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술은 K팝 아이돌이다”…유니콘 창업자의 세 번째 도전 [긱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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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 생존율은 매우 낮습니다. 창업 5년 차까지 살아남을 확률은 가장 긍정적인 통계(중소벤처기업부 조사)로 봐도 30%가 안 됩니다. 이성호 한국에프앤비파트너스(KFP) 의장은 대학 졸업 이후 두 번의 창업에 연달아 성공했습니다. 그런 그가 최근 전통주 사업에 뛰어들었습니다.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조원 이상의 비상장 기업)을 일궈냈던 그는 한국 술에서 어떤 가능성을 엿본 것일까요? 한경 긱스(Geeks)가 그간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이 의장을 처음으로 만났습니다.
“주류 하나하나가 ‘아이돌’이라 생각합니다. BTS처럼 세계적인 영향력을 가진 한국 술이 탄생할 수 있습니다.”
이성호 한국에프앤비파트너스(KFP) 의장은 최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주류는 한류를 알리는 문화상품”이라며 “KFP가 연예기획사가 돼서 ‘주류 연습생’들을 글로벌 스타로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시장조사 플랫폼 오픈서베이, 지난해 기업가치 1조1000억원을 달성하며 유니콘 기업에 오른 한국신용데이터(KCD)를 만들어낸 연쇄 창업가다. 최근 그는 세 번째 사업 아이템으로 전통주를 선택해 시장 관심을 끌고 있다. 이 의장은 “세계 최대 명품 그룹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가 와인을 파는데, 이들은 단순히 술을 파는 게 아니라 자신들의 문화 그 자체를 파는 것”이라며 “원료 연구개발(R&D), 아티스트 협업을 중심으로 한국 주류업계의 LVMH가 되겠다”고 말했다.
‘빅 웨이브’ 올라타 연쇄 창업 성공
이 의장은 대학 졸업 후 줄곧 창업에만 매진해왔다. 그는 한국과학영재학교를 졸업한 후 KAIST에서 수학과 경영학을 전공했다. 졸업 전 회계사 자격증도 취득했다. 투자업계로 취직하는 것이 당시 꿈이었다. 처음엔 산업 경력이 부족하다는 생각에 고등학교 동기인 김동호 KCD 대표와 창업에 뛰어들었다. 기업들이 시장조사에 수천만원을 쓰는 것을 보고 2011년 모바일 기반으로 비용을 낮춘 시장조사 플랫폼인 오픈서베이를 창업했다. 첫 창업은 성공적이었다. 회사가 자리를 잡은 뒤인 2016년, 맥킨지앤컴퍼니 출신 황희영 대표에게 회사를 맡긴 뒤 퇴사했다. 이 의장은 “창업은 직접 했지만, 어느 순간 사업이 훌쩍 커버린 자식처럼 독립된 존재처럼 느껴졌다”며 “전문 경영인에게 맡기는 것이 더 좋은 양육 환경이 되겠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두 번째 사업 아이템을 고를 때는 좀 더 시장 흐름에 집중해보고자 했다. 이 의장은 “창업자는 스스로 ‘빅 웨이브’를 만들어내는 존재가 아니라, 물결을 파악하고 흐름에 올라타야 규모 있는 사용자를 확보할 수 있다는 게 평소 지론”이라고 했다. 첫 사업 후 잠시 채권 평가회사에서 일했던 그는 회계사 이력을 살려 소상공인 매출 관리 체계에 불편함이 크다는 점을 파악했다. 국내 자영업자 숫자만 보더라도 큰 시장임이 분명해 보였다. 다시 김동호 대표와 창업에 뛰어들기로 했다. KCD의 주력 서비스이자 가게 매출 정산을 도와주는 ‘캐시노트’의 탄생 배경이다.세 번째 인생 분기점은 의외의 영역에서 생겨났다. KCD가 승승장구하며 공동대표였던 이 의장은 과거보다 다양한 직무를 도맡게 됐다. 2021년 인수했던 식자재 공급회사 관리도 그중 하나였다. 이 의장은 “캐시노트에 F&B 사업자가 많으니 이들과 더 가까워지자는 취지에서 진행했던 프로젝트”라고 설명했다. 납품처를 찾기 위해 압구정, 성수 등 주요 상권을 찾을 일이 많아졌다. 그때 만난 것이 전통주였다. 그는 “해당 상권에 유독 외국인이 몰리던 가게들이 있었는데, 인기가 많으면서도 마진이 많이 남는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고 했다. 때마침 정부의 규제 완화로 온라인 전통주 판매 시장이 성장한 점도 호재였다. 지역 양조장 수가 급격히 늘어나는 것이 피부로 와닿았다. 상품성을 키우면 해외에서 큰 수익을 낼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K팝 아티스트 매칭해 북미 주류 시장 공략
처음엔 KCD 내부에서 사업을 펼칠 생각이었다. 창업가가 대규모 투자를 유치할 때는 해당 회사에 계속 의무적으로 근무해야 하고, 새 법인도 만들 수 없다는 조항이 붙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의장이 전통주 사업을 제시하자, KCD 본연의 일과 거리가 너무 멀다는 내부 의견이 나왔다. 오히려 일감 몰아주기 논란으로 식자재 공급도 손을 떼자는 분위기였다. ‘박재범 소주’로 이름을 알린 원소주가 히트를 하는 등 전통주 시장이 꿈틀대자 그는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올해 초 식자재 공급회사 지분 66% 개인 자산으로 사들이는 형태로 1대 주주에 올라 경영권을 취득했다. CJ인베스트먼트로부터 시드(초기) 투자를 유치하고 사명도 KFP로 바꿨다. KCD에선 이사로 남아 자회사 한 곳의 관리를 맡고, 다른 주주에게 겸직 동의를 구하는 형태로 계약상 의무를 지키기로 했다.식자재 공급 관련 인력 30명을 품은 것은 그의 입장에서도 괜찮은 선택지였다. KFP가 두 가지 핵심 전략 중 하나로 지역 특산주 원료 R&D를 내세웠기 때문이다. 연초 경영권을 취득한 이 의장은 최근까지 지방 양조장과의 연계를 강화하고, 원료 수급과 농축액 생산 체계를 꾸리는 데 시간을 썼다. 경북 상주에 위치한 양조장 브랜드 ‘너드 브루어리’를 인수하고, 연말까지 충북의 양조장 2곳과 협약을 맺어 10여개 전통주 라인업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 본래 목표였던 자체 상품 제작에도 착수했다. 내년 1분기 경주 특산물인 체리 원료를 가공해 만든 체리 막걸리를 내놓은 것이 목표다. 이 의장은 “KFP 입장에선 처음으로 연습생을 데뷔시키는 셈”이라고 했다. 그는 “술 만드는 사람들은 마치 정보기술(IT) 비즈니스의 개발자와 비슷했다”며 “좋은 원료와 콘셉트가 함께한다면 한류를 제대로 전할 수 있다는 생각이 더 강해졌다”고 말했다.
남은 한 가지 전략은 빠른 해외 진출이다. 배우, 아이돌 등과 전통주 상품을 1대1로 매칭해 한정판 에디션을 만들겠다는 것이 그의 계획이다. 그는 “이미 해외에선 할리우드 배우 조지 클루니가 데킬라 회사를 세워 대박을 터트리고, NBA 스타가 술 사업에 뛰어든 경우도 흔하다”며 “한국 아티스트가 지닌 문화적 영향력이 그에 못지않은 시대”라고 말했다. 제품 라인업은 오크통 숙성 소주, 프리미엄 막걸리 위주로 꾸려, 먼저 국내에서 외국인 관광객이 많은 지역에 오프라인 쇼룸을 꾸릴 예정이다. 진출 국가는 북미, 일본을 중심으로, 전략적투자자(SI)로 합류한 CJ인베스트먼트와 협력해 진출 전략을 내년 초 구체화한다. 이를 위해 유명 아이돌 멤버로부터 투자를 받기도 했다.
"내가 죽어도 영속할 사업 만들겠다"
이 의장은 “내가 죽어도 영속할 수 있는 회사를 만드는 것이 최종 목표”라고 했다. 전통주 사업을 처음 꺼내 들었을 때는 아내조차 심하게 반대했다. 사재까지 써가며 왜 또다시 불확실한 삶에 뛰어드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먹고 마시는 비즈니스만큼 오래갈 사업이 없는데, 마침 한류라는 빅 웨이브가 찾아온 것”이라며 “이번에야말로 ‘마스터피스(걸작)’를 만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작년부터 소믈리에 자격증을 취득하는 등 주류업계를 공부할 때도 항상 즐거웠다고 했다. “막걸리계의 BTS를 만들어보겠다”는 꿈이 커졌다.남은 숙제는 주류와 K팝 아티스트의 제대로 된 매칭 작업이다. 연예인 이미지와 술을 잘 접목하는 것은 기존 주류회사들도 골몰하는 문제다. KFP는 이들을 단순한 광고 모델로 쓰려는 것이 아니기에 사업 성패가 해당 지점에 달려있다. 이 의장은 “K팝 아티스트와 함께 브랜드의 ‘스토리’를 팔자는 것이 핵심”이라고 했다. 예를 들어 너드브루어리의 막걸리 콘셉트는 ‘나다움’으로 내세우고 있는데, 해당 연예인이 가장 진솔해지는 순간을 기반으로 시나리오를 짜서 술과 함께 스토리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아직 첫 협업 아티스트는 고르지 못했다.
레퍼런스로 남을 핵심 파트너를 찾는 것도 주요 과제다. 우선 확보해야 할 파트너는 연예기획사다. 특히나 아이돌의 경우, 주류와 결부됐을 때 부정적 이미지가 형성될 수 있다는 우려를 희석하는 것이 관건이다. 지역 특산주의 특성을 잘 살릴 수 있는 양조장을 찾는 작업도 지난한 과정이다. KFP는 기존 식자재 공급 사업도 확장하고 있다. 주류 사업을 위한 재투자금을 확보하고, 차후 안주 자체개발상품(PB) 확장을 위한 포석으로 삼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식용유 공동구매 서비스 등에서 매출액이 늘며 원료 공급, 판로 확대 등을 함께할 기업도 필요해졌다.이 의장은 “지난 창업에서 얻은 경험은 내가 잘하는 영역과 못하는 영역을 확실히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풀고자 하는 문제에 비해 나는 상대적으로 작은 사람이기에, 회사 안팎으로 결이 잘 맞는 역량 있는 기업을 계속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시은 기자 s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