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두면 돈 들어와요"…연말마다 남녀노소 찾는 물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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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달력 품귀…중고거래 플랫폼에도 등장"은행 달력을 걸어두면 돈이 들어온다?"
4대 은행 관계자 "달력 관련 민원 많다"
을지로 인쇄 골목 찾는 사람도
올해도 어김없이 은행 달력이 인기다. 금전운을 부른다는 속설과 함께 은행 달력을 찾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비싼 값에 중고 거래 플랫폼에도 등장했다.주요 은행에서 달력 발행 부수를 점차 줄이고 있어 품귀 현상은 더 심해지는 모양새다. 고객서비스 차원에서 무료 배포하기 시작한 것임에도 콜센터에는 '달력을 왜 안 주느냐'는 민원까지 들어오는 상황이다.
◆ 연말만 되면 남녀노소 찾는 은행 달력
1일 검색량 지표 네이버 데이터랩에 따르면 은행 달력 관련 검색량 지수가 남녀 전체 연령대에서 지난달부터 급증했다. 지난달 1일 30이던 지수는 지난달 27일 100까지 꾸준히 늘었다. 해당 지표는 가장 검색량이 많은 날을 100으로 두고 상대적인 추이를 나타낸다.중고 거래 플랫폼에선 값비싼 가격에 자신이 받은 은행 달력을 되파는 사람도 있었다. 특히 유명 가수가 모델인 우리은행의 달력은 1만원대의 가격에도 거래가 이뤄지고 있었다. "어느 지역은 다음 주부터 달력을 배포한다더라", "달력을 받으려면 해당 은행 계좌가 꼭 있어야 하냐" 등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은행 달력을 찾는 모습이 쉽게 보였다.
◆ 은행 달력 직접 구해보니
주요 은행 영업점이 지난달 초중순부터 달력 배포를 시작했다.영업점마다 달력을 배포하는 기준은 모두 다르다. 4대 주요 은행(국민, 신한, 우리, 하나) 관계자는 "달력을 배포하는 가이드라인은 따로 없다. 연말에 창구에서 거래하는 고객에게 제공하거나, 특정 날짜에 선착순으로 배포하는 등 영업점의 여건에 맞춰 운영한다"고 말했다.
은행 영업점에서 근무하는 20대 A씨는 달력 배포 규정에 대해 "올해의 경우 배부 날짜를 정해서 아침부터 선착순으로 배부했다"며 "단, 예치한 자산이 많거나 거래를 많이 해서 실적 높은 고객을 위해 따로 빼두는 분량도 있다"고 전했다. 1일 오후 을지로 인근의 은행을 가보니, 3곳 중 2곳이 해당 은행의 계좌를 보유하고 있어야 달력을 받을 수 있었다. 한 곳은 아무 조건 없이 달력을 줬다. 출입구에 달력 배포에 대한 공지가 따로 붙어있진 않았고, 직원에게 문의할 경우 달력을 제공했다.
최근엔 달력 배포를 온라인으로 진행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우리은행, 하나은행 등은 지난달 초 자사 앱을 이용하는 고객에게 달력 응모권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달력 일부를 배포했다.
은행에서 달력을 받다 만난 60대 여성 B씨는 "달력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면서 "정작 달력이 필요한 사람은 앱 사용이 익숙지 않은 세대일 텐데 앱으로 달력을 배포하면 영업점에서 배포할 물량이 줄어드는 건 아니냐"며 걱정했다.
◆ 갖고 싶은 사람 많은데…발행 부수는 줄어
30년 넘게 집에 벽걸이형·탁상형 은행 달력을 꼭 하나씩 둔다는 60대 주부 이모 씨는 "과거에 비해 은행 달력을 구하기 어렵다는 것을 체감한다"며 "5년 전만 해도 연말에 은행에 가면 번호표를 발급하지 않아도 입구에 달력이 쌓여있었다"고 말했다.올해 달력을 구한 방법에 대해선 "최근 은행에서 연금저축보험을 새로 가입해 다행히 손쉽게 달력을 구했다"고 전했다.
실제로 시중은행의 달력 발행 부수는 매해 감소하는 추세다. 4대 은행 중 한 곳의 달력 입찰 공고문을 확인해보니 올해 발행하는 달력은 계열사까지 포함해 총 245만부였다. 같은 은행에서 2017년 374만부를 발행했던 것에 비하면 약 34% 줄어든 것이다.
한 은행의 관계자는 정확한 달력 발행 부수를 밝히지 않고 "연말만 되면 '달력이 왜 부족하냐', '달력을 더 줄 순 없냐'고 묻는 콜센터 민원이 많이 들어온다"면서 달력 배포에 대한 고충을 하소연하기도 했다. 달력 발행 부수를 소폭 늘린 곳도 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달력 발행 부수에 대해 "2021년부터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의 일환으로 발행 부수를 확 줄였다가 최근 다시 수요가 늘고 있어 소폭 늘렸다"고 전했다.
이어 "정확한 수량을 밝히긴 어렵지만 올해도 추가 제작에 들어가 작년보단 총 발행 부수가 조금 늘어날 전망"이라면서 "다만 달력은 지나치게 많이 제작하면 재활용이 어렵기 때문에 발행 부수를 확 늘리는 것이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달력이 중고 거래되는 현상에 대해선 "우리도 확인했지만, 일일이 대응하기가 어렵다"면서 "배포 기준은 영업점 재량이며 전반적인 수요나 운영 상황에 따라 다음 해의 발행 부수를 결정하게 된다"고 전했다.
◆ 은행 달력 품귀가 불러온 이색 현상
은행 달력의 인기가 단순히 돈을 부른다는 속설 때문만은 아니다. 종이 달력이 익숙한 5060세대는 은행 달력의 장점을 '실용성'으로 꼽는다. 60대 이모 씨는 은행 달력을 고집하는 이유에 대해 "한눈에 날짜를 파악하기 쉬운 큼지막한 숫자 크기와 간단히 메모하기 좋은 넉넉한 여백 때문"이라고 말했다.은행 달력을 구하는 것이 어려워지자 벽걸이 달력을 찾아 을지로 인쇄소에 방문하는 이도 생겼다. 도매 위주의 거래가 이뤄지는 을지로 인쇄골목에서는 다양한 디자인의 달력을 개당 2000원에 팔고 있었다.달력 상점 직원 A씨는 달력 1부도 파냐는 질문에 "당연하다. 1부 사러 오는 손님도 많다"면서 "요즘엔 은행이나 약국에서 달력 배포를 잘 안 하지 않냐. 집에 종이 달력이 꼭 있어야 하는 60, 70대 노인들이 달력을 사러 많이 온다. 종종 손님(기자) 같은 젊은 분들도 온다"고 전했다.
김영리 한경닷컴 기자 smart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