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이 정밀하게 조율한 아티큘레이션과 임윤찬의 철저한 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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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임성우의 클래식을 변호하다이번에 내한한 뮌헨필과 협연한 피아니스트 임윤찬의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이 장안에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거의 아이돌급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피아니스트인지라 최근에 유튜브에는 그의 연주를 소개하는 다양한 영상들이 속속 올라오고 있는데, 그 중에서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4번의 1악장의 카덴차를 임윤찬을 비롯한 다양한 연주자들의 연주를 악보와 함께 비교한 영상이 있어 흥미를 끕니다.
위 영상을 보면 이번 협연에서 임윤찬이 사용한 베토벤의 첫번째 카덴차 및 그 축약 버전만을 언급하고 있지만, 사실 베토벤은 이 협주곡의 1악장 카덴차를 하나 더 작곡하였습니다. 그 중에 두번째로 작곡한 카덴차도 첫번째 카덴차 못지 않게 아름답습니다(아래 Minnaar 연주 참조).
Minnaar - 두번째 버전 카덴차
다양한 카덴차들
그러나 피아니스트들이 가장 즐겨 연주하는 카덴차는 베토벤이 작곡한 첫번째 카덴차인데, 위의 안인모 피아니스트의 유튜브 영상도 이 첫번째 카덴차를 가지고 여러 연주들을 비교하고 있습니다.위 영상에서는 베토벤의 카덴차를 리듬과 페르마타, 장식음, 트릴 등등의 관점에서만 설명하고 있는데, 사실 이 카덴차 연주에서 빼놓을 수 없는 아주 중요한 부분의 하나는 (베토벤이 극도로 정밀하게 조율하여 놓은) 아티큘레이션(각 음을 분명하고 명료하게 연주하는 것)입니다.
위 유튜브 영상에서 다양한 연주자별로 비교하고 있는 부분은 바로 아래 악보 부분인데, 악보에서 보시는 바와 같이 파란색 밑줄 부분의 (음들을 서로 잇지 않고 각각 끊어서 연주하는) 논 레가토와 빨간색 부분의 (음들을 이어서 이어서 연주하는) 슬러와 스타카토가 결합된 아티큘레이션은 1악장의 핵심 동기와 관련이 있습니다.즉, 위의 카덴차 악보에서 빨간색 파란색 등으로 표시된 부분은 1악장 도입부에 피아노가 솔로로 연주하는 아래 핵심 동기에서 비롯된 것입니다.마치 오르페우스가 연주하는 리라의 섬세한 음향을 연상시키는 위 도입부 솔로는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25번의 1악장에서 차용한 듯한) 3개의 스타카토에 의한 8분음 이후, 슬러로 연결된 2개의 8분음, 그리고 스타카토에 의한 2개의 8분음으로 이루어진 음악적 소재를 제시하고 있는데, 이 소재는 1악장 전반에 집요하게 반복해서 나타나는 핵심적인 소재입니다.
여기서는 스타카토와 슬러로 연결된 레가토의 대비가 관건인데, 특히 슬러로 연결된 2개의 8분음의 경우 앞의 8분음에 강세를 두고 뒤의 8분음은 여리고 짧게 타건하여 앞의 8분음과 부드럽게 이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이어지는 스타카토 음들과는 구분하여야 합니다.
마침 안인모 피아니스트는 아래 영상에서 위의 도입부 5마디 부분의 연주도 각 피아니스트별로 비교한 영상을 포스팅하고 있습니다.
도입부 핵심 주제 연주 비교
위 영상에서는 안인모 피아니스트는 임윤찬의 연주가 아주 명징하게 직조된 느낌을 준다고 하면서도 그 이유에 대해서는 자세히 설명하지 않고 있는데, 임윤찬의 연주가 상대적으로 더 명징하게 직조된 느낌을 주는 이유는 그가 위에서 설명드린 악보상의 미묘한 아티큘레이션의 굴곡을 너무도 잘 살렸기 때문입니다.
위의 도입부 핵심 주제에 대한 다양한 연주들을 해당 영상에서 비교해보시면, 그 가운데 특히 트리포노프, 릴리 클라우스, 부흐빈더 등이 다른 피아니스트와 달리 아티큘레이션에 상대적으로 덜 민감한 연주임을 알 수 있는데, 이것을 눈치채신다면 아주 예민한 귀를 가지신 것으로 자부해도 될 것입니다.
다시 카덴차 내용에 관한 이야기로 돌아와 보면, 해당 영상에서 연주자별로 서로 비교 감상을 할 때 매우 중요한 감상 포인트의 하나가 (바로 아래 악보의 파란색 부분과 빨간색 부분으로 표시된) 아티큘레이션의 차이를 각 연주자가 정확히 구분하여 표현해내는지 여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임윤찬의 연주가 탁월한 것은 그가 이러한 악보의 내용(특히 아래 악보의 첫부분에 표시한 레가토 표현)을 아주 철저하게 재현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고, 그 결과 듣는 이의 귀에 매우 명징하고 입체적인 음악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카덴차 연주자별 비교 영상
이처럼 임윤찬의 연주는 세부 아티큘레이션의 표현에 있어서 다른 많은 연주자들보다 뛰어나다고 할 수 있습니다만, 그의 연주에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아래 악보에서 보는 바와 같은 쉼표 공간의 표현입니다.그가 연주한 카덴차를 자세히 들어보면 위 악보의 첫번째 쉼표 부분은 잘 표현했습니다. 그런데, 위 악보의 둘째 단락의 연속되는 8분 쉼표는 (아쉽게도 페달을 계속 사용하여) 정확한 표현을 놓치고 있습니다. 이는 사실 다른 대부분의 피아니스트도 마찬가지입니다.
세번째 단락의 경우도 앞의 두 마디의 긴 쉼표는 잘 표현했는데, 6/8박자로 바뀌는 부분에서는 다시 페달을 길게 써서 쉼표의 공간이 사라집니다. 이 부분은 조성진 연주가 악보상의 쉼표를 잘 지키고 그러 인한 음악적 긴장감을 더 잘 표현하고 있는데, 한 번 서로 비교해보시기 바랍니다.
조성진
임윤찬
사실 이처럼 베토벤이 악보상 레가토와 스타카토, 그리 쉼표까지도 매우 다양하고도 정교하게 결합시켜 만든 세밀한 아티큘레이션 표기를 실제 연주를 통해 정밀하게 표현해내기는 생각보다 매우 까다로운 작업입니다.
그런데, 임윤찬의 경우는 (아주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으나) 이를 아주 극도로 섬세하게 표현해내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많은 연주자들과 확실히 차별화됩니다.
그 밖에, 카덴차는 아니지만 임윤찬의 1악장 연주에서 우리에게 익숙한 악보와는 다르게 치는 부분이 몇 가지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임윤찬은 도입부 솔로 부분 악보의 끝 부분(빨간색 박스 처리 부분)을 마치 슬러(이음줄)이 앞의 두 개의 음표에만 있는 것처럼 살짝 끊어 연주를 하였습니다.
처음 들었을 때는 악보와 다르게 연주한 것인가 하고 오해를 하기도 하였는데, 사실 이는 베렌라이트 판본에 따른 것으로 보입니다(아래 악보). 아라우 연주 등도 같은 판본에 의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러한 아티큘레이션의 미세한 차이를 구분해내신다면 황금귀를 가지신 것입니다.그 밖에도 임윤찬은 1악장에서 아래의 16분음을 두 개씩 슬러로 묶은 아티큘레이션이 연속되는 부분과 관련하여서는 우리에게 흔히 알려진 악보가 아닌 아래와 같이 음역을 낮춘 버전에 따라 연주합니다(바렌보임, 민나르 등도 이 버전에 의해 연주합니다 : 위 Minnaar 연주 12:40 부분 참조).임윤찬
그런데, 우리에게 익숙한 연주는 아래와 같은 악보에 따른 연주인데, 대체로 많은 피아니스트들이 이 부분을 아래 버전에 따라 연주합니다.루이스
여러분은 위의 두 버전 가운데 어느 버전이 더 좋으신가요? 이러한 버전은 차이는 아마도 베토벤 작곡 당시의 피아노의 음역대와 무관하지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원래는 당시의 에라르 피아노의 한계로 위의 버전과 같이 작곡하였으나 후일 피아노의 음역대가 높아지면서 아래의 버전과 같이 수정된 것으로 보이는데, 아무튼 이 두 개의 다른 버전의 차이를 연주를 통해 감지하실 수 있다면 정말 황금귀를 가지고 있다고 자부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이상과 같이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의 카덴차와 그리고 일부 패시지 등과 관련하여 악보의 기재와 또 다양한 연주의 차이들을 소개 드렸는데, 말씀 드린 것처럼 임윤찬의 베토벤 연주가 매우 명징하고 대조대비의 굴곡이 잘 살아나 매우 음악적으로 신선하게 들리는 것은 그가 악보를 무시하고 독창적인 방식으로 연주하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그가 (다른 많은 연주자들이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베토벤의 악보의 내용을 매우 충실하게 그대로 재현하려고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고, 그가 하는 연주마다 늘 기대되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입니다.
임윤찬 카덴차 (악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