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떡하라는 건지"…예산 늘려준다는데 난처한 공무원들 [관가 포커스]
입력
수정
"안 줘도 되는데"…사회적경제 예산 마다하는 정부“전 정부 때 사회적경제 예산은 다른 사업보다 우선 배정받았는데 지금은 삭감 1순위입니다. 야당이 예산을 늘려준다는데도 부처 윗선과 기획재정부 예산실은 필요 없다고 방어하라니…”
세종시에 있는 A부처에서 사회적경제 업무를 담당하는 한 관계자는 최근 기자와 만나 이같이 한숨을 쉬었다. 무슨 얘기일까. 기재부 예산실은 올 들어 각 부처에 흩어져 있는 사회적경제 관련 예산을 대폭 삭감했다.예컨대 기재부 소관인 협동조합 활성화 사업은 올해 75억800만원에서 내년엔 7억8000만원으로 삭감됐다. 협동조합 기본계획 수립 및 추진부처인 기재부가 스스로 예산을 깎은 것이다.
중소벤처기업부의 사회적경제 기업 성장집중 지원 사업은 올해 25억6800만원에서 전액 삭감됐다. 행정안전부 소관 마을기업 육성사업은 올해 69억6500만원에서 26억9500만원으로 줄었다.
사회적경제 기업은 2007년 노무현 정부 때 제정된 ‘사회적기업육성법’에 따라 정부 지원, 세금 감면 등 다양한 혜택을 받고 있다. 사회적 기업 전체 매출 중 공공기관이 구매해 준 매출이 절반에 육박할 정도다. 하지만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지원금에만 의존하는 ‘좀비 사회적기업’이 양산되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보조금 부당집행, 불성실 공시 등의 사례도 대거 적발됐다.이 때문에 정부는 사회적경제 기업에 대한 직접 지원에서 컨설팅 및 마케팅 지원 등 간접 지원을 통해 자생력을 키워야 한다는 입장이다. 내년도 예산을 대폭 삭감한 것도 이 같은 작업의 일환이라는 설명이다.
협동조합 및 사회적경제 기업들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이들은 현 정부의 사회적경제 정책이 최소한의 감독과 행정적 관리에 그칠 것이라고 주장한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도 가세했다. 지난 24일 열린 예결소위에서 허영 민주당 의원은 “사회적경제 예산이 삭감되면 관련 업계에 근무하는 수천 명의 일자리가 사라질 수 있다”며 “사회문제 해결과 취약계층의 일자리 제공 등을 위해 사회적경제 기업에 대한 예산 원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때문에 예결소위에서 야당은 기재부 소관인 협동조합 활성화 사업의 경우 67억2800만원을 증액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행안부 소관 마을기업 육성사업은 10억원이 증액됐다. 특히 마을기업 육성사업은 여당인 국민의 힘 의원들도 정부 원안 대비 증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중기부 소관 사회적경제 기업 성장집중 지원 사업은 예결소위에서 올해 배정된 25억6800만원을 전액 복구시키기로 했다.정부 부처 입장에서 예산이 증액된다는 것은 그만큼 업무 권한과 책임이 늘어난다는 뜻이다. 통상 대부분의 부서는 예산 증액을 환영한다. 하지만 각 부처의 사회적경제 담당 관계자들은 되레 곤란해졌다는 반응이다. 기재부의 사회적경제 담당 부서는 미래전략국, 행안부는 균형발전지원국, 중기부는 벤처정책관 소관이다.
B부처 고위 관계자는 “기재부 예산실에서 사회적경제 예산은 무조건 삭감해야 한다는 쪽으로 알아서 방어하라는 지시가 내려왔었다”며 “기재부와 정치권 사이에서 이도 저도 못하는 곤란한 상황”이라고 털어놨다. C부처 관계자는 같은 부처 내 다른 부서에 눈치가 보인다고 했다. 통상 예산 편성은 ‘총량 불변의 원칙’에 따라 특정 부서의 예산이 증액되면 다른 부서 예산이 삭감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사회적경제에 대한 육성은 퍼주기식 현금 지원이 아니라 자생력을 키우는 간접 지원에 중점을 둬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사회적 기업들의 체질 개선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