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먼n스토리] '아픔딛고 힘찬도약' 장애인 태권도 선수들의 '금빛발차기'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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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순철(52)·엄재천(38) 선수 "용기 있게 세상에 나오길" 희망 메시지
'장애인 스포츠에도 관심을' 실업팀 창단 요구…춘천시 "추후 검토" "사고로 장애가 생긴 뒤 집 밖에 나가는 게 제일 힘들더라고요. 장애인 여러분, 용기를 내 밖으로 나오세요.
나오면 다른 세상이 보입니다.
" "하고 싶은 게 있다면, 남들의 시선은 신경 쓰지 말고 그냥 하세요. "
'퍽, 퍽' 선수들의 힘찬 발차기가 자아낸 둔탁한 미트 파열음이 쉴 새 없이 태권도장에 울려 퍼졌다.
돌려차기로 연거푸 미트 정곡을 강타하는가 하면 거침없는 옆차기는 건장한 체구의 남성 감독마저 휘청거리게 했다.
여느 선수들처럼 양팔이 자유롭지는 않아도 홍순철(52)·엄재천(38) 선수는 동작 하나하나를 허투루 하는 법이 없다. 작은 태권도장 한편에 전시된 상패와 이름 옆으로 빼곡히 채워진 전적은 얼핏 화려해 보이지만, 이 같은 결과물을 내기까지 선수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남들보다 2배, 3배 더 노력해왔다.
넘어지고, 다치고, 다시 넘어지고…. 이들이 꿈과 희망을 키워온 이곳 태권도장에는 그야말로 '피, 땀, 눈물'이 서려 있다. 누구에게나 그렇듯 이들에게도 인생의 고난은 뜻밖의 순간에 찾아왔다. 평범한 전기공이던 홍 선수는 1997년 외선 공사 업무 중 감전 사고를 당해 두 팔을 모두 잃었다.
멀쩡했던 팔을 하루아침에 잃은 자기 모습을 직면하는 일은 무척이나 힘들었다.
5년간 집 밖으로 나갈 수 없었고,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무력감마저 들었다.
"인생…. 죽기 아니면 살기인데, 죽을 용기는 없었어요.
이대로는 안 되겠기에 용기를 가지고 집 밖으로 나갔어요.
"
집 밖에서 걷기 등 운동부터 시작하면서 홍 선수는 점차 활력을 되찾았고, 살도 빼며 외적인 모습을 가꿨다.
그러면서 지금의 아내를 만났고 세 명의 소중한 자녀도 얻어 가장으로 사는 삶을 살게 됐다.
갑작스레 장애가 생긴 건 엄 선수도 마찬가지였다.
돌이 막 지났을 무렵 장난을 치던 중 소여물 자르개 날에 왼쪽 소매가 딸려 들어갔고, 그 사고로 지체 장애가 생겼다.
엄 선수는 "한창 예민한 시기인 중·고등학생 때는 누군가가 팔을 쳐다보는 게 싫었다"고 회상했다.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었던 탓일까.
무의식적으로 왼손을 주머니에 넣거나 가방, 외투 안으로 손을 숨기는 게 습관이 된 그였다. 그렇게 각자의 인생을 살아가던 두 사람이 태권도 선수로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된 건 정구현(47) 강원도(춘천시) 장애인 태권도 협회 선수단 감독을 만나면서부터다.
장애인 태권도 선수를 발굴하던 정 감독은 2019년 두 사람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마침 같은 아파트에 살던 홍씨를 눈여겨봤던 정 감독은 그에게 선수 생활을 제안했고, 어릴 적 태권도 선수로 잠시 활동했다가 쉬고 있던 엄씨도 선수단에 영입했다.
큰 뜻 없이 시작했던 선수 생활이었지만, 이제 태권도는 이들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일부분이 됐다.
홍 선수는 "아빠가 나가서 뭐라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니 아이들이 너무 좋아한다"며 "가족만 탈 없이 챙기면서 살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던 일상에 태권도가 들어오면서 활력이 생겼다"며 미소 지었다.
'내가 할 수 있을까' 의구심을 품었던 엄 선수 역시 여러 대회에서 작은 성취를 쌓으며 자신감이 붙었다.
그는 "쑥스럽지만, 솔직한 마음으로 패럴림픽에 출전하고 싶다"며 "메달권 안에 들고 싶다는 목표가 생겨 자기 관리 하며 열심히 운동 중"이라고 멋쩍게 말했다.
2022년에 이어 2023·2024년 국가대표로 선발된 엄 선수는 2024 파리 패럴림픽 출전 카드를 손에 쥐기 위해 매일 같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국가대표로 경기장에 섰던 홍 선수는 적지 않은 나이 탓에 머지않아 은퇴를 앞두고 있다.
홍 선수는 부상 없이 선수 생활을 마치길 기원하면서도 "후배 선수들이 안정적인 환경에서 운동할 수 있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아직 강원도에는 장애인 태권도 실업팀이 없어 이들 선수는 전용 훈련장이 아닌 개인 태권도장에서 훈련받고 있다.
선수들은 세계태권도연맹(WT)에서 승인한 겨루기 전자호구 시스템도 갖춰져 있지 않아 경기력에 한계를 느낄 때도 적지 않다고 토로한다.
이런 상황에서 충남, 제주 등 다른 지자체에서 이들 장애인 선수를 영입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는 탓에 도 협회에서는 그간 공들여 키운 선수들을 뺏기게 될까 우려하고 있다.
정 감독은 "춘천시에 실업팀을 창단해달라는 뜻을 전하기 위해 여러 차례 면담을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시는 장애인 태권도 실업팀 구성에 대해서는 소극적이면서도 최근에는 수상스키, 비장애인 남자 태권도팀을 창단하겠다고 발표해 당황스러웠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선수가 없는 것도 아니고 청각장애인 선수 2명, 지체장애인 선수 2명 등 총 4명이나 춘천시에서 선수 생활을 하고 있는데도 제대로 된 면담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춘천시는 WT 본부를 유치하며 태권도 도시를 표방하고 있지만, 정작 장애인 태권도에 대해서는 큰 관심이 없다"고 호소했다. 이에 대해 춘천시 관계자는 "장애인 태권도뿐만 아니라 다른 종목에서도 실업팀 창단을 요구하는 상황"이라며 "예산 등 면밀히 따져봐야 할 부분이 있어 추후에 해당 사안을 검토하겠다는 게 시의 입장"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장애인 스포츠에도 관심을' 실업팀 창단 요구…춘천시 "추후 검토" "사고로 장애가 생긴 뒤 집 밖에 나가는 게 제일 힘들더라고요. 장애인 여러분, 용기를 내 밖으로 나오세요.
나오면 다른 세상이 보입니다.
" "하고 싶은 게 있다면, 남들의 시선은 신경 쓰지 말고 그냥 하세요. "
'퍽, 퍽' 선수들의 힘찬 발차기가 자아낸 둔탁한 미트 파열음이 쉴 새 없이 태권도장에 울려 퍼졌다.
돌려차기로 연거푸 미트 정곡을 강타하는가 하면 거침없는 옆차기는 건장한 체구의 남성 감독마저 휘청거리게 했다.
여느 선수들처럼 양팔이 자유롭지는 않아도 홍순철(52)·엄재천(38) 선수는 동작 하나하나를 허투루 하는 법이 없다. 작은 태권도장 한편에 전시된 상패와 이름 옆으로 빼곡히 채워진 전적은 얼핏 화려해 보이지만, 이 같은 결과물을 내기까지 선수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남들보다 2배, 3배 더 노력해왔다.
넘어지고, 다치고, 다시 넘어지고…. 이들이 꿈과 희망을 키워온 이곳 태권도장에는 그야말로 '피, 땀, 눈물'이 서려 있다. 누구에게나 그렇듯 이들에게도 인생의 고난은 뜻밖의 순간에 찾아왔다. 평범한 전기공이던 홍 선수는 1997년 외선 공사 업무 중 감전 사고를 당해 두 팔을 모두 잃었다.
멀쩡했던 팔을 하루아침에 잃은 자기 모습을 직면하는 일은 무척이나 힘들었다.
5년간 집 밖으로 나갈 수 없었고,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무력감마저 들었다.
"인생…. 죽기 아니면 살기인데, 죽을 용기는 없었어요.
이대로는 안 되겠기에 용기를 가지고 집 밖으로 나갔어요.
"
집 밖에서 걷기 등 운동부터 시작하면서 홍 선수는 점차 활력을 되찾았고, 살도 빼며 외적인 모습을 가꿨다.
그러면서 지금의 아내를 만났고 세 명의 소중한 자녀도 얻어 가장으로 사는 삶을 살게 됐다.
갑작스레 장애가 생긴 건 엄 선수도 마찬가지였다.
돌이 막 지났을 무렵 장난을 치던 중 소여물 자르개 날에 왼쪽 소매가 딸려 들어갔고, 그 사고로 지체 장애가 생겼다.
엄 선수는 "한창 예민한 시기인 중·고등학생 때는 누군가가 팔을 쳐다보는 게 싫었다"고 회상했다.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었던 탓일까.
무의식적으로 왼손을 주머니에 넣거나 가방, 외투 안으로 손을 숨기는 게 습관이 된 그였다. 그렇게 각자의 인생을 살아가던 두 사람이 태권도 선수로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된 건 정구현(47) 강원도(춘천시) 장애인 태권도 협회 선수단 감독을 만나면서부터다.
장애인 태권도 선수를 발굴하던 정 감독은 2019년 두 사람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마침 같은 아파트에 살던 홍씨를 눈여겨봤던 정 감독은 그에게 선수 생활을 제안했고, 어릴 적 태권도 선수로 잠시 활동했다가 쉬고 있던 엄씨도 선수단에 영입했다.
큰 뜻 없이 시작했던 선수 생활이었지만, 이제 태권도는 이들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일부분이 됐다.
홍 선수는 "아빠가 나가서 뭐라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니 아이들이 너무 좋아한다"며 "가족만 탈 없이 챙기면서 살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던 일상에 태권도가 들어오면서 활력이 생겼다"며 미소 지었다.
'내가 할 수 있을까' 의구심을 품었던 엄 선수 역시 여러 대회에서 작은 성취를 쌓으며 자신감이 붙었다.
그는 "쑥스럽지만, 솔직한 마음으로 패럴림픽에 출전하고 싶다"며 "메달권 안에 들고 싶다는 목표가 생겨 자기 관리 하며 열심히 운동 중"이라고 멋쩍게 말했다.
2022년에 이어 2023·2024년 국가대표로 선발된 엄 선수는 2024 파리 패럴림픽 출전 카드를 손에 쥐기 위해 매일 같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국가대표로 경기장에 섰던 홍 선수는 적지 않은 나이 탓에 머지않아 은퇴를 앞두고 있다.
홍 선수는 부상 없이 선수 생활을 마치길 기원하면서도 "후배 선수들이 안정적인 환경에서 운동할 수 있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아직 강원도에는 장애인 태권도 실업팀이 없어 이들 선수는 전용 훈련장이 아닌 개인 태권도장에서 훈련받고 있다.
선수들은 세계태권도연맹(WT)에서 승인한 겨루기 전자호구 시스템도 갖춰져 있지 않아 경기력에 한계를 느낄 때도 적지 않다고 토로한다.
이런 상황에서 충남, 제주 등 다른 지자체에서 이들 장애인 선수를 영입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는 탓에 도 협회에서는 그간 공들여 키운 선수들을 뺏기게 될까 우려하고 있다.
정 감독은 "춘천시에 실업팀을 창단해달라는 뜻을 전하기 위해 여러 차례 면담을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시는 장애인 태권도 실업팀 구성에 대해서는 소극적이면서도 최근에는 수상스키, 비장애인 남자 태권도팀을 창단하겠다고 발표해 당황스러웠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선수가 없는 것도 아니고 청각장애인 선수 2명, 지체장애인 선수 2명 등 총 4명이나 춘천시에서 선수 생활을 하고 있는데도 제대로 된 면담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춘천시는 WT 본부를 유치하며 태권도 도시를 표방하고 있지만, 정작 장애인 태권도에 대해서는 큰 관심이 없다"고 호소했다. 이에 대해 춘천시 관계자는 "장애인 태권도뿐만 아니라 다른 종목에서도 실업팀 창단을 요구하는 상황"이라며 "예산 등 면밀히 따져봐야 할 부분이 있어 추후에 해당 사안을 검토하겠다는 게 시의 입장"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