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건 기술개발 집념…세상에 없던 소재로 日 독점 깬다 [강경주의 IT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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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주의 IT카페] 104회뼛속까지 엔지니어였다. 경영과 재무를 얘기할 땐 담담했지만 인터뷰 주제가 기술로 넘어가자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자신에게 연구개발(R&D)은 '놀이' 그 자체라며, 잠을 자다가도 재료 공학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 펜을 잡는단다. 마치 작곡가가 영감을 떠올리듯 자신 만의 방식으로 원천 기술 다수를 개발한 전성욱 와이엠티 대표에겐 국내 최고의 표면처리 전문가라는 평가가 따라 붙는다. 그에게 회사 이름의 뜻을 물었다. '유일 머티리얼즈 테크놀로지'의 약자인 'YMT'. "세상에 없는 유일한 재료를 만들겠다는 의지"라는 답이 돌아왔다.
전성욱 와이엠티 대표 인터뷰
생존 어려운 화학재료 시장서 독자 기술 보유
S사에 재료 납품하며 본격적인 성장 시작
전 대표가 직접 나노투스 극동박 개발 진두지휘
"먹고 살기 위해 절박하게 기술개발"
전 대표는 7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먹고 살기 위해 절박하게 R&D에 매달렸다"며 "유일한 기술이 없으면 글로벌 시장에서 절대 살아남을 수 없다"고 말문을 열었다.1999년 설립된 코스닥시장 상장사 와이엠티는 인쇄회로기판(PCB) 부식 방지를 위해 세정, 박리(표면을 벗겨내는 과정), 최종표면처리 공정에 쓰이는 공정 약품과 부품 실장용 도금 소재를 만든다. PCB는 스마트폰, 태블릿PC 등 대부분의 전자기기에 탑재되는 기초 전자부품 모듈이다. 와이엠티는 그중 연성인쇄회로기판(FPCB)과 경연성인쇄회로기판(RFPCB) 표면처리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을 갖췄다.와이엠티는 삼성전기, 대덕전자, 비에이치, 심텍, 영풍전자 등 국내 유수 PCB 기업들을 고객사로 두고 있다. 폭스콘 등 글로벌 기업에도 화학재료를 수출한다. 와이엠티 재료는 이들 기업의 가공을 거쳐 애플과 삼성전자 스마트폰을 비롯해 글로벌 기업의 전기자동차, 5G 통신칩 등의 분야에 두루 쓰인다.유사한 사업 구조를 가진 회사는 세계적으로 10개사 안팎이다. PCB 화학 분야는 개발이 극도로 어려운 데다 기술을 확보해도 고객사 납품이 워낙 까다로워 진입 장벽이 가장 높은 산업군으로 분류된다. 와이엠티의 가치는 경쟁보다 생존이 어려운 화학재료 시장에서 독자 기술로 성장했다는데 있다.주요 경쟁사는 일본, 독일 업체가 많다. 금도금 분야에선 우에무라(일본)와 오쿠노(일본), 무전해 동도금 분야에선 아토텍(독일), 전해 동도금에선 JPC(일본), 다우케미칼(미국), 맥더미드(미국), 극동박에선 미쓰이금속(일본)과 경쟁한다. 대부분 연 매출이 수조원에 달하기 때문에 와이엠티의 선전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 비견된다.
영업이익의 40%를 R&D에 쏟아붓는다는 전 대표는 "전체 직원 가운데 30%가 R&D 인력"이라며 "박사급 7명에, 석사급도 20여명 보유해 화학재료 쪽에서는 국내에서 가장 탄탄한 전문가를 구축했다"고 자부했다. 실적은 우상향을 그리고 있다. 2013년 매출 338억원, 영업익 57억원이던 실적은 2017년에 각각 692억원 161억원, 2021년엔 1256억원 172억원으로 증가했다. 지난해엔 처음으로 매출 1300억원을 돌파했다. 영업익은 반도체 업황 저하와 R&D센터 구축 등 대규모 투자로 인해 33억원으로 줄었다.
"경영이라는 게 기술로만 되는 것이 아니더라"
대학에서 금속공학을 전공한 전 대표는 1990년대 전자산업의 성장을 보며 PCB 시장이 커질 것으로 내다보고 표면처리에 인생을 걸었다. 하지만 당시엔 국내에 표면처리 전문가가 없었다. 전 대표는 "가르쳐줄 사람이 없기 때문에 독학으로 공부하는 수밖에 없었다"고 떠올렸다.집념 끝에 무전해 니켈 도금 원천 기술을 확보했지만 경영이라는 게 기술로만 되지 않았다. 창업 후 두 번의 배신을 당했다. 전 대표는 "직원들 월급 줄 돈이 없어 눈 앞이 캄캄할 때 아내가 집문서를 건넸다"고 밝혔다.반드시 재기하리라 마음 먹은 그는 기존 대리점 판매 방식을 정리하고 직접 시장을 개척하는 전략을 세웠다. 하지만 영업도 쉽지 않았다. 업계에선 와이엠티의 기술력만큼은 인정했지만 대형 고객사가 없다는 이유로 계약을 미뤘다. 빚이 점점 쌓여가던 어느 날. 전 대표는 우연히 S사의 한 임원을 만날 기회를 얻었다. 2시간 넘게 기다린 끝에 5분 간 기술을 설명했다. 잠자코 듣던 임원은 그 자리에서 '오케이' 사인을 냈다. 와이엠티의 역사가 바뀌는 순간이었다. 전 대표는 "드라마같은 순간"라고 표현하며 주먹을 쥐었다.
와이엠티가 최근 세계 최초로 무전해 공법을 이용해 개발한 '나노투스 극동박'(Ultra-thin Copper Foil)은 전 대표의 기술 집념이 담긴 결정체다. 극동박은 두께가 1.0um~2.0um의 저조도 (Rz 0.4미만) 동박으로, 초미세 공정의 반도체 실장기판(PKG Substrate) 소재로 쓰인다. 전 대표는 "이 시장은 일본의 미쓰이금속이 전세계 시장의 90% 이상을 독점하고 있다"며 "향후 미세회로 공정이 더 확대되면 반드시 이 나노투스 극동박을 사용하게 될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전 대표는 "반도체 패키징 핵심 부품 중 ABF필름이라는 게 있는데, 반도체 회로 사이에서 간섭 없이 전류가 흐르도록 하는 마이크로 절연 필름의 일종"이라며 "나노투스가 ABF필름을 점점 대체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실제 ABF는 반도체 시장에서 존재감이 큰 패키징 재료로서 더욱 수요가 예상되는 재료로 일본이 독점하고 있는 상황이다.나노투스는 겉으로 보기엔 면이지만 확대해 들여다보면 돌기들이 돋아 있다. 나노투스 뜻은 '연꽃의 작은돌기'를 의미한다. 쉽게 말해 나노투스를 사용하면 공정이 단순화돼 생산단가를 줄일 수 있고 회로 간섭 현상 방지가 뛰어나다는 설명이다. 미세화된 반도체 패키징 시장에 필수로 쓰일 것이란 기대감이 나오는 이유다. 동박 시장은 현재 4~5000억원 규모지만 미세회로 시장의 성장에 따라 3년후 1조2000원, 이후엔 수십조 규모로 커질 것이라는 게 업계 분석이다. 와이엠티의 극동박 기술은 반도체 패키징의 미세 회로 공정, 5G용 전자파 차폐, 안테나 등에 적용된다.
"독학으로 체득한 '기술 감각' 후대에 물려줄 것"
와이엠티는 현재 인천 송도 첨단산업클러스터에 R&D 센터를 짓고 있다. 지난 6월 착공에 들어간 R&D 센터는 9924㎡에 부지에 건축 연면적 2만 5874㎡, 지하 1층, 지상 6층 규모로 오는 2025년 준공될 예정이다. R&D 센터는 전자부품 분야의 화학소재와 극동박, 바이오 분야의 금속원단까지 와이엠티의 기술 전초기지로 활용될 예정이다.전 대표는 R&D 센터 완공 후 '제2의 창업'에 준하는 마음으로 임하겠단 각오다. 그는 "중소기업 대표 자리는 시간과 노력, 때로는 건강까지 포기하겠다는 의지가 없으면 운영할 수 없다"며 "독학으로 체득한 '기술 감각'을 후대에 물려주는 것이 마지막 역할일 것"이라고 말했다.인천=강경주 기자 quraso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