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약사 '철옹성 카르텔'에 환자 편의 포기한 비대면 진료

환자 서비스 범위 확대했지만
약 배송 빠지면서 '반쪽' 논란

이지현 바이오헬스부 기자
“약 배송 서비스가 빠지면서 의료취약계층의 의료 접근성을 높인다는 비대면 진료 기본 목적조차 달성하기 힘들어졌습니다. 사실상 반쪽짜리죠.”

비대면 진료 플랫폼 ‘올라케어’를 운영하는 김성현 블루앤트 대표의 말이다. 보건복지부는 오는 15일부터 현행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 범위를 확대할 계획이다. 코로나19 팬데믹에서 벗어난 올해 6월부터 비대면 진료를 시범사업 형태로 이어가고 있지만 규제가 많아 활용에 제약이 크다는 환자와 산업계 요구를 반영한 결과다.초·재진을 엄격히 구분하던 규정이 사라지면서 환자 진입 장벽은 낮아졌다. 평소 가던 병원을 중심으로 비대면 진료를 받도록 하면서 안전성 우려도 어느 정도 해소했다는 평가다.

의료분야 디지털 전환의 핵심은 서비스 선택의 주체를 공급자에서 소비자로 바꾸는 것이다. 비대면 진료도 마찬가지다. 보완책에 따라 환자가 ‘6개월 이내 방문한 의료기관’을 중심으로 서비스를 받도록 하면 평소 환자가 의료 수준 등에 따라 자신이 계속 찾을 병원을 미리 선택하게 된다. 플랫폼 등 공급자 중심의 현행 비대면 진료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는 의미다. 고심 끝에 내놓은 보완책이지만 약 배송이 빠지면서 의미가 퇴색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병원이 문 닫은 시간 비대면으로 의사를 만나도 약을 받으려면 문 연 약국을 찾아야 한다. 의료기관은 문 연 약국 중 환자에게 필요한 약을 보유한 곳을 찾아 처방전을 발행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환자의 약국 선택권은 훼손된다. 특정 약국으로 의료기관이 처방전을 발행하면 ‘유인·알선’을 금지한 현행 의료법을 위반할 가능성도 높다.

왜곡된 제도 탓에 비대면 진료에 대한 신뢰가 무너질 수 있다는 것도 문제다. ‘진료·처방’만 가능하고 ‘약 배송’은 안 되는 반쪽짜리 서비스로는 ‘환자 편의’를 높이는 데 한계가 있어서다. 장기적으로 ‘비대면 진료해 봐도 소용없더라’는 반대 근거만 쌓아줄 수 있다.비대면 진료는 의사와 약사 모두 반대하던 정책이다. 복지부가 결과적으로 ‘약사’ 이익만 지킨 결정을 내리면서 의사들의 반발 심리를 더욱 자극한 꼴이 됐다. ‘환자 편의’가 아니라 ‘정부 의지’에 따라 정책 결과가 좌우될 수 있다는 선례를 남겼기 때문이다. 전국 각지의 의사단체들은 벌써부터 ‘약 배송이 막혀 환자 편의도 못 지키는 비대면 진료는 무의미하다’며 반대 성명을 내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반(反)카르텔 정부’를 표방하고 있다. 비대면 진료 제약을 풀고 의대 정원 확대를 추진하면서 개혁 의지도 보여줬다. 약 배송은 주요 7개국(G7) 모든 나라가 허용하고 있다. 한국에선 환자와 소비자 모두 원하지만 약사 반대에 막혀 있다. 이런 것을 깨는 게 반카르텔이자 개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