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부숴 먹는 전시회까지?… '발칙한' 전시들이 몰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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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은 미술 애호가들이 사랑하는 계절이다. 봄·가을에는 대중성 높은 전시를 열던 갤러리들이 ‘겨울 비수기’를 맞아 예술성 높은 유망 작가들을 소개하기 때문이다. 이때 열리는 전시들에는 각 화랑의 색깔과 내공, 미술계 최신 조류 등이 뚜렷이 드러나 ‘보는 맛’이 있다는 게 애호가들의 얘기다. 사람들이 연말을 맞아 영화관·공연장으로 몰리는 덕분에 전시장은 상대적으로 한적하다는 것도 겨울만의 장점이다.
올해 연말도 어김없이 서울 시내 곳곳에서 젊은 작가들의 참신한 작품들이 관객을 기다리고 있다. 시각 외에도 미각·청각·후각·촉각을 함께 자극하는 전시들이 특히 눈에 띈다. 작품을 실제로 조각내서 먹는 경험(갤러리신라)부터 음악을 듣고 향기를 맡으며 작품을 보는 경험(BHAK), 사람의 신체와 촉각을 주제로 한 전시(지갤러리)를 모았다.
페레로가 이렇게 특이한 작품을 만든 이유를 풀어서 설명하면 이렇다. 작가의 고향은 멕시코. 16세기 스페인에 정복당해 오랫동안 식민 지배를 받았던 곳이다. 현대 멕시코의 인종과 언어(스페인어), 종교(카톨릭) 등에 스페인의 흔적이 짙게 남아 있는 이유다. 식민 지배에서 독립한지 200년이 넘은 지금도 멕시코는 경제·문화적으로 북미 지역과 유럽의 영향권 아래에 있다.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서양 문화를 극복하고 이겨내는 일종의 ‘의식’이 필요하다. 서양 문화의 근본은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 이들의 유산을 먹어치워버리자는 게 작가의 의도다.이 전시는 지난 8월부터 10월까지 뉴욕 스위벨 갤러리에서 똑같은 이름과 형식으로 열린 적이 있다. 물론 전시장에 나와 있는 작품들은 한국 전시를 위해 새로 만든 것이다. 관람은 무료고, 150달러(약 18만원)을 낸 뒤 상자를 구입하면 전시장에서 지급하는 도구로 직접 초콜릿 조각을 부숴서 상자 가득 담아갈 수 있다. 이 디렉터는 “관객들이 다같이 작품을 먹고 소화한 뒤 배설하며 현대미술의 참신함을 되새겨볼 수 있는 전시”라고 설명했다. 전시 폐막일과 초콜릿 작품의 ‘유통기한’ 모두 오는 27일까지다.
반대로 황 작가는 몸의 바깥쪽인 피부에 집중한다. 황 작가가 종이로 만든 조각은 직선과 곡선이 뒤섞인 독특한 모양을 띠고 있다. 질감도 특이하다. 설명을 듣지 않고 그냥 보면 철이나 돌로 만들었다고 착각할 정도다. 황 작가는 “모양과 질감을 구현하기 위해 재단용 곡선자와 페인트 등 여러 재료를 사용했다”고 말했다. 세균과 같은 외부 이물질에서 몸을 방어하는 강력한 방패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부드럽고 쉽게 상처 입는 피부의 성질을 작품으로 구현했다는 설명이다. 전시는 오는 23일까지.서울 한남동 BHAK에서는 다양한 감각을 동시에 자극하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지상 전시장에서 열리고 있는 연누리 작가(39)의 개인전 ‘헤일로’가 대표적이다. 관객들은 연누리가 오디오 스피커 부품을 이용해 만든 설치 작품을 직접 만지고 작동시켜볼 수 있다. 박종혁 대표는 “관객이 직접 원하는 음악을 골라 감상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전시장을 가득 채우는 건 작품에서 나오는 음악 뿐만이 아니다. 관람객들은 흙과 나무의 느낌이 섞인 BHAK 특유의 향기를 맡을 수 있다. 갤러리가 작품 감상을 돕기 위해 지난 3월 전문 조향사와 함께 개발한 향 'Sol'이다. 향이 특히 잘 어울리는 곳은 지하 전시장에서 열리고 있는 순재 작가(31)의 개인전. 이곳에서는 작가가 오방색을 가미해 그린 신작들을 만날 수 있다. 오는 23일까지 향과 그림을 함께 즐길 수 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올해 연말도 어김없이 서울 시내 곳곳에서 젊은 작가들의 참신한 작품들이 관객을 기다리고 있다. 시각 외에도 미각·청각·후각·촉각을 함께 자극하는 전시들이 특히 눈에 띈다. 작품을 실제로 조각내서 먹는 경험(갤러리신라)부터 음악을 듣고 향기를 맡으며 작품을 보는 경험(BHAK), 사람의 신체와 촉각을 주제로 한 전시(지갤러리)를 모았다.
씹고 맛보고 즐기는 현대미술
서울 삼청동 갤러리신라에서는 멕시코 작가 안드레아 페레로(32)의 전시가 열리고 있다. 전시장에는 그리스·로마 시대 신전의 폐허를 연상시키는 흰색과 분홍색의 조각들이 가득 널려 있다. 대리석으로 만들었나 싶지만, 실은 이 조각들의 재료는 모두 화이트초콜릿이다. 이준엽 디렉터는 “국내 최초의 식용 조각 전시”라고 설명했다.페레로가 이렇게 특이한 작품을 만든 이유를 풀어서 설명하면 이렇다. 작가의 고향은 멕시코. 16세기 스페인에 정복당해 오랫동안 식민 지배를 받았던 곳이다. 현대 멕시코의 인종과 언어(스페인어), 종교(카톨릭) 등에 스페인의 흔적이 짙게 남아 있는 이유다. 식민 지배에서 독립한지 200년이 넘은 지금도 멕시코는 경제·문화적으로 북미 지역과 유럽의 영향권 아래에 있다.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서양 문화를 극복하고 이겨내는 일종의 ‘의식’이 필요하다. 서양 문화의 근본은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 이들의 유산을 먹어치워버리자는 게 작가의 의도다.이 전시는 지난 8월부터 10월까지 뉴욕 스위벨 갤러리에서 똑같은 이름과 형식으로 열린 적이 있다. 물론 전시장에 나와 있는 작품들은 한국 전시를 위해 새로 만든 것이다. 관람은 무료고, 150달러(약 18만원)을 낸 뒤 상자를 구입하면 전시장에서 지급하는 도구로 직접 초콜릿 조각을 부숴서 상자 가득 담아갈 수 있다. 이 디렉터는 “관객들이 다같이 작품을 먹고 소화한 뒤 배설하며 현대미술의 참신함을 되새겨볼 수 있는 전시”라고 설명했다. 전시 폐막일과 초콜릿 작품의 ‘유통기한’ 모두 오는 27일까지다.
시각·촉각·청각·후각…‘감각의 향연’
서울 청담동 지갤러리에서는 최윤희 작가(37)와 황수연 작가(42)의 2인전 ‘두꺼운 피부’가 열리고 있다. 두 작가 모두 각종 젊은 작가 지원 프로그램에 여러 번 선정되며 미술계의 시선을 끌고 있는 유망 작가다. 이들이 전시장에 ‘몸과 피부’를 주제로 한 작품들을 들고 나왔다. 추상화가인 최 작가는 아지랑이나 연기가 피어오르는 듯한 몽환적인 추상화를 선보이고 있다. 최 작가는 “숨을 들이쉬면서 몸 안으로 들어온 공기가 다시 밖으로 나가는 풍경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설명했다.반대로 황 작가는 몸의 바깥쪽인 피부에 집중한다. 황 작가가 종이로 만든 조각은 직선과 곡선이 뒤섞인 독특한 모양을 띠고 있다. 질감도 특이하다. 설명을 듣지 않고 그냥 보면 철이나 돌로 만들었다고 착각할 정도다. 황 작가는 “모양과 질감을 구현하기 위해 재단용 곡선자와 페인트 등 여러 재료를 사용했다”고 말했다. 세균과 같은 외부 이물질에서 몸을 방어하는 강력한 방패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부드럽고 쉽게 상처 입는 피부의 성질을 작품으로 구현했다는 설명이다. 전시는 오는 23일까지.서울 한남동 BHAK에서는 다양한 감각을 동시에 자극하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지상 전시장에서 열리고 있는 연누리 작가(39)의 개인전 ‘헤일로’가 대표적이다. 관객들은 연누리가 오디오 스피커 부품을 이용해 만든 설치 작품을 직접 만지고 작동시켜볼 수 있다. 박종혁 대표는 “관객이 직접 원하는 음악을 골라 감상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전시장을 가득 채우는 건 작품에서 나오는 음악 뿐만이 아니다. 관람객들은 흙과 나무의 느낌이 섞인 BHAK 특유의 향기를 맡을 수 있다. 갤러리가 작품 감상을 돕기 위해 지난 3월 전문 조향사와 함께 개발한 향 'Sol'이다. 향이 특히 잘 어울리는 곳은 지하 전시장에서 열리고 있는 순재 작가(31)의 개인전. 이곳에서는 작가가 오방색을 가미해 그린 신작들을 만날 수 있다. 오는 23일까지 향과 그림을 함께 즐길 수 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