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KPGA 주인공, 선수들에게 돌려줄 때

'회장 경선'에만 올인한 KPGA
축하받지 못한 선수와 후원사들

조수영 문화부 기자
올해 한국 골프의 남녀 정규투어가 지난 12일 시즌 최종전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시즌이 끝난 자리, 한국프로골프(KPGA)코리안투어와 한국여자프로골프(KPLGA)투어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였다. KLPGA는 20일 시상식을 열어 한 해를 빛낸 선수들에게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비췄다. 반면 KPGA는 연말께나 대상 시상을 할 예정이다. 선수들로서는 시즌이 끝나고 50여 일이나 지나 김빠진 잔칫상을 받는 셈이다.

KPGA의 문제는 ‘차기 회장 선출’이라는 블랙홀에서 시작됐다. 11년 만에 KPGA 수장을 추대가 아니라 경선으로 선출한 탓이었다. 사연은 이렇다. 올해 임기가 끝나는 KPGA 현 회장인 구자철 예스코 회장은 일찌감치 연임 의사를 밝혔다. 여기에 김원섭 풍산그룹 고문이 출마를 선언하며 경선 레이스가 시작됐다.문제는 ‘회장 선출’이라는 정치적 이슈에 KPGA의 실질적 주인인 선수와 스폰서들이 가려져 있었다는 것. 통상 시즌 하반기 투어는 상금왕, 대상 등 개인 타이틀을 둘러싼 톱랭커 선수들의 경쟁이 뜨거워진다. 하지만 올해 KPGA엔 어떤 선수도 눈에 띄지 않았다. 베테랑 박상현이 역대 최고 상금에 도전하는 것도, 함정우가 올 시즌 안정적 활약으로 타이틀 스폰서인 ‘제네시스 대상’에 다가가는 것도 가려졌다.

스폰서도 마찬가지다. 제네시스는 매년 거액을 들여 대상 포인트에 ‘제네시스 포인트’라는 타이틀을 붙여 후원한다. 올해 계약이 끝나지만 상반기를 훌쩍 넘겨서까지 협회는 계약 연장에 대해 후원사에 어떤 제안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다음 시즌 KPGA의 흥행 여부는 스타 선수와 스폰서에 달렸다. 하지만 하반기 내내 “어느 후보 뒤에 누가 있고, 누가 누굴 위해 뛰고 있다”는 말만 무성했다. 협회는 최근까지도 현직 회장이자 차기 회장 후보인 구 회장의 치적을 포장한 자료를 잇따라 냈다. 씁쓸했던 경쟁 구도는 지난 23일 경선으로 일단락됐다. 승자는 김 고문이었다.

KPGA가 처한 상황이 녹록지 않다. 한국 프로골프에선 다른 프로 스포츠와 다르게 유독 남자들이 힘을 못 쓴다. KPGA 측은 ‘스타 선수 부족’ ‘스폰서와 팬들의 무관심’ 때문이라고 호소한다. 하지만 팬들과 골프업계 시선을 투어로 끌어들이려는 노력과 역량이 KLPGA투어에 크게 밀린다는 것을 이번 경선이 여실히 보여줬다. 김원섭 당선자는 코리안투어·2부·챔피언스투어의 경쟁력을 끌어올리겠다고 약속했다. 그 약속이 지켜지려면 선수들이 주인공으로 서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그의 당선 일성이 얼마나 지켜질지에 한국 남자골프의 미래가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