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못하는 '영어 챗봇'…요금 묻자 "무슨 말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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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터지는 공공기관 IT서비스스위스 국적의 유학생 샘 바움리(25)는 지난 2일 고국에서 온 택배를 받으려고 세관 시스템에 접속했다가 곤욕을 치렀다. 온라인 세관 신청 서비스를 제공하는 모바일 관세청 앱과 유니패스(국가관세종합정보) 웹사이트에 접속했지만 두 곳 모두 외국어 서비스를 지원하고 있지 않았다. 그는 한국인 친구에게 도움을 받고 나서야 택배를 받을 수 있었다.
폰 개통 안하면 본인인증 못해
사용자 이름 한글로만 적는 곳도
국내에 장기 체류 중인 외국인들이 공공 온라인 서비스를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체류 외국인은 2022년 기준 224만 명, 방한 외국인은 지난 9월 기준 109만 명에 달하지만 이들을 위한 정보기술(IT) 인프라 마련은 제자리걸음을 하는 모양새다.외국인이 넘어야 할 첫 번째 ‘허들’은 본인 인증이다. 온라인에서 본인 인증을 하려면 공동인증서나 자기 명의의 휴대폰이 필요하다. 외국인은 외국인등록증을 발급받아야만 휴대폰을 개통할 수 있다. 금융 계좌 개설도 외국인등록증을 발급받기 전까지는 불가능하다. 외국인등록증 발급은 신청일로부터 짧아도 1주일, 길면 두 달이 걸린다. 발급을 기다리는 기간은 본인 인증이 필요한 온라인 서비스를 쓸 수 없다는 뜻이다.
최근 공공 부문에서 채택하기 시작한 ‘영어 인공지능(AI) 챗봇’도 수준 이하라는 지적이다. 서울시설공단은 지난 3일 서울시 공공자전거인 따릉이 AI 챗봇에 영어 버전을 도입했다고 발표했으나 실제로는 간단한 질문조차 알아듣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AI 챗봇에 ‘한 시간에 얼마냐(How much is it for an hour)’고 영어로 묻자 챗봇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답했다. ‘어디서 대여할 수 있냐(Where can I rent)’고 물어도 알아듣지 못했다. AI 챗봇의 성능에 대해 문의하자 서울시는 “도입 초기 단계로 현재는 간단한 대화만 가능한 수준”이라고 답했다.
정부도 이런 문제를 인지하고 있지만 당장 해결하기는 힘들다는 입장이다.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각 부처의 영문 디지털 서비스를 만드는 데는 예산 편성 및 제도 개선 문제가 있다”며 “시간을 두고 단계적으로 문제를 해결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승우/김세민 기자 lees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