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부실 위기관리 드러낸 행정망 '먹통'

김형호 사회부장
지난 6월 일본 정부는 일명 ‘마이넘버카드법’을 개정해 공격적인 시행에 들어갔다. 우리의 주민등록증과 공인인증서를 합친 마이넘버카드에 내년 가을까지 건강보험증까지 합치겠다는 야심 찬 목표였다. 의무가 아니라 마이넘버카드 가입을 독려하기 위해 1인당 2만엔(약 18만원)의 인센티브까지 제시했다. 국가적으로 20조원의 예산을 당근책으로 내건 셈이다.

결과는 엄청난 역풍이었다. 정부의 지원금을 받는 통장과 마이넘버카드를 연계했는데 본인이 아닌 차명계좌가 시행 3개월 만에 13만 건에 달했다. 도쿄의 A씨와 오사카에 사는 B씨의 개인증명서가 뒤바뀌어 발급되는 등 정보 열람 사고도 수천 건이 터졌다. 부실 행정뿐만 아니라 건강보험증을 마이넘버카드와 일방적으로 연계하는 데 대한 국민들의 불안감도 컸다. 재산내역을 속속들이 파악해 세금을 더 걷으려는 것 아니냐는 우려에 반대 의견이 60%까지 치솟았다. 마이넘버카드 일방 추진은 내각 지지율 급락의 단초가 됐다.

불안감 키운 행정망 관리 난맥상

마이넘버카드는 ‘디지털 후진국’ 오명을 벗기 위한 일본 정부의 야심 찬 프로젝트다. 벤치마킹 대상은 한국의 디지털 행정망이다. 국민을 고유 번호로 식별할 수 있는 한국의 주민등록증 제도가 디지털정부의 핵심이라고 본 것이다. 2020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처음 시행한 디지털정부 평가에서 한국은 33개국 가운데 종합 1위를 차지했다. 일본은 5위에 그쳤다. 일본 정부가 마이넘버카드를 밀어붙인 데는 한국을 따라잡겠다는 강한 의지가 담겨있다.

전 세계의 자랑이던 행정 전산망의 ‘먹통 사태’가 연일 터지면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1년에 한 번 있을 법한 사고가 1주일 새 네 번이나 발생했다. 지난 17일 정부24 등 행정안전부 전산망 다운을 시작으로 경찰청, 조달청, 한국조폐공사 등에서 시스템 장애가 반복되고 있다.

미봉 아닌 재발 방지 대책 내놔야

디지털 전산망은 언제든 오류가 발생할 수 있고 장애 역시 피할 수 없다. 문제는 위기를 풀어가는 대처 역량이다. 사고 직후 보여준 행안부의 대응은 국가 디지털 행정망을 관리할 능력이 있는지 근본적 의문을 제기할 정도다. 사고 초반 ‘원인 파악 중’이라는 말만 되풀이하며 허둥대는 모습이 역력했다. 장애 원인도 처음에는 데이터 분산 네트워크 장비 오류로 발표했다가 나흘 뒤 라우터 포트 접속 불량으로 바꾸는 등 오락가락 해명을 내놓고 있다. 고작 접속 불량 때문에 국가 행정망이 전면 다운될 수 있고, 그 원인을 찾는 데 1주일이나 걸리는지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의견이 많다.

이번 사태를 통해 1400여 개 업체의 장비와 소프트웨어가 엉켜 있어 종합 데이터 지도가 없다는 점, 매년 삭감되는 유지관리비로 인한 심각한 장비 노후화 등 관리의 난맥상도 밝혀졌다. 무엇보다 국가 행정망 관리 역량의 민낯이 드러난 점은 뼈아픈 대목이다. 과연 ‘넘버 원, 디지털정부’에 걸맞은 위기관리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 많은 이들이 의문을 갖게 됐다. 대기업 정보기술(IT) 입찰 허용 등의 미봉책으로 책임을 피할 수 없다. 장애 원인을 신속히 파악하고 복구할 수 있는 데이터 지도 구축 등의 종합 대책을 하루빨리 내놔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