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반도체 '미래기술 조직' 15년 만에 부활

'차세대 공정개발실' 신설

과거 비용절감에 미래 조직 폐쇄
HBM 등 AI 반도체 시장 커지자
"경쟁사에 밀린 주도권 되찾아야"
경계현 '초격차 기술'로 승부수
삼성전자가 5~10년 뒤 반도체산업을 주도할 미래 기술을 개발하는 ‘차세대 공정개발실’을 최근 신설했다. 지난해 세계 최초로 선보인 게이트올어라운드(GAA·반도체 누설 전류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기술) 같은 ‘게임체인저’ 기술을 개발해 경쟁사를 압도하기 위한 포석이다.

AVP(첨단패키징)사업팀 개발 조직을 충남 천안에서 경기 용인·화성으로 올려 우수 엔지니어를 영입하고, 설비기술연구소도 차세대 반도체 개발 중심으로 개편하기로 했다. 경계현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장(사장)이 인공지능(AI) 반도체 초격차를 위해 승부수를 던진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10년 뒤 시장 주도할 기술 개발

29일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최근 ‘차세대 공정개발실’을 새롭게 마련했다. 이를 DS부문의 두뇌 역할을 하며 메모리·시스템 반도체 관련 선행 기술을 개발하는 반도체연구소 산하에 뒀다. 차세대 개발실장으로는 이날 정기 임원 인사에서 승진한 현상진 부사장이 낙점됐다. 현 부사장은 반도체연구소에서 초미세공정 개발을 주도하며 3나노미터(㎚·1㎚=10억분의 1m) 제품 양산에 기여한 공정 전문가다.

차세대 공정개발실은 10~20년 뒤 반도체산업을 주도할 차세대 공정 기술을 중장기적 관점에서 개발하게 된다. 메모리반도체 사업의 3차원 V낸드플래시와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적용 D램,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의 14㎚ 핀펫(FinFET), 3㎚ GAA 등 삼성 반도체 사업의 전성기를 이끈 고급 기술을 미래에도 꾸준히 내놓겠다는 것이다. 조직 목표도 제품 개발보다는 기술 개발에 방점이 찍혀 있다.

○경계현 사장이 조직신설 주도

차세대 공정개발실 신설은 경계현 사장이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2030년 1300조원 규모로 커질 것으로 전망되는 AI 반도체 시장을 장악하기 위해선 타사를 압도할 수 있는 기술력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최근 고대역폭메모리(HBM), 더블데이터레이트(DDR)5 등 첨단 메모리 시장에서 과거와 달리 고전하는 것에 대해 ‘장기적인 관점의 공정기술 투자가 부족했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차세대 공정개발실 신설에 영향을 준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전자의 사업 구조가 메모리 반도체 중심에서 파운드리, 반도체 설계 등으로 확장하면서 투자 자원이 분산됐고, 자연스럽게 미래기술 연구 역량도 낮아졌다는 얘기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15년 전 차세대 기술을 전담하는 조직이 있었기 때문에 GAA, FinFET 같은 삼성전자의 공정 기술이 꽃피울 수 있었다”며 “10년 뒤 시장을 주도하기 위해선 지금부터 차세대 기술 투자에 주력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첨단패키징 개발 조직 수도권 이전

삼성전자는 반도체 기술력 강화를 위한 일련의 조치를 잇달아 시행할 계획이다. 최첨단패키징(서로 다른 첨단 칩을 한 칩처럼 작동하게 하는 후공정) 인재를 유치하기 위해 AVP사업팀 개발 관련 조직을 용인이나 화성으로 옮기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HBM 관련 핵심 공정인 첨단패키징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데, 담당 개발팀의 근거지가 충남 천안에 있어 “고급 인력 유치가 쉽지 않다”는 지적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차세대 반도체의 생산기술을 연구하는 설비기술연구소 조직도 개편했다. 설비기술연구소 조직을 업무 연관성이 높은 반도체연구소 조직과 1 대 1로 매칭시켜 차세대 반도체 개발 관련 시너지를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진행된 것으로 전해졌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