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일훈 칼럼] 30년 경제기자의 K팝 관람기

도쿄돔 완판시킨 '마마 2023'
압도적 스케일·화려한 연출에
일본 8만 관객 열광

K팝은 글로벌 스트리밍의 총아
美 거대시장에 거침없는 도전
"문화교류가 확실한 안전보장"

조일훈 논설실장
K팝은 한국의 자랑이지만 나 같은 586세대에겐 다소 버겁다. 우선 빠르고 현란한 창법에 노랫말을 제대로 알아듣기 어렵다. 어지러운 춤동작들 사이에서 누가 누구인지 변별해내지도 못한다. 많게는 10명이 넘는 아이돌 그룹 멤버들은 기계적으로 조련한 듯한 몰개성적 엔터 제품이라는 인상을 준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그동안 곁눈질로 봐온 K팝 현장을 지난주 일본 도쿄돔에서 마주쳤다. CJ ENM이 매년 아시아 국가를 돌아가며 개최하는 K팝 시상식 ‘마마 어워즈(MAMA AWARDS)’. 줄서기 2시간, 공연 4시간에 걸쳐 K팝 이방인과 첨단 공연 현장의 엄청난 간극을 메우는 데 경제기자 30년의 공력을 쏟아부었다. 당연히 단기 속성은 불가능. 무대가 너무 멀어 아티스트들을 식별하는 데만 금세 피로가 왔다. ‘아티스트’란 용어도, 그들이 쓰는 ‘선한 영향력’이라는 말도 낯설었다. ‘이제 스무 살 안팎의 청년들에게 과분한 표현’이라는 의문이 사라지지 않았다.이 모든 거부감을 잠재운 것은 상상을 뛰어넘는 화려한 무대 퍼포먼스와 도쿄돔 4만여 좌석을 가득 메운 일본 팬들의 환호였다. 난생처음 하는 사람 구경, 함성 체험이었다. 관객들이 기립 떼창으로 화답한 일본 현지 아이돌 ‘JO1’과 ‘INI’ 그룹이 눈에 띄었다. CJ가 일본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한국식 오디션 프로그램과 합숙훈련을 통해 조련한 아이돌이었다. 백미는 일본의 전설적 록밴드 엑스재팬 리더 요시키의 등장. 1965년생인 중년의 로커와 한국 아이돌들의 협연은 국경과 세대, 장르를 훌쩍 뛰어넘는 것이었다. 대상은 세븐틴이 거머쥐었다. 단일 앨범 600만 장 판매라는 신기록을 보유한 이 괴물들은 마마 행사가 끝난 뒤 나고야로 건너가 사흘간 13만5000명을 모으는 기염을 토했다.

K팝이 세계 음악계에서 하나의 독립적 사조로 자리 잡은 것은 기업화·산업화·세계화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세계 시장을 상대로 스케일과 디테일 모두를 살리면서 공진을 거듭한 결과다. 일본의 음악 시장은 한국의 4배, 미국은 일본의 4배에 이른다. 히트곡을 하나 만들면 미국에서 16배의 성과를 거둘 수 있는 구조다.

세계의 변방이었던 K팝이 중심부로 진입한 스토리는 전쟁 폐허에서 반도체 자동차 조선산업을 일으킨 한국 산업사와 놀라울 정도로 닮았다. 2000년대 디지털 전환이 우리 제조업의 도약대로 작용한 것처럼 2010년대 유튜브 OTT 틱톡으로 대변되는 글로벌 스트리밍 시대는 한류의 대폭발을 이끌어냈다. 주류 콘텐츠 시장의 진입장벽이 무너지자 변방의 오타쿠 문화, 서브 컬처에 머물던 한국 문화의 참신성과 매력적 서사가 일약 세계의 중심으로 발돋움하게 된 것이다.몇몇 성공적 사례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가야 할 길은 멀고 험난하다. 미국 시장의 아성도 여전히 높고 견고하다. 테일러 스위프트 같은 불세출의 아티스트가 한 해 벌어들이는 돈이 한국 모든 가수들의 수입을 합친 것보다 많다. 하지만 K콘텐츠 제작자와 창작자들의 글로벌 지향, 팬덤을 활성화하기 위한 신기술 활용 능력은 이미 정상급이다. “K팝에서 K를 떼어내야 한다”는 담대한 구상을 밝힌 방시혁(하이브 창업자)은 미국에서 살다시피 하면서 인공지능(AI)과 가상현실(VR) 기술에도 적극 투자하고 있다.

이런 노력들로 돈을 벌고 명성을 얻는 것은 그들의 당연한 몫이지만 우리도 삶의 다방면에서 그 혜택을 보고 있다. 역사상 한국과 한국인과 한국어가 이렇게 매력적인 존재로 추앙받은 적이 없다. 이달 초 이시카와현 나나오시에서 열린 제16회 ‘아시안 TV드라마 콘퍼런스’. 한국 일본 중국 등의 영상 전문가들이 모인 자리에서 후원을 맡은 니혼게이자이신문의 스기타 료키 전 사장은 이렇게 환영사를 썼다. “문화 교류는 연설이나 논문에 비해 몇 배의 외교적 가치가 있다. 나는 국경을 초월해 문화를 교류하는 것이 평화를 보장하는 이른바 ‘제2의 안전보장’이 된다고 생각한다.” 한국에 비해 뒤처진 일본 음악과 드라마의 분전을 촉구하면서 쓴 글치고는 다소 한가로운 결말이지만 우리 상황에서 이 문구만큼 K팝의 가치를 정확하게 알려주는 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