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렛잇고"보다 170년 앞서 '겨울왕국' 그린 안데르센의 소설

[arte] 구은서의 '이유 있는 고전'

한스 안데르센의
'겨울왕국'. 요즘은 이 단어를 들으면 "렛 잇 고(let it go)~" 외치는 노래가 머릿속에 자동 재생되지만, 디즈니 만화영화가 나오기 전만 해도 원조 '겨울왕국'은 동화책에 있었습니다.
1845년에 발표된 한스 안데르센의 <눈의 여왕>은 겨울과 얼음을 다룬 고전입니다. 작은 마을에 사는 카이라는 소년, 그의 단짝친구인 게르다라는 소녀, 그리고 눈의 여왕에 대한 이야기예요. 눈송이를 지배하는 눈의 여왕이 매혹적인데, 그녀는 유럽 북부 라플란드에 얼음의 궁전을 지어놓고 어린아이들을 데려가죠.이야기는 마치 얼음 같은 거울 조각에서 시작합니다. 어느 날 악마가 자신이 반사하는 모든 것을 나쁘고 추한 모습으로 왜곡하는 거울을 만들어내요. 그 거울이 너무 재밌어서 천사를 비춰보려고 하늘로 가져가다가 거울이 그만 깨져버리죠. 수십억 개의 거울 조각이 땅으로 떨어져 사람들의 눈이나 심장에 박혀버려요.

따뜻한 심성을 가졌던 카이 역시 심장 한가운데에 거울 조각이 박혀버립니다. 화단을 장식한 장미꽃을 보며 "계곡에 장미가 아름답게 피었네/이제 우리 아기 예수를 보러 가리" 노래하던 소년은 장미가 "보기 싫게 피었다"며 비틀어 꺾어버리는 사람으로 변했어요. 놀란 게르다가 눈물을 터뜨리자 우는 건 질색이라며 타박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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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카이가 결함을 찾지 못한 완벽한 존재는 눈송이뿐이었어요. 눈송이를 확대경으로 비춰보면서 "정확한 대칭을 이루면서 단 하나의 오류도 허용하지 않는 완벽한 형체"라고 칭송합니다.어느 겨울날 카이는 처음 보는 흰 썰매에 자신의 썰매를 묶고 놀았는데, 주변이 온통 눈보라로 둘러싸이더니 그대로 사로잡혀 버립니다. 썰매에 타고 있던 사람이 눈의 여왕이었던 거죠. 몸 전체가 투명하고 싸늘한 얼음 결정체처럼 보이는 그녀는 카이에게 두 번 입을 맞춥니다. 그러자 카이는 추위를 느끼지 못하고 할머니와 게르다에 대한 기억을 잃어요. 눈의 여왕의 첫 번째 입맞춤은 추위를 잊게 만들고, 두 번째는 사랑하던 사람을 잊어버리게 하고, 세 번째는 목숨을 앗아가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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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가 말없이 사라지자 마을 사람들은 카이가 죽었다고 결론 짓지만, 게르다는 카이를 찾아 길을 떠납니다. 갖은 고생을 겪으며 마녀와 산적, 순록을 만나요. 끝내 라플란드 얼음의 궁전에 도착한 게르다는 얼음처럼 얼어붙은 카이를 마주합니다. 눈의 여왕은 카이에게 난해한 퍼즐같은 얼음조각들을 맞춰 '영원'이라는 단어를 만들어야만 풀어주겠다고 했어요.

게르다는 카이에게 달려가 입을 맞추며 눈물을 흘립니다. 따뜻한 눈물은 카이의 심장에 박혀있던 거울 파편을 녹였고, 두 사람의 환호에 깨어진 거울 조각들은 '영원'이라는 단어 모양을 이뤄요. 그렇게 두 사람은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그리워하던 집에 들어선 순간, 둘은 서로가 어른이 됐으며 이제 해가 바뀌어 계절은 여름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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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은 비뚤어지고 얼어붙은 사람들을 변화시킬 수 있는 건 천진난만한 아이의 마음, 순수와 사랑뿐이라고 강조합니다. 디즈니 만화영화 '겨울왕국'의 결말과도 비슷하죠. 겨울왕국에서 얼어붙은 안나의 심장을 녹인 건 진정한 사랑이었으니까요.

혹독한 겨울, 우리가 기댈 수 있는 건 결국 사람이 만들어내는 온기뿐입니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