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성은 대화에서 나온다" 잡스가 재택근무 싫어한 이유

일과 공간의 재창조

제레미 마이어슨·필립 로스 지음
방영호 옮김/알에이치코리아
320쪽|1만9800원
딱딱한 디자인의 사무용 책상과 의자, 쌓여있는 서류 더미들, 시끄럽게 울리는 전화기….

회사 사무실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모습은 대개 이러하다. 네이버 카카오 등 IT 기업을 중심으로 직원들의 편의 시설을 대폭 강화한 일터들이 등장했지만 여전히 우리에게 사무실이란 공간은 그런 곳이다. 개성과 자유는 억제되고 획일화된 분위기가 감도는 곳. 제레미 마이어슨·필립 로스가 쓴 <일과 공간의 재창조>에 따르면 이같은 사무실의 모습은 1920년대에 자리잡았다. '효율성의 극치'를 추구한 미국 산업공학자 프레드릭 테일러(1856~1915)의 아이디어였다. 경영학자였던 그는 작업의 흐름을 과학적으로 체계화해 공장의 작업 관리 원칙을 화이트칼라 업무 현장에 적용했다.

그로인해 직원들을 엄격하게 통제하는 사무 공간이 만들어졌다는 게 저자들의 설명. 직선적이고, 개인의 프라이버시는 최소화된 형태의 사무실이 생산성을 최대로 끌어올릴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생산성 높이기가 최대 과제였던 당시의 풍토는 이런 모습의 사무실을 유행시켰다.

그러다 1950년대 말 퀵 보너 컨설팅팀이 만든 '뷔로란트샤프트'가 등장했다. 뷔로란트샤프트는 기존의 직급이나 서열에 따른 획일적 배치 대신 커뮤니케이션과 유연성을 중시하는 사무실 구성 방식을 말한다. 스칸디나비아항공 본사가 이같은 방식을 택했는데, 이 회사는 수영장과 의료센터 체육관, 공원 벤치, 카페, 콘퍼런스 센터 등을 갖춘 하나의 타운으로 구성됐다. 일에 대한 패러다임 변화와 함께 공간의 혁신 또한 계속됐다. 4만 그루의 식물을 심은 지본 모양의 회사를 한 아마존 사옥, 거대한 하나의 도시를 만든 애플사의 애플 파크 등이 대표적이다. 회사의 모습은 더이상 최고의 효율을 내는 공간이 아닌, 즐거운 경험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바뀌어 갔다. 특히, 팬데믹 이후로는 재택근무나 유연근무가 보편화 됐으며, "내가 있는 장소가 곧 일하는 장소"인 시대가 도래했다.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재택근무를 끔찍히 싫어했다고 한다. "(일터에서)우연히 사람들을 마주치고 대화하는 가운데 창의성이 발현되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다. 이는 일하는 공간에서 어떤 경험을 하느냐가 직원의 몰입과 창의성, 나아가 회사의 이익을 좌우하게 됐다는 걸 의미한다.

책은 일에 대한 패러다임 변화와 함께 우리 일터의 모습도 달라져 왔다는 것을 구체적인 사례로 설명한다. 저자들은 "이제 직장은 머리를 처박고 일이나 하는 조용한 공간이 아닌 사람들이 오가며 유대 관계를 맺고 함께 창의적인 활동을 하는 기대감을 불러일으키는 공간이 됐다"고 말한다. 책은 지난 100년간의 사무실 변천사를 통해 독자들은 일하는 공간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한다. 나아가 '미래 일터'에 대한 실마리 또한 던져준다.

최다은 기자 ma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