 망명신청 건수가 30만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 같은 건수는 유럽이 난민 위기로 신음하던 2015∼2016년 이후 최대치이다.

WSJ은 2015∼2016년 유럽과 미국으로의 이주민 급증은 대중들의 반이민 정서의 자양분이 되며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으로 이어졌다고 지적했다.

변방에 머물던 유럽 극우 포퓰리즘이 세를 불린 데에도 시리아 내전 악화 등으로 100만명이 넘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 규모의 이주민이 밀려들며 난민 위기가 절정에 달한 2015년 이후 각국에 반이민 정서가 팽배한 것이 계기가 됐다.

이들 정파는 팬데믹 기간에 안정적 행정력을 앞세운 기성정치로 민심이 기울어지자 다소 힘이 빠지는 듯했으나, 팬데믹이 끝난 뒤 이민자 급증과 함께 다시 기지개를 켜고 권력의 심장부 진출을 속속 타진하고 있다.

최근 몇 달 동안 지중해를 건너 유럽으로 유입되는 이주민과 멕시코 국경을 통해 미국으로 넘어가는 이주민이 치솟고 있는 것을 고려하면, 극우 바람은 향후 더 거세질 수도 있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현재 같은 분위기라면 내년 6월 치러지는 유럽의회 선거에서도 극우 세력의 약진이 두드러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영국 시사주간 이코노미스트는 EU 두 번째 대국인 프랑스에서도 2027년 대선에서 극우 성향의 마린 르펜 국민연합(RN) 의원이 승리할 수도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2017년과 지난해 대선 결선 투표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에게 패한 그는 프랑스 내 이민, 안보, 생활비 등의 문제가 점점 심각해지면서 최근 지지율을 끌어올리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