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분간 '1인 방통위'…방송개혁 올스톱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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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관, 95일 만에 사퇴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이 윤석열 대통령에게 사의를 밝힌 건 자신에 대한 국회 탄핵안 표결을 하루 앞둔 지난달 30일이다. 이 위원장은 1일 정부과천청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거대 야당이 국회에서 추진 중인 탄핵소추가 이뤄질 경우 심판 결과가 나오기까지 몇 개월이 걸린다”며 “이런 탄핵소추는 비판받아 마땅하나 국정을 책임지는 입장에서는 대의를 우선해야 한다”고 자진 사퇴 배경을 설명했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은 후임 방통위원장에 대해서도 “‘이동관 아바타’가 임명될 수 있다”며 각을 세우고 있어 방통위의 업무 공백이 길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李 "탄핵 심판까지 수개월 걸려
대의 우선해야 한다 생각해 결정"
상임위원 5명 중 한 명만 남아
총선 전 가짜뉴스 관리도 난항
○방통위, 업무 공백 불가피
민주당의 계획대로 탄핵안이 의결됐다면 헌법재판소에서 탄핵 인용 여부를 심판하는 데 최장 180일이 걸린다. 올해 초 민주당이 탄핵안을 통과시킨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도 복귀까지 167일이 걸렸다.그나마 행안부는 이 장관의 업무 정지 기간에도 차관이 장관직을 대행해 일상적인 업무 처리에 어려움이 없었다. 다섯 명의 위원이 합의해 주요 업무를 처리해야 하는 방통위는 다르다. 이 위원장의 직무가 정지되면 방통위원은 한 명만 남게 돼 업무 자체를 처리할 수 없게 된다. 방통위 설치법상 1인 체제에서는 전체회의 소집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주요 안건 심의와 의결은 재적의 과반이 찬성해야 하기 때문에 1인 체제에선 처리할 수 없다.이 위원장의 자진 사퇴로 방통위는 장기 업무 공백은 피했지만 후임자가 임명될 때까지 한 달 이상 제 역할을 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방송개혁과 총선 기간 가짜뉴스 방지 등 여권이 추진하는 주요 정책은 물론 일반 업무 처리에도 차질을 빚을 전망이다. 지상파 3사 등 방송사 재허가 및 재승인 심사, 구글과 애플 등 인앱결제 강제에 대한 과징금 부과 등에도 제동이 걸리게 된다.
○정치권은 ‘방송정책 줄다리기’
이날 탄핵안 처리를 앞두고 있던 민주당은 오전에 이 위원장의 자진 사퇴 소식이 알려지자 사표 수리를 반대하고 나섰다. 홍익표 원내대표는 “사표를 수리하는 것은 국회가 헌법적 절차를 진행하고 있는 것에 대한 명백한 방해 행위”라며 “대통령은 이 위원장 사표를 수리하지 말고 국회 탄핵 절차가 마무리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정치권에서는 “민주당이 탄핵안 처리를 통해 방통위 업무가 보다 오래 정지되기를 겨냥했다는 방증”이라는 분석이 나왔다.신임 방통위원장이 임명되더라도 민주당의 탄핵안 처리는 재추진될 가능성이 높다. 이 위원장의 탄핵 사유로 든 ‘방송 자유 침해’가 추상적이어서 윤석열 정부 인사 누구에게든 적용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이날 이 위원장의 사의 표명을 두고 “(윤석열 정부가) 이동관 아바타를 내세워 끝내 방송 장악을 하겠다는 의도인 것 같다”며 “법과 원칙에 어긋나는 비정상적 행태에 대해선 가능한 한 모든 방법을 찾아 책임을 묻고 방지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여당인 국민의힘은 이 위원장의 자진 사퇴를 “나쁜 탄핵으로부터 방통위를 지킨 결단”으로 평가하며 방송개혁을 이어가야 한다고 했다. 전주혜 원내대변인은 “민주당의 방통위원장에 대한 탄핵은 문재인 정부 시절 이뤄진 기울어진 운동장을 그대로 이어가기 위한 것”이라며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숫자를 앞세운 힘에 맞서 반드시 방송의 공정성과 중립성을 세워나갈 것”이라고 했다.
노경목/도병욱 기자 do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