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사람들에겐 왜 충치가 거의 없었을까 [책마을]
입력
수정
뼈때리는 한국사옛날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기록이나 유적에도 어느 정도 나와 있지만, 보다 확실하게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바로 뼈와 치아다. <뼈 때리는 한국사>는 그 뼈를 통해 옛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본다.
우은진 지음/뿌리와이파리
240쪽|1만8000원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감식관, 연세대 치대 연구교수를 거쳐 세종대 역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저자는 “뼈를 보면 삶이 보이고 그 삶이 역사가 되는 순간, 뼈의 이야기는 시작된다”며 “뼈에 기록된 역사는 삶과 죽음의 경험 안에서 축적된 실증의 역사”라고 했다. 현대인들에게 가장 흔한 게 충치다. 하지만 조선시대 사람의 충치 유병률은 10%가 채 되지 않았다. 비슷한 시기의 서구는 물론 일본과 비교해도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조선 시대 사람들이 이를 잘 닦았기 때문이 아니다. 근대화가 늦었기 때문이다. 19세기까지도 외국과의 교역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은 탓에 설탕처럼 정제된 당을 먹을 일이 없었고, 이게 낮은 충치 유병률로 이어졌다는 설명이다. 뼈에 남은 안정동위원소 분석에 따르면, 신석기시대 부산과 거제 사이의 섬인 가덕도의 주민들은 탄수화물보다는 물개나 고래 같은 해양 포유동물과 어패류를 더 많이 먹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김해 예안리 지역의 가야 유적에서 출토된 사람들의 머리뼈 중에는 한눈에 봐도 이상하다 싶을 만큼 이마뼈가 납작하게 눌린 머리뼈가 있다. “아이를 낳으면 머리를 모나게 만들기 위해 돌로 머리를 눌러 납작하게 만들고자 하였기 때문에 지금의 진한 사람이 모두 편두”라고 <삼국지‧위서‧동이전>에 기록된 그 편두 풍습이다. 책은 이렇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산발적으로 담고 있다. 다만 뼈를 통해 옛 사람들의 삶을 생생하고 풍부하게 알 수 있으리란 기대는 충족시켜 주지 못한다. 실상 뼈를 통해 알 수 있는 게 그리 많지 않은 건 지 모르겠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