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1호선' 김민기에 책을 내보자 했다가 대차게 거절당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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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최윤경의 탐나는 책20년 전 어느 여름날, 나는 학전소극장 사무실에 있었다. 김민기 대표를 만나 책 출간을 제안하기 위해 무작정 찾아간 길이었다. 약속되지 않은 만남은 당연히 이루어지지 않았다. 사무실을 나온 나는 근처 커피숍에 앉아 김민기 대표의 책을 내고 싶은 나의 간절함을 여러 장의 편지지에 절절히 적어내렸고, 다시 사무실을 찾아 ‘대표님께 꼭 전해주십사’ 전하고 나왔다. 기획안도 아닌 편지라니! 출판도 기획도 뭔지 모를 천둥벌거숭이 시절이라 가능한 무모함이었으리라.
, 김창남 지음, 2020년, 한울
대학에 들어가 온갖 민중가요를 섭렵하던 와중에 접하게 된 김민기의 노래는 전혀 선동적이지 않은 노랫말과 음률로 나를 사로잡았다. 익히 알고 있던 <아침이슬>과 <작은 연못>마저도 이전에 들었던 것과 전혀 달랐다. 읊조리는 듯한 음색과 느릿한 박자를 뚫고 나오는 처연함. 슬픔과 아름다움이 함께할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지하철1호선'을 타고 통학하는 동안, 김민기의 음반은 늘 함께였다.며칠 후 극장 관계자에게 온 메일에는 ‘김민기 대표님은 성공회대 김창남 교수님이 한울출판사에서 출간하는 책에만 협조하기로 하여 다른 책의 출간이 어렵다’는 글이 적혀 있었다. ‘저는 다른 사람이 아닌 김민기 대표님이 직접 쓴 책을 내고 싶은데요’라고 매달리고 싶었지만, 정중한 메일 뒤에 단호함이 느껴져 그대로 아쉬움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몇 년이 지나 출간된 『김민기』는 관계자가 이야기했듯이 김창남 교수가 한울출판사에서 낸 것이었다. 1985년 한 차례 출간된 바 있는 『김민기』는 그 이후 김민기의 음악 활동까지 담아내며 몇 배로 두툼해졌다. 김민기가 작곡한 모든 노래의 악보와 뮤지컬 <지하철 1호선>, 노래굿 <공장의 불빛> 등의 대본, 곡에 대한 해설, 비평까지 총망라했다. 출판사는 이 책을 ‘현재진행형인 그의 삶의 중간정리작업’이라고 소개했다.이 책은 대중적인 책은 아니다. 문화예술 관계자나 평론가들이 자료 삼아 찾아볼 책이다. 하지만 팬에게는 더없이 소중한, 김민기에 관한 (그때까지의) 모든 것을 담은 ‘팬북’이나 다름없는 책이다. 그리고 김민기를 다룬 유일한 책이며, 내가 그토록 만들고 싶었지만 만들 수 없는, 영원히 탐낼 수밖에 없는 책이다.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을 보기 위해 찾았던, 김민기 대표의 책을 내고 싶어 무작정 찾아갔던, 대학로에 있는 출판사에 근무하는 동안 아침저녁으로 오가며 보았던 학전소극장이 내년 3월 경영난과 김민기 대표의 건강 문제로 문을 닫는다고 한다. 오랫동안 경외하던 봉우리 하나가 내려앉는 듯하다. 쾌유하시길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