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노 없어요" 여행지서 당황…'얼죽아' 한국은 왜 [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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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하권 날씨에도 아이스 아메리카노 인기최근 한 예능프로그램에서는 이탈리아 출신 방송인 알베르토 몬디가 자기 나라에 여행하러 온 연예인들의 가이드로 나서는 모습이 그려졌다. '커피의 나라'인 이탈리아의 한 카페에 자리 잡은 가운데 일행은 '아이스 아메리카노' 주문을 원했고, 알베르토는 당황하며 "한 번 있는지 물어보겠다. 원래 우리는 안 마신다"고 말했다. 이후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아닌 샤케라또를 내왔다.
주요 커피 브랜드 주문 중 50% 이상 '찬 음료'
한국서 유독 두드러지는 '얼죽아' 현상
"일종의 동조 소비 심리"·"카페인 섭취 목적"
알베르토는 과거 또 다른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코레아노'라고 표현한 바 있다. 한국인들의 아이스 커피 사랑을 단적으로 드러낸 말이었다.외신도 한국의 '얼죽아(얼어 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 현상에 주목했다. 올해 초 AFP통신은 "한국인은 맹추위에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신다"며 'Eoljukah'라는 표현을 썼다.
지난주부터 본격적인 영하권 기온이 나타난 가운데 27일 12시께 찾은 서울 시내 한 스타벅스에도 점심 식사를 마친 많은 직장인이 아이스 음료를 주문하고 있었다.
직장 동료 세 명과 함께 방문해 모두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켰다는 사승원(29)씨는 "바로 카페인을 몸에 넣어줘야 하는데 뜨거운 커피는 먹는 데까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며 "추워도 항상 아이스 음료를 시키는 편"이라고 말했다.또 다른 손님인 김재원(43)씨는 "신메뉴가 나오면 한 번씩 먹어보지만 결국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가장 많이 시킨다"며 "입도 안 텁텁하고 제일 깔끔하다"고 전했다.
매장 직원은 "기온과 무관하게 제일 잘 팔리는 건 아이스 아메리카노"라며 "특히 점심시간이거나 연령대가 낮을수록 차가운 음료를 더 선호한다"고 말했다.지난 26일 스타벅스코리아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1월부터 4개월간 전체 주문 중 아이스 음료 주문 비중은 61%에 달했다. 추위가 절정이었던 1월에도 아이스 음료 비중은 57%로 과반이 넘었다.또 다른 커피 브랜드 폴바셋에서 집계한 자료에서도 지난해 12월부터 3개월간 전체 주문에서 아이스 음료가 차지하는 비중이 62%였다. 할리스 커피 역시 올해 1월 판매된 음료 중 아이스 아메리카노 비중은 55%로 따뜻한 것보다 10% 높았다. 특히 2030 세대에서 아이스 음료 선호도가 강했다.
그렇다면 한국인들은 왜 유독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선호하는 것일까. 이를 두고 AFP통신은 "한국이 '얼죽아'라는 독특한 커피 소비문화를 가지고 있다"며 "빠르게 주문할 수 있는 얼죽아는 '빨리빨리'를 중요시하는 한국의 직장 문화와 어울린다"고 분석한 바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단순히 빨리 마시려는 성향만이 한국의 '얼죽아' 현상을 만든 것은 아니라며 오히려 유행과 타인의 소비 성향에 과하게 민감한 한국 사회의 특징이 반영된 문화 현상이라고 봤다.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막강한 소비 트렌드가 모든 사람의 소비에 영향을 끼치는 사례가 유독 우리나라에서 뚜렷하게 관찰된다"며 "개인의 선택과 특성보다 남들의 소비를 따라가는 일종의 '동조 소비 심리'가 '얼죽아' 문화에 작용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는 유행을 따르는 것 자체에 재미를 느끼거나 의미를 부여하는 경우가 많다. '얼죽아' 문화의 인기가 '얼죽아'를 더 강화하는 측면이 있다"고 부연했다.
한국 사회에서 '카페인 섭취'라는 커피의 기능적 요소가 강조돼온 탓이라는 해석도 있다.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외국과 달리 한국에서 커피는 사회적인 음료라기보다 카페인이라는 약물을 주입하기 위한 기능적인 음료"라며 "직장인이 이동하면서 카페인을 섭취하기에 최적화된 것이 차가운 커피"라고 설명했다.그렇다면 급격하게 추워진 날씨에 차가운 음료를 지속해서 섭취하는 게 건강에 영향을 주진 않을까. 김병준 가천대 길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는 "겨울철 전신이 낮은 기온에 노출됐을 때 심혈관에 문제가 될 수 있지만 아이스 음료 정도는 괜찮다"면서 "오히려 온도와 상관없이 커피 음료를 과하게 마시는 것을 주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김수영/성진우 한경닷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