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립문서보관소가 공개한 한국전쟁의 공중폭격

[arte] 김현주의 탐나는 책
『폭격: 미공군의 공중폭격 기록으로 읽는 한국전쟁』, 김태우, 창비, 2013
<폭격>을 두 번 읽을 기회가 있었다. 한 번은 책이 출간된 직후였고, 다른 한 번은 그로부터 몇 년 후 독일 영화감독이자 작가인 알렉산더 클루게의 <1945년 4월 8일 할버슈타트 공습>(2021년 문학과지성사 출간)의 교정 작업을 하면서였다. 클루게의 책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나기 4주 전, 당시 열세 살이던 저자가 살던 독일의 소도시 할버슈타트에서 벌어진 무차별 폭격을 비롯해 각종 공습과 관련된 이야기를 픽션과 논픽션을 뒤섞어 다양한 각도에서 담아낸 독특한 형식의 소책자였다.
나는 새 책의 교정을 시작할 때 으레 그렇듯, 이런저런 관련 책들을 끌어 모아 책상에 올려두었다. 스벤 린드크비스트의 <폭격의 역사>와 아라이 신이치의 <폭격의 역사>가 있었고, <아틀라스 세계 항공전사>를 비롯한 각종 전쟁사, 역사책들, 최인훈의 <화두>나 제임스 설터의 <사냥꾼>, W. G. 제발트의 <공중전과 문학>과 같은 문학 관련서, 여기에 <항공법규>나 <비행기조종학> 같은 전문서도 추가했다. 그리고 당연히 김태우의 <폭격>도 곁에 두고 출퇴근하며 읽었다. <1945년 4월 8일 할버슈타트 공습>과 <폭격>의 이야기는 서로 다른 시기, 서로 다른 장소에서 일어난 별개의 두 폭격에 대한 이야기로 느껴지지 않았다. 그것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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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격>은 미국의 국립문서보관소와 미공군역사연구실을 통해 공개되기 시작한 미공군 문서 10만여 장을 토대로, 한국전쟁 시기 북한과 남한 전역에서 이루어진 폭격의 실제 사례를 분석, 미공군 공중폭격 정책의 배경과 변화 과정을 살펴본다.

저자에 따르면 한국전쟁이 발발했던 1950년 당시에는 전쟁 수행 방식에 대한 인식이 지금과 다른 지형을 형성하고 있었다. 불과 5년 전, 독일과 일본에서 인구밀집지역에 대형 폭격을 가해 대규모 민간인 희생을 초래했던 미공군은, 전후 유럽에서 반전평화운동이 강력하게 일고 미국 국내외 여론의 거센 비판을 받게 되자, 한국전쟁 초기에는 군사목표만을 폭격하는 ‘정밀폭격 정책’을 채택한다.

그러나 이러한 분위기는 군사적 위기 상황 속에서 점진적으로 와해되고, 결국 ‘무차별폭격(초토화) 정책’으로 방향을 튼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이 시기 민간지역 폭격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적이 없으며, 심지어 한국의 공식 역사 서술은 미국의 공중폭격에 대해 ‘자유를 위해 불가피한 것’이었다는 논리 하에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거나, 거의 언급을 하지 않으며 제대로 규명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한때 한반도가 집중폭격의 희생양이 된 적이 있다는 것을, 철저하게 ‘초토화’된 적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는 이들이 많지 않은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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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격>과 <1945년 4월 8일 할버슈타트 공습>과 같은 책들은 오늘날 가자 지구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며 그 기억들을, 초토화된 땅의 이미지를 다시 떠올릴 수 있도록 만든다. 김태우 교수가 책에서 말한 것처럼, 전쟁과 공중폭격의 문제는 반세기 전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명백한 오늘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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