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를 만났다…자하문을 돌아 길가 외딴 우물에서

책이 머무는 집

종로 청운동 '윤동주문학관'
詩 '자화상'에 나온 우물을 모티브 삼아
버려진 청운수도가압장 물탱크에 개관
콘크리트벽 타고 울리는 '서시' 듣다보면
벽에 가득한 얼룩, 시인 눈물처럼 느껴져
윤동주문학관 제2전시실 열린 우물 입구(왼쪽)와 제3전시실 닫힌 우물. 버려져 있던 청운수도가압장 물탱크를 활용해 조성했다. /종로문화재단 제공
윤동주 시인을 아시나요? 한국 사람에게 이렇게 물으면 대부분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일 겁니다. 윤동주는 한국인이 유독 사랑하는 시인이니까요.

일제강점기 한글로 시를 쓴 청년 시인 윤동주, 부끄러움의 미학을 보여준 시인, 유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단 한 권만을 남긴 천재 시인…. 한국에서 학교 다닌 사람이라면 그의 생애는 물론 시 몇 편도 알고 있을 테지요.하지만 서울 청운동 윤동주문학관에 가보면 우리가 윤동주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가 재봉틀로 직접 나팔바지를 만들어 입을 정도로 손재주 좋은 청년이었다는 것도, 그의 어린 시절 이름이 ‘해처럼 빛나라’는 뜻을 담은 ‘해환’이었다는 것도 이곳에서 처음 알았어요.

창의문(자하문). 조선시대 한양의 관문이었던 이 문은 서울 북악산과 인왕산이 만나는 지점에 있지요. 서울 도심답지 않게 고즈넉한 창의문 인근 자락에 윤동주문학관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연희전문학교 재학 시절 윤동주는 소설가 김송의 누상동 집에서 하숙 생활을 했는데, 종종 인왕산에 올랐다고 하고요.

이 자리엔 원래 청운수도가압장이 있었어요. 수압이 약한 고지대에 수돗물을 잘 공급하기 위해 물살 세기를 강하게 만들어주는 시설. 산 중턱에 있는 청운아파트에 수돗물을 보내기 위해 만들어졌는데, 노후한 아파트가 철거된 뒤엔 버려지다시피 방치돼 있었죠. 2012년 종로구는 청운수도가압장 폐건물과 물탱크를 활용해 윤동주문학관을 지었습니다. 물탱크와 시인 윤동주. 생뚱맞은 조합 같아 보이지만, 마냥 그렇지도 않아요. 윤동주 시인에게 ‘우물’은 중요한 소재였거든요.“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이렇게 시작되는 윤동주의 시 ‘자화상’을 생각해보세요. 우물 속을 들여다보면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시인에게 우물은 자신을 비춰볼 수 있는 거울이었고, 순수했던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통로와도 같았어요. 그래서 윤동주문학관 제1전시실 가운데에는 우물이 하나 놓여 있습니다. 한국에서 과거 사용했던 돌우물과 달리, 나무우물이에요. 중국 지린성 윤동주 시인의 생가에 있는 우물을 수리하는 과정에서 나온 우물 목판을 옮겨 놨어요.

윤동주문학관을 가장 윤동주문학관답게 하는 곳은 제3전시실입니다. 버려진 물탱크를 윤동주 시인의 생애 관련 영상을 관람하고 시 낭독을 들을 수 있는 공간으로 탈바꿈시켰어요. 높은 콘크리트벽을 타고 울리는 ‘서시’를 듣다 보면, 물탱크 벽면에 어린 물 얼룩이 시인의 눈물처럼 느껴집니다.

이소진 건축가가 리모델링한 윤동주문학관은 2012년 대한민국 공공건축상, 2014년 서울특별시 건축상 등을 받으며 그 아름다움을 인정받았습니다. 2018년에는 건축 전문가 100인이 뽑은 ‘한국 최고의 현대건축 20선’ 중 하나에 꼽히기도 했습니다.전시 공간은 그리 크지 않아요. 윤동주 시인 관련 유물이 워낙 희소하고 귀중하다보니 친필 원고를 포함해 전시품 대부분은 복제본입니다. 소박한 문학관을 둘러보는 데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여운은 길답니다. 일제강점기, 세상이 온통 아파 보여 청년 윤동주는 시집 제목을 <병원>으로 지으려고 했다지요. 제자가 위험해질까 걱정한 스승 이양하 교수의 만류로 시집 출간은 미뤄졌고, 시인은 일본 유학 도중 옥살이를 하다가 숨을 거둡니다. 29세의 시인은 해방을 6개월 앞두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문우(文友)였던 정병욱은 친구의 친필 유고 시집을 마루 밑 항아리에 숨겨 지켜냈고, 해방 이후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문학관 뒤편에 조성된 ‘시인의 언덕’을 서성거리며 한참 그 생애를 되짚어보게 됩니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