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4월, RCO 베토벤 교향곡 전곡 연주, 그 기억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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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이동조의 나는 무대감독입니다
’서울대첩‘이란 올해 11월 격정의 주간에 청중으로 참여한 로열 콘세트르헤바우 오케스트라의 공연. 공연이 시작되는 시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천천히 원을 그리듯 단원들을 향해 A음을 흩뿌리는 오보이스트를 다시 바라보며, 2015년 한국을 찾아 베토벤 교향곡 전곡을 연주했던 로열 콘세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의 기억이 오롯이 되살아났다. 그리고 2023년 청중으로 로열 콘세트르헤바우 오케스트라 공연을 함께한 후배 감독과 2015년 공연 당시 마치 선후배의 문답처럼 남겼던 그 기록을 소개하고 싶어졌다.
RCO 20150420 – 나흘간 공연의 서곡처럼
오늘도 콘서트홀 좌우측 무대의 뒷공간인 백스테이지에는 악기케이스가 즐비하다. 연주자의 손길이 자주 가는 것이니만큼 악기케이스는 그들의 다양한 성향을 보여주기도 한다. 유난히 오늘 RCO 단원들의 악기케이스에는 존경하는 음악가 사진, 가족사진, 음악을 시작했을 무렵으로 추정되는 어린 시절의 사진 등 제각각의 사진들이 많이 담겨있었다. 이처럼 연주자에게 음악이란 삶에 열정을 불어넣는 도전 과제일 수도, 함께 인생을 걸어온 동반자 혹은 삶을 유지하기 위한 생계 수단일 수도 있다. (음악을 연주하는 예술인은 멋지지만, 그만큼 그들이 음악으로 기본적인 생활을 유지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각자 다른 모습의 악기케이스로 가득한 백스테이지를 바라보면서 음악이 갖는 의미와 가치는 형용할 수 없음을 다시 한번 느꼈다. 하지만 다채로운 느낌의 백스테이지와는 달리 하나로 응축된 강한 힘을 느낄 수 있는 곳, 바로 무대 위다. 가벼운 질문에도 부담스러울 만큼 의사 표현에 있어 적극적이던 그들의 음악은 정반대로 절제된 표현과 안정감 속에서 빛이 났다. 59명의 오케스트라 단원이 100분 동안 궤도를 이탈하지 않고 만들어내는 소리의 어울림과 하나의 음악을 확률로 나타낸다면, 과연 오늘 RCO가 들려준 음악은 몇%의 확률이었을까? 하고 질문을 던져본다.RCO 20150420-1 "작은 고추가 맵다? 아니 짧은 피콜로가 강렬하다"
2관 편성을 지키고 있는 교향곡 5번 <운명>은 언제나 피콜로를 기대하게 한다. 무대에 가득 찬 현들이 아닌, 오늘처럼 간결하게 포진된 현들이라면 자신의 소리를 더욱 선명하게 들리게 할 기회를 지닌 채 시작하는 거니까. 4악장 후반에야 처음 등장하는 악기인 피콜로의 소리. 무대 뒤 모니터로 들어야 하는 내 상황에서도 너무나 선명히 들린다. 경험상 객석에서는 훨씬 더 또렷하게 들리지 않았을까 싶다.오케스트라 편성을 볼 때 참고하는 책인 사무엘 아들러 著 'The study of orchestration' 악보들을 소개할 때 literature란 표현을 사용해 준다. 음악학에서는 다른 단어로 번역되어 사용되는지 모르겠지만, 좋아하는 교향곡 <운명>은 희망을 주제로 재미난 이야기를 가득 들려주는 좋은 책이다. 피콜로의 등장을 마침내 꽃피운 희망에 종지부라 말해 주는 지휘자가 있고, 그 고음은 소중하지만 큰 틀에서 보면 희망이란 주제를 종결 맺는 역할은 지금까지 애써온 다른 악기들이 함께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는 지휘자 역시 있는 거고.59명을 118명으로, 4관으로 확장된 편성에 피콜로를 더블로 치면 어떨까?
문득 궁금해지는, RCO 첫날이 갔다.
RCO 20150421 - <영웅>
<영웅>, 이 작품이 작곡되었던 유럽 당대 상황과 분위기를 가장 잘 녹여내는 단어가 아닐까. 1800년대, 당시 유럽은 산업혁명을 거쳐 민중의 자유와 권리를 위한 투쟁의 물결이 끊이지 않았던 시대였다. 베토벤 역시 억압과 구속에서 벗어나 잠재되어있는 예술혼을 자유롭게 표현하기 위해 인간해방구현의 의지가 충만했을 것이다. 나폴레옹이 황제의 길을 선택하는 바람에 비록 <영웅> 교향곡이라는 표제로 남았지만, 한때 민중의 영웅이었던 그를 위한 작품으로도 알려진 이 곡은 베토벤이 지닌 혁명적인 이념이 투영되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만의 교향곡 스타일을 확립시킨 첫 작품이기도 하다. 이전 작품과 비교할 때 두 배에 달하는 작품 길이, 전개부에서 다양한 주제를 제시하고 발전시켜나가는 방식에 있어서 베토벤만의 화려함이 느껴지는 부분들이 그렇다.작곡가 이름을 각각 떠올리는 순간 따라서 생각나는 느낌이나 단어가 있다. 베토벤하면 떠오르는 느낌으로 비가 쏟아지기 직전 먹구름 잔뜩 낀 하늘에서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천둥과 번개, 혹은 장엄함이 있다. 어제와 오늘, RCO 단원들은 무대 위에서 진지한 모습과는 정반대로 장난 가득한 표정으로 시종일관 밝았다. 하지만 중간 휴식이 끝나고 <영웅>을 연주하러 무대에 입장하는 그들의 뒷모습에서 왠지 모를 비장함이 느껴졌다. 그리고 교향곡 3번을 듣고 나니 베토벤 하면 떠오르는 이러한 느낌들이 더 명확해졌다. 영웅이라는 단어가 주는 군사적 느낌 때문일까?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영웅의 존재를 갈망하지 않을뿐더러 단어 자체가 유물적인 느낌이기도 하다. 하지만 오늘 유럽 사람들이 유럽의 악기로 자신들의 역사이자 정서와 정신이 깃든 음악을 표현했다. 동시대를 살다 간 두 명의 영웅을 떠올리며 지금껏 어느 때보다 훨씬 깊게 베토벤 음악을 느낄 수 있었다.
RCO 20150421-1 <팀파니스트 Marinus Komst>
https://www.adams-music.com/en/artists/adams_percussion/marinus- komst’제2의 지휘자‘라 불리기도 하는 팀파니스트의 매력은 ‘선택’과 ‘집중’으로 이루어진 것 같다. 5년 전인 2010년 마리스 얀손스와 함께한 내한 당시에는 하우스 어텐던트 출신이셨던 여성분이 공연을 위한 자원봉사 중에 이 연주자의 존재를 알려준 적이 있고, 이번에는 또 다른 지인분이 팀파니스트 연주 일정을 사전에 알 수 있는지 일찌감치 문의를 해왔다. 하나의 오케스트라에 한두 명밖에 있을 수 없는 구조, 이미 그 자리에 올랐다면 그것은 -마에스트로처럼 혹은 마에스트로와는 다르게- 사랑받는다는 것을 일찌감치 담보하는 것 같다.
일반적으로 앞뒤로 2m40cm, 좌우 역시 같은 길이 안에 자리 잡는 팀파니스트. 마리누스 콤스트는 마지막 높이의 단 중앙에 살포시 숨은 것이 아니라, 금관과 콘트라베이스를 지배하듯이 좌측무대에 그 큰 키로 우뚝 서 있다. 정말 멋이 한껏 흐른다.
오늘 그와 함께 한 팀파니의 케이스에는 Grote Schnellar / Kleine Schnellar란 글씨가 쓰여 있다. 한스 쉬넬라(1865-1945)라는 이름의 팀파니스트이자 악기 개량에 힘썼던 사람이 직접 제작한 악기를 마리누스 콤스트가 소유하고 있는 것이며,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가 20세기 초 뉴욕 생활을 시작하며 이 팀파니를 함께 가지고 갔고, 말러가 떠난 이후로는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창고에 방치되어 있었다 한다. 그 팀파니를 마리누스 콤스트가 뉴욕에 가서, 샀다.
RCO Beethoven Symphony Cycle, 둘째 날이 갔다.
RCO 20150422 – 베토벤 교향곡 6번 <전원>
베토벤 교향곡 6번 <전원>은 대자연의 아름다움과 인간이자연 속에서 느끼는 감정을 묘사하고 있다. 이 연주는 듣고 있자니 얼마 전 선배 감독 한 분이 해 주셨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현악기 연주자들이 보면대 하나를 가운데 놓고 연주자가 양 갈래로 나뉘어 앉는 것, 그리고 그 뒤로 관악기가 올라가 앉아있는, 우리가 생각하는 기본적인 오케스트라 편성은 언제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었다. 지휘자라는 기둥을 중심으로 뻗은 큰 가지에 작은 가지들이 양쪽으로 돋아있는 나무의 모습은 오케스트라 현악기 편성을 떠오르게 하고, 그 위를 날아다니는 작은 새와 동물을 관악기에 비유해본다면 이는 틀림없는 커다란 숲의 형상이다.이날 이반 피셔는 플루트, 오보에, 클라리넷 연주자를 현악기 연주자들 사이에 배치했고 이는 마치 커다란 나무에 앉아 노래를 지저귀는 새들의 모습을 연상시켰다. 그리고 이러한 시도는 베토벤이 표현하고자 했던 자연의 아름다움을 청중에게 전달하기에 더없이 좋은 방법이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나무로 만든 현악기, 새들의 소리를 연주하는 목관악기, 대자연이 가진 장엄함을 표현하는 금관악기, 이들이 모여서 이루는 하나의 숲을 무대 뒤에서 눈과 귀로 느끼고 있자니 지금 이 순간이 행복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RCO 20150422-1 <마에스트로가 창의한 둥지>
지휘자들에게 베토벤 6번이 얼마나 재미있는 곡일까 가끔 생각한다. 악상기호 외에 악장마다 부제를 붙여준 그 포인트가, 다른 8개 교향곡에서는 생각해 볼 수 없었던 일들을 구상하게 할 수 있을 테니, 얼마나 즐거울까 말이다.이반 피셔는 자신의 앞에 삼각형으로 세 목관을 그렸다. 플루트 왼쪽, 오보에 오른쪽, 둘의 가운데 뒤에 클라리넷. 새 세 마리를 지시하고 있는 2악장을 염두에 둔 것이겠지만 이 배치는 그 이상인 것 같다. 목관악기 세컨드 연주자들의 위치가 중요한데, 현들과 무대 마루에 섞인 세 목관악기 바로 뒤 30cm 상승한 단 위에 우측무대로부터 Flute-Horn-Horn-Oboe를 세우고 그 뒤 45cm 단에는 Bassoon-Clarinet-Trumpet을 세웠다. 목관과 금관 7개의 악기가 새 3마리가 모여 있는 삼각형을 제외하면 자유롭게 배치된 것처럼 보일 테고, 또 그렇게 의도한 거라 생각한다. 지휘자가 내일 <합창> 교향곡의 성악 솔로들을 무대에 분산시킨 편성을 가지고 왔고, 그 이유는 솔로들이 '흔들리는 나무'처럼 느껴져야 하기 때문이라 했다. 오늘 <전원>도 만약 객석에 앉아있었다면 흔들리는 나무쯤은 수월하게 보았을 것이다. 자연이 지니는 것들의 묘사를 의도하고 있는 <전원>, 그 임무를 가장 중요하게 수행하는 목관들, 그들이 오케스트라 속에 흩어져 있는 거라면 그 소리 하나하나가 얼마나 입체적이었을까? 무대 밑으로는 물이 흐르고, 무대 중앙에서는 새들이 울며, ‘악기’란 이름의 이슬들 위로 내리는 햇살. 객석에 앉아 전원의 환영을 함께 하며 들으신 분들, 많으셨겠다.
베토벤 교향곡 사이클, 삼 일째가 지난다.
RCO 20150423 –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그리고 성숙해지는 일
4월 10일 스태프 회의를 했던 순간부터 공연 당일까지 우리 스태프 모두에게 한 가지 고민거리가 있었다. 140명이 넘는 연주자들을 수용할 수 있는 합창단과 오케스트라 단을 어떻게 쌓고 표현할지에 대한 고민이었다. 보유하고 있는 덧마루의 개수는 한정되어 있었고 오케스트라와 합창단 중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쪽이 없었기 때문에 타협점을 쉽게 찾을 수 없었다. 덧마루 편성 계산법은 무대감독으로서 내가 당연히 숙지하고 있어야 할 부분이다. 하지만 입사한 지 이제 3개월이 된 나에게 계산대로 딱딱 떨어지게 적용되는 법이 없는 이 덧마루 편성은 아직도 어렵다. (상황에 따라 좀 더 넓게, 혹은 좁게, 길게, 짧게 오케스트라마다 요구하는 부분도 다르고 등등. 생각해 봐야 할 부분이 많다.) 사실 이 공연의 진행을 맡게 된 나는 난항을 해결할 수 있는 기발하고 멋진 해결책을 내보고 싶었다. 하지만 숙제를 해결해보려는 시작과정부터 생기는 의문점들은 왜 이리도 많은지. 어렵게 돌고 돌아왔지만, 선배들이 생각했던 첫 번째 대안으로 이 고민은 말끔히 해결되었다.베토벤 교향곡 전곡, RCO, 이반 피셔. 또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큰 공연이라는 생각 때문에 나 또한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4일이라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기도 한 이 시간 동안 음악을 들으면서 수많은 생각을 했다. 하지만 정신을 번쩍 차려보니 <합창>교향곡 9번 4악장이 시작되고 있었고 나는 무대를 보면서 “무대 정말 아름답게 미어터지는 중이네”라며 혼잣말을 내뱉었다. 정말 꽉 찬 무대를 보고 있자니 내 마음도 알 수 없는 감정으로 벅차올랐다. 지금 생각해보니 4일이 지나면 이 공연이 끝난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오로지 설렘과 긴장감만으로 보냈던 이 시간이 끝나버렸다는 아쉬움, 마름모 유리를 통해 연주가 끝나고 기립박수를 치는 관객들을 바라보며 잘 끝났구나 하는 기쁨들이 뒤엉킨 복잡 미묘한 감정이었던 것 같다. 연주가 끝나고 4일간 짧게나마 대화를 나누고 눈을 맞추던 연주자와 스태프들과 수고했다며 인사를 나누며 공연이 끝났다는 것을 실감했다. 내 나름대로 그들을 잘 보내주기 위해 바쁘게 돌아다니며 많은 사람과 마지막까지 눈을 마주치고, 그들의 연주를 통해 내가 느낀 행복함과 고마움을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던 것 같다. 이 나흘 동안 ‘내가 지금 객석에 있었다면 아마 더 좋은 소리를 들었겠지’라는 생각을 무수히 많이 했다. 하지만 공연이 끝나고 무대 뒤가 아니었다면 못 느꼈을 이 행복함에 무대 뒤에 있었음을 다행이라 되뇌며, RCO 사람들에게 절대 잊지 못할 것이라고 이야기했고 그들은 곧 다시 오겠다는 말을 하며 우리는 헤어졌다.
선배는 아쉬움에 슬퍼하는 나에게 내일의 공연이 나에게 또 다른 생각을 줄 것이라고 얘기했다. 마치 사랑이 다른 사랑으로 잊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일까. 하지만 이건 분명하다. 세상에는 아름다운 이별도 있다! 적어도 나에게 있어 오늘의 이별이 그렇듯.
RCO 20150423-1 더하기 2015424 <길>
“왜 그런 거 있잖아, 나이를 먹으며 뭔가 삶에 깊이가 더해지고 경험이 쌓이면 조금은 더 현명한 사람이 되어 있겠지, 뭐 그런 거. 무대감독도 일이며 직업이니 가끔은 냉정하거나 칼 같은 일 처리를 해야 하고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을 어느덧 하게 된거야. 그리고 그런 것도 있잖아, 괜스레 감성이 터져서 편지 혹은 글을 잔뜩 써놓고는 다음 날 아침 일어나면 그저 후회스러운, 뭐 그런 거. 4일 중 3일을 합창단을 위한 덧마루 편성으로 시간을 보내고 게다가 로열 콘세르트허바우라는 그 큰 이름이니, 아마 그것이 조금은 신경이 쓰였나 봐. 후배 감독 한 명이 공연이 끝나자마자 미묘한 기분이라며 대성통곡을 시작해서 오랜만에 마음속으로 실컷 울었어. 눈물이 나지 않는 울음이지만 후배 눈에 흐르는 눈물이 너무 순수해서 카타르시스는 더 깊었던, 뭐 그런 거. 집에 돌아가 4일째의 RCO 이야기를, 한 세 번쯤 쓴 것 같아. 3일 동안 SNS에 꼬박꼬박 올렸는데, 어제는 세 번인가 쓰고 지우고를 하다가 오늘 감성 터진 날이군, 오랜만에 그런 생각을 하며 접었어. 조금 현명해졌나 봐.어제 가장 사랑스러웠던 순간은 커튼콜이었어. 양옆으로 좁아 보이는 합창단이 굉장히 신경이 쓰였거든.<합창>이 시작되면서부터 더더욱 그랬고, 우리네 불문율 같은 이야기 중에 ‘사고는 항상 마지막 날에 터져’라는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거든.<합창>이니 편성은 가장 컸고, 현악기 연주자들 역시 객석 쪽 무대 에지까지 앉게 된 그런 모습이었어. 지휘자의 뜻으로 합창단은 처음부터 “합창석은 절대 아닌 무대 위”에서만 연주하기로 정해졌고, 마지막 악장을 위한 솔리스트들은 2악장이 종료된 후 입장을 하기로 약속이 되었어. 마음속으로는 이미 울음을 시작했을 그 후배 감독과 동시에 문을 열어야 했고, 네덜란드 사람들 입을 빌어보자면, ‘Well done'. 4명의 솔리스트가 잘 입장을 했지. 다시 지휘자의 이야기로 돌아와 정말 오케스트라라는 숲속 ’흔들리는 나무‘들처럼 앉은 4명의 솔리스트가, 커튼콜을 해야 할 길이 보이지 않는 거야. 사전에 아무런 이야기도 없었고. 어떻게 커튼콜이 이루어졌을까? 상상해 볼 수 있어? 지휘자가 입장하던 그 좁은 길 양옆에 있던 모든 현악 연주자들이 일어나서 직접 의자를 치우더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양쪽 문에는 마름모꼴의 유리가 있어. 육안으로 직접 확인해야 할 사항들은 언제나 있으니, 정말 요긴한 유리거든. 그 유리로 이 모습을 훔쳐보는데 정말 온몸이 짜릿짜릿하더라고. 어제까지는 왜 그런지 몰랐는데, 오늘은 알 것 같아. 그건 로열 콘세르트허바우 단원들이 가진 민도인 것 같아. 순화된 말로는 ’문화 수준‘인데, 민도란 말이 아직 내게는 조금 더 근사해. 이 단원들이 얼마나 많은 인사를 하고 있는지를 잠깐 생각해 봤어. 자신들과 함께 온 스태프들에게, 그리고 서울의 한 베뉴에서 일하고 있는 스태프들에게, 길을 만들어 주는 그 아름다운 광경은 청중들에게는 덤으로, 그 외에도 아마 무수히 많은 사람에게 인사를 하고 있는 걸 거야.내가 사는 나라의 클래식 공연 역사에 이번 나흘의 그 길이 아마 길이 남을 거야. 그렇지 않아? 아마 그 길의 가장 큰 의미는 나에게는 그거인 것 같아. 처음에는 지휘자 한 명을 위한 길이었고, 그다음에는 솔리스트와 함께 5명이 퇴장하기 위한 길이었고, 마지막으로는 어제의 역사를 함께 한 합창단 예술감독 2명을 더해, 7명이 함께, 무대 중앙 포디움을 향해 걸을 수 있도록 로열 콘세르트허바우이며 헤바우인 그 단원들이 만들어 준, 그런 길일 꺼야. 난 그렇게 생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