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독학 화가에게서 솟구치는 질투… '고경애는 누굴 흠모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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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한국신사 유람일기앙리 루소, 빈센트 반 고흐, 프리다 칼로, 이브 클랑, 장 미쉘 바스키아……
고경애 '곁에서 보내는 안부' 전시 리뷰
미술에 큰 관심이 없는 이들도 적어도 한 두 번 들어 본 유명한 이 화가들의 공통점은 영어 표현으로 'Self-taught artist', 스스로를 가르친 작가다. 즉 제도권 미술 교육을 받지 않고 스스로 화법을 깨우쳐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이룩한 작가들이다. 물론 그 예술성으로 관심과 갈채를 받은 예술가이기에 우리 모두가 들어 아는 유명세도 얻게 되었다. 제도권 교육을 통하지 않았다는 것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당시의 화풍이나, 예술 운동, 또는 사조에 영향을 받지 않았고, 스스로 찾고 스스로 공부해서 얻은 미감으로 사랑 받고 널리 알려졌다는 의미가 되겠다. 고경애 작가를 언급하면서 이 점을 강조하는 것은 아마 작가 스스로에게는 식상한 얘기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스스로를 다그치고, 독려하며 가르쳐 이렇게 매력적인 화풍을 이루고 자신만의 표현법을 갈고 닦으며 계속 변화해온 작가를 바라보는 감상자의 입장에서는 그가 자신을 가르치고, 스스로 배웠다는 점이 아무리 여러 번 강조해도 늘 신선하게 다가온다.
▶이 칼럼 관련된 인물 소개(고경애, 대통령 비서실 직원에서 유화 작가가 되다)
유화를 재료로 택하고 물감에 유동성을 부여하는 기름을 거의 사용하지 않고 재료 자체가 가진 물성 자체를 살려 따뜻하고 포근한 그림을 그려 내는 작가가 독학으로 모든 것을 이뤘다는 그 점에 묘한 질투심이 발동한다. 전시 리뷰에 이런 사심을 표현해도 되나 싶지만 이번 리뷰의 원동력이 바로 이런 질투라고 해도 좋겠다.
그래서일까? 하늘 아래 그 어떤 것도 인간이 스스로 창조한 것은 없으며, 어디에선가, 누군가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을 테니 고경애 작가의 보들보들 보드라운 그림들을 바라보면서 어떤 작가의, 어떤 화풍을 보면서 영향 받았는지가 강열하게 궁금해진다.특히 전작들에 비해 점점 더 추상으로의 진행이 도드라지는 가운데 구체적인 것들을 단순화하는 과정, 자연스러운 자연의 색에서 고경애 만의 컬러를 추출해 내는 과정들에 특별히 더 많은 영향을 미친 동서양의 작가들이 누구일까 궁금해 작가의 면전에서 목구멍까지 솟구치는 질문을 억누르느라 힘들었다. 그 물은 답이 ‘무슨 무슨 작가의 화집을 많이 봤어요.’ 수준이 아닌 ‘이 부분은 누구의 어느 작업에서, 이런 컬러는 바로 이 작품의 이런 컬러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어요.’ 라는 아주 구체적이고 세세한 수준의 답변으로 돌아와야 속이 시원해지리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물론 작가는 아주 쿨하게 그런 영향 따위는 없었노라고 말할지도 모르지만(아니면 정말 긴 시간을 들여 필자가 원하는 답을 해줄지도 모르겠다), 작가의 그림들 이 곳 저 곳에서 교과서에 만났던 해외 작가들은 물론 내가 나고 자란 이 나라의 대가들의 작품들이 중첩되는 것도 또한 솔직한 속내다. 아마도 고경애 작가는 그 강력한 대가들의 에너지를 모조리 흡수하여 체화한 후 스스로 화법으로 이뤄낸 것이겠지? 고경애 작가만의 화풍에 마음이 끌리고 눈이 머무는 이유는 어쩌면 그 익숙함에 기인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해 본다.‘곁에서 보내는 안부’전에 걸린 그림들의 따듯함은 이 계절에 가장 필요한 안부다. 엊그제 눈발이 날리는 거리에 나섰을 때 떠오르던 따뜻한 조명이 켜진 집안의 풍경과 그 속에 담긴 인물들의 모습을 고경애 작가의 이번 전시에서 만났던 것 같다. 호호불며 찜기에서 꺼내 든, 좋은 재료로 속을 가득 채운 야채 만두 같은 아삭한 맛, 오래 담근 레몬 청에 레몬 즙을 쪽 짜내 더한 달콤 상콤한 레몬 차 맛을 상상하며 돌아왔다. 은은하고 따뜻하게 곁에서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을 느끼며 삼청동에 서둘러 다녀오시기를 권한다. 이만 총총 /한국신사 이헌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