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속 나무들은 영화 '아바타'처럼 모두 연결돼 서로 돕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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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나무를 찾아서영화 ‘아바타’에서 숲은 그야말로 살아 있다. 깊은 곳에 신성한 나무인 ‘영혼의 나무’가 있고, 이를 매개로 모든 생명체가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소통한다.
수잔 시마드 지음
김다히 옮김/사이언스북스
576쪽|2만5000원
단순히 상상의 산물이 아니다. 영화에 영감을 준 과학자가 있다. 바로 ‘어머니 나무 가설’을 창안한 수잔 시마드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대 삼림생태학 교수다. 올해 63세인 시마드는 이 대담한 주장을 내놓기까지의 여정과 개인적인 삶의 이야기를 담은 회고록 <어머니 나무를 찾아서>를 2021년 펴냈다. 그 책이 최근 한국에도 나왔다. “나는 야생으로부터 났다. 나는 야생에서 왔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그도 그럴 것이 시마드가 태어나고 자란 캐나다 서부의 모나쉬 산맥은 광활한 대자연의 한복판이었다. 대대로 나무를 벌목해 먹고 사는 집안이었다. 대학에 갈 때가 되자 자연스럽게 산림학을 택했고, 일찍이 벌목회사에 취직했다. 벌목회사는 오래된 나무를 베어내고 어린나무를 심었다. 정원처럼 변했다. 적당히 간격을 띄우고 가로세로 줄을 세워 심었기 때문이었다. 햇빛과 양분을 놓고 경쟁하지 않으면 나무들이 더 빨리, 더 강하게 자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새로 심은 묘목들은 고전했다. 쉽게 말라 죽었고, 쉽게 병에 걸렸다.
‘더글러스 전나무’라고도 하는 미송(美松)은 단단하고 긴 목재를 얻을 수 있어 목재회사들이 선호한다. 그런데 근처의 사시나무, 자작나무, 미루나무를 없앨 때마다 미송 묘목 10개 중 1개 꼴로 병에 걸렸다. 시마드는 이런 현상을 눈여겨보다 연구를 시작했다. 과학저널 ‘네이처’의 1997년 8월호 커버에는 나무가 울창한 숲 사진을 배경으로 ‘우드 와이드 웹’이란 글자가 적혀 있다. 자작나무와 미송이 경쟁 관계가 아니라 서로 돕는 관계라는 시마드의 논문을 표지 기사로 게재한 것이었다. 깜짝 놀랄만한 연구 결과였다. 전 세계에서 인터뷰 요청이 쇄도했다.
시마드의 연구에 따르면 오래된 숲에는 나무와 나무, 나무와 숲을 연결하는 네트워크가 존재한다. 인간이 ‘월드 와이드 웹(WWW)’을 통해 정보를 주고받듯, 나무들도 이 우드 와이드 웹을 통해 서로 속삭인다. 오래된 나무들은 가장 큰 소통 허브가 된다. 탄소와 질소 같은 영양분도 주고받는다. 햇빛을 잘 받는 키 큰 나무가 광합성으로 만든 영양분을 햇빛을 잘 못 받는 나무에 나눠주는 식이다.
시마드는 실험으로 이를 보여줬다. 광합성 산물인 탄소를 방사성 동위 원소로 표시한 다음 흐름을 쫓았다. 자작나무에서 만들어진 탄소가 미송으로, 미송에서 만들어진 탄소가 자작나무로 이동한 것을 확인했다. 매개체는 버섯, 곰팡이와 같은 진균이다. 곰팡이는 균사체라 불리는 실처럼 가는 형태로 땅속에 자라는데, 나무들의 뿌리를 서로 이어준다. 그리고 이 네트워크 속에 어머니 나무가 있다. “오래된 나무들은 어린나무들을 양육하고 인간이 아이들을 기르는 것과 똑같이 어린나무에 음식과 물을 준다.”
시마드는 오래된 나무로 이루어진 생태계가 흡수하는 이산화탄소량이 더 많다고 했다. 화재 위험도 감소한다고 했다. 어린나무가 탄소를 더 잘 흡수하는 까닭에 노목을 베고 묘목을 심는 것을 장려했던 삼림 정책과 반대되는 주장이다. 나무의 상생과 공존은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줬다. 2019년 퓰리처상을 받은 소설 <오버스토리>는 원시림을 구하기 위해 모여든 9명의 이야기를 다룬다. 중심 인물인 나무 과학자 패트리샤 웨스터퍼드의 실존 모델이 시마드다. 2015년 독일에서 베스트셀러였던 <나무 수업>도 어머니 나무 가설을 바탕으로 한 인문 에세이다. 다만 어머니 나무는 아직 과학계에서 논란이 많은 가설이다. 올해 2월 ‘네이처 생태학과 진화’ 저널에 실린 논문은 어머니 나무가 땅 속의 진균 네트워크를 통해 주변 나무를 돕는다는 일관된 증거를 찾기 어렵다고 했다. 지난 9월 과학 저널 ‘식물과학 동향’에도 이 가설을 반박하는 논문이 실렸다. 논문의 저자들은 “어머니 나무라는 개념은 식물을 의인화하려는 욕구에서 비롯됐을 수 있다”며 “이는 오해와 잘못된 해석으로 이어져 산림 보호에도 해를 끼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책은 감동적인 이야기를 전하지만, 과학적인 주장에 있어선 검증이 다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을 주의할 필요가 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