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하면 다니엘"…방송서 활약하던 그의 두 번째 직업 [본캐부캐]

[김수영의 본캐부캐]
스타들의 본캐와 부캐를 동시에 만나는 시간

다니엘 린데만, 방송인 겸 7년차 피아니스트
신곡 발매에 공연 무대까지 '활발한 활동'
"피아노 10세 때부터 배워"
"재즈의 매력은 자유 그리고 한계"
한독 문화 메신저로도 '활약'
"다니엘이 곧 독일, 독일이 곧 다니엘? 감사"
"비슷한 역사 가진 두 나라, 관계 더 깊어지길"
대한민국 성인남녀 절반 이상이 '세컨드 잡'을 꿈꾸는 시대입니다. 많은 이들이 '부캐(부캐릭터)'를 희망하며 자기 계발에 열중하고 새로운 미래를 꿈꿉니다. 이럴 때 먼저 도전에 나선 이들의 경험담은 좋은 정보가 되곤 합니다. 본캐(본 캐릭터)와 부캐 두 마리 토끼를 잡았거나 본캐에서 벗어나 부캐로 변신에 성공한 스타들의 잡다(JOB多)한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편집자주>
방송인 겸 피아니스트 다니엘 린데만 /사진=변성현 기자
"누군가 갑자기 곁을 떠나게 되면 예전에 유명했던 문학책을 꺼내 보거나 시를 쓰고, 노래를 부르고 싶기도 하죠. 예술은 인간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생각을 했어요."예능 프로그램 '비정상회담'에서 한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해 많은 시청자를 놀라게 했던 독일인 다니엘 린데만이 '재즈 피아니스트'로 제2의 삶을 살고 있다.

최근 서울 모처에서 만난 다니엘은 "방송과 음악 활동 모두 열심히 하고 있다. 공연을 준비하고 무대에 오르며 지냈다. 신곡도 냈다"고 말했다. 부쩍 음악가로서의 행보가 많아진 그였다. 지난달만 해도 서울, 대구, 전주, 부평 등에서 공연하며 바쁜 나날을 보냈고, 싱글 '데이 스마일드(They Smiled)'를 발매하기도 했다.

각종 예능에서 정확한 한국어로 소신을 밝히던 모습만을 기억하는 이들이라면 피아노에 손가락을 올리고 부드럽게 리듬을 타는 그가 다소 새로울 테지만, 2017년 첫 앨범 '에스페랑스(Esperance)'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발매한 음반만 무려 10장인 7년 차 피아니스트다. 꾸준히 공연 무대에 오르면서 '피아니스트 다니엘'을 알아보는 이들도 점차 늘어가고 있다.다니엘 린데만은 "방송 외에도 다른 활동을 하고 싶었다. 운동도 꾸준히 해왔지만 직업으로 삼는 건 음악 쪽이었다"면서 "재즈를 접하면서 이번에 콰르텟 공연도 했다. 음악이 재미있다. 조금 더 파고 들어가고 싶은 분야"라고 밝혔다.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한 건 독일에 살던 10세 때였다. 할머니에게 리코더를 배워 열심히 불던 어린 다니엘 린데만은 당시 가족들과 다 같이 연주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는데, 그때 피아노는 삼촌 담당이었다고 했다. 다니엘 린데만의 눈에 다채로운 표정을 지으며 피아노를 연주하는 삼촌은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이후 레슨을 받기 시작하며 피아노와의 인연이 시작됐다.

비전공자인 그는 '독학'에 매진했다고 했다. 2016년 유튜브를 통해 미국 그룹 피아노 가이즈, 한국의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 이루마 등을 접하며 본격적으로 팔을 걷어붙였다. 다니엘 린데만은 "피아니스트가 된 게 유튜브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처음에 재즈를 1년 정도 독학하다가 레슨도 8~9개월 받았다. 그러다 지금은 또 너무 바빠져서 개인적으로 자료를 보면서 독학하고 있다"고 전했다.
사진=다니엘 린데만 SNS 캡처
연주뿐만 아니라 작곡까지 해내고 있는 그였다. 최근 발표한 곡 '데이 스마일드'는 우크라이나에서 전사한 두 친구와 올해 병으로 세상을 떠난 친척을 떠올리며 썼다. 친척은 앞서 다니엘 린데만에게 피아노와의 연을 선사해줬다는 바로 그 삼촌이다.

다니엘 린데만은 "이 사람들의 마지막 사진과 영상을 보는데 다 웃음을 짓고 있더라. 그런 의미를 담아 쓴 곡"이라면서 "마이너 계열로 시작해서 어두운 느낌이 있지만 중간에 밝은 부분도 있다. 삼촌 장례식장에서 엄마랑 같이 연주했는데 단순히 슬픔 감정보다는 그 사람에 대한 좋은 기억들이 떠올라 웃음을 짓게 되더라. 떠난 이와의 좋았던 순간들을 기억하는 차원의 곡"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가슴 아픈 소식이 많은 요즘 세상에서 '예술의 힘'을 더 강하게 느꼈다고 했다. "예술을 하는 사람들끼리 '예술이 우리 삶에서 왜 그렇게 중요할까'라는 고민을 많이 하는 거 같더라고요. 저도 처음에는 피아노의 음이 그대로 공중에서 사라지니까 남는 게 없지 않나 싶었어요. 그런데 관객들이 '순간 너무 좋았다', '행복해졌다'는 말을 하더라고요. 영원히 남는 일이 아니더라도 여운을 남길 수 있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되니 가치 있다고 느껴졌죠."음악가로서의 행보가 더욱 기대됐다. 다니엘 린데만은 "옛날에는 악보대로만 치는 사람이었는데 이제는 무대에서 음악을 만들어내고 소통하면서 주고받는 재미가 크다"고 말했다. 다만 "무조건적인 자유는 없다. 재즈라는 장르 안에 있는 여러 규정 속 산만해지지 않는 선에서 자유로워진다. 난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지금까지 파악하기로 재즈는 한계이자 자유이고, 자유이자 한계인 것 같다"며 미소 지었다.
2008년 교환학생으로 처음 한국 땅을 밟은 뒤 어느덧 15년째 머무는 중인 다니엘 린데만은 "힘든 순간이 많았다. 초반에는 여행하는 기분으로 마냥 설레기만 했는데 이젠 나도 많이 변했다. 아직 아이 같기도 하지만 조금 더 성숙해진 느낌"이라고 털어놨다.

올해 주한독일대사관은 다니엘 린데만을 한독수교 140주년 기념 홍보대사로 위촉했다. 음악 활동을 하고 있기에 양국의 문화적 메신저 역할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한독수교 140주년 기념 콘서트 사회를 양국에서 모두 맡아 진행했다. 그는 당시를 떠올리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 나 자신과 지난 15년의 생활에 대한 생각들이 계속 났다"고 고백했다.

이어 "'비정상회담'을 아무 생각 없이 시작했는데 이제는 '다니엘이 곧 독일이고, 독일이 곧 다니엘이다'라는 말들을 하신다. 부담스럽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다"면서 "두 나라는 비슷한 역사를 가졌다. 지리학적으로 보면 멀리 떨어져 있지만 은근히 나눌 수 있는 게 참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예전에는 독일에서 한국학을 전공하고 싶다고 했을 때 말리는 사람도 있었는데 이제는 한국학과에 들어가려고 해도 자리가 별로 없다. 2018년에 KBS '뮤직뱅크'가 독일에서 진행됐을 당시 1만 8000명이 왔다. 객석 인터뷰를 했는데 독일, 스페인, 프랑스인 모두 한국어로 인사해 놀랐다. 한독 관계가 더 깊어졌으면 좋겠는데 반대로 한국에서 독일어를 전공하겠다는 사람은 많이 줄어서 슬프다"고 덧붙였다.

다니엘 린데만의 한국 사랑은 계속될 예정이다. 13세 때 태권도를 배운 그는 2008년부터는 합기도를 해오고 있다. 2급 생활스포츠지도사 시험까지 합격해 연수 교육만 남겨두고 있다. 도전하는 모든 게 '진심'으로 가득 차 보였다. 해금 소리가 너무 좋다며 이 또한 배워보고 싶다고 했다. 오는 8일 결혼을 앞두고 예비 신부와 식장에서 선보일 깜짝 이벤트도 준비 중이라며 환하게 웃었다."제 직업이요? 방송을 시작하면서 정말 많이 고민했던 건데요. 요즘은 '독일 출신 방송인이자 피아노 연주자'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방송, 음악, 그리고 운동까지 다 유지하는 게 최고이지만 이제 결혼도 하고 가족도 생기니 무언가에 집중해야 한다는 생각도 들어요.(웃음) 일단 지금은 음악 쪽으로 더 깊이 알아보고 싶습니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