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산망 오류는 업체 탓? "할 말 많지만..."

정부가 행정전산망 오류의 원인으로 장비 문제를 지적하면서 이를 관리해 온 업체들에서는 납득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나온다. 아울러 행정망 시스템을 총괄해야 하는 정부가 과도하게 책임을 업계에 떠넘긴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정부는 지난 17일부터 일주일 넘게 전산망 사고 원인을 분석한 끝에 원인을 네트워크 장비인 '라우터'의 포트 불량에 따른 것으로 최종 결론을 내렸다. 정부는 브리핑에서 해당 라우터는 2016년 미국 시스코에서 도입한 제품으로, 국내 업체인 대신정보통신이 관리해 왔다고 밝혔다.하지만 지난 19일만 해도 전산망 완전 정상화를 발표하며 장애 원인을 다른 네트워크 장비인 'L4스위치'의 이상으로 추정한다고 밝혔다. 전산망 장애 원인이 일주일 만에 바뀐 것이다.

담당 업체들은 억울한 한편 행정안전부나 국가정보자원관리원과의 관계나 향후 정부 사업 입찰 시 불이익 등을 이유로 섣불리 입장을 밝히기를 꺼린다.

문제 원인으로 지목된 한 업체 관계자는 "정부가 우리 측에 직접 '문제가 났으니 책임지라'고 얘기한 게 아니라, 언론 브리핑을 통해 발표한 것이기 때문에 뭐라 말씀드리기가 힘들다"면서도 "먹통 사태를 마무리 짓기 위해 발표한 건데 거기에 다시 첨언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라고만 말했다.이 관계자는 "정부가 장비 설치와 관리, 오류 조치 등을 요청했고, 우린 그 요구에 충실히 응했을 뿐"이라며 "할 말은 참 많지만…"이라고 말끝을 흐렸다.

업체 관계자들은 정부가 오류 원인을 발표하기 직전까지도 자신들에게 책임 소재가 돌아올 것을 미처 알지 못해 대응할 수도 없었다고 밝혔다.

한 업체 관계자는 "원인 분석 과정에서 확보한 데이터를 우리와는 공유하지 않았다"며 "그 내용을 알지 못하니 입장을 낼 수도, 반박을 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이번에 문제를 일으킨 것으로 지목된 장비를 정보관리원에 납품한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정보관리원 측이 '오류 (개선) 작업을 하라'고 호출해 조처한 뒤 이상이 없다는 확인을 받고 철수했다"며 "그런데 다음날 행안부가 이번 전산망 오류는 '우리 장비 때문'이라고 발표해서 깜짝 놀랐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정부와 기관이 일종의 고객사이기 때문에 문제 제기나 반박 등이 쉽지는 않은 모양새다. 먹통 원인으로 지목된 '라우터'를 생산하는 시스코 측에 공식 입장을 묻자 "내부 규정에 따라 고객의 문제에 대해 언급할 수 없다"고만 밝혔다.

이에 행안부가 민간 업체의 장비 탓으로만 돌리고 세부 원인을 파악하거나 책임을 지지는 않으려 한다는 불만도 감지된다.김한울 민주노총 산하 한국정보통신산업노조 사무국장은 "정보관리원과 계약된 수많은 업체는 맡겨진 역할 정도만 이해할 뿐이지, 전반적인 시스템을 알 수 없다"고 지적했다.

김 사무국장은 "시스템을 총괄하는 관리자가 큰 그림을 그리고 '리스크'를 관리해야 하는데 그 역할을 소홀히 한 셈"이라며 "결국 정부가 책임을 피하고, 부담을 덜기 위해 각 (하청) 업체에 이를 떠넘기는 것으로 보인다"고 비판했다.

(사진=연합뉴스)


박근아기자 twilight1093@wowtv.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