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박사학위' 외교전문가의 美·中 갈등 10가지 시나리오[책마을]

피할 수 있는 전쟁
케빈 러드 지음
김아영 옮김
글항아리
528쪽
3만원
“새로운 강대국이 부상하면 기존의 강대국이 이를 두려워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전쟁은 피할 수 없다.”

고대 그리스 역사가 투키디데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서 전쟁을 불가피하게 만든 것은 아테네의 부상이 스파르타에 심어준 공포 때문이었다고 주장했다. 미국 역사학자 그레이엄 엘리슨은 이를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라고 칭하며 현대의 미국과 중국의 상황도 이와 유사하다고 경고했다. 과연 떠오르는 세력인 중국과 지배 세력인 미국의 군사적 충돌은 불가피한 것일까. <피할 수 있는 전쟁>은 외교 전문가인 케빈 러드 주미 호주 대사가 미·중 관계에 관해 수십 년간 분석해온 내용을 집대성한 책이다. 그는 2007년부터 2010년까지 호주 총리를 역임하고 2010년부터 2012년까지 외무장관직을 수행하다 2013년 총리로 복귀해 임기를 마쳤다. 그는 호주국립대학에서 중국학을 전공해 중국어에 능통하다. 그는 외교관으로 활동하면서 시진핑을 비롯한 중국 고위 관료들을 여러 차례 만났고, 2022년에는 옥스퍼드대에서 시진핑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미·중 패권 전쟁의 이면에는 근본적인 세계관 차이도 있지만 오해와 불통의 오랜 역사가 있다고 진단한다. 과거 미국은 산둥성의 독일 점령지 반환을 조건으로 중국을 제1차 세계대전에 끌어들였다. 수백만 명의 중국 노동자들은 악명높은 유럽 서부전선에 보내져 참호를 파고 야전병원을 건설했다. 수천 명은 목숨을 잃었다. 정작 종전 후 미국은 일본을 달래기 위해 산둥성 일부를 마음대로 일본에 양도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미국은 일본을 견제하기 위해 일본군의 중국 침략을 방치했다. 냉전기에는 소련을 봉쇄하는 데 중국을 이용하기도 했다. 중국은 미국이 겉으로는 체제를 존중하는 듯하지만, 미국 주도 아래 국제 질서에 순순히 따르기만을 바라는 위선적 태도를 보인다고 생각한다. 한편, 미국 측면에서 보면 중국 공산당도 오랫동안 신뢰를 쌓을 수 없던 관계였다.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면서 자유로운 시장 개방을 약속한 것과 달리 보호주의, 권위주의적 모델을 고수하며 수출 확대의 이점만 가져갔다. 중국은 세계 최고의 제조 강국을 자리 잡고, 세계에 중국 중심의 질서를 조용히 구축해나갔다.

저자는 미·중 갈등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열 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한다. 중국이 미국 견제 없이 대만을 손에 넣을 수도 있고, 중국과 미국 및 동맹국들이 동중국해에서 맞붙을 수도 있다. 북한을 둘러싼 갈등이 한반도에서 일어날 수도 있다고 전한다. 물론 군사적 대치 없이 중국이 세계 최대 경제 대국이 될 수도 있고, 세계를 향한 시진핑의 야망이 무너질 수도 있다고 전망한다.

저자는 미·중 관계의 가능한 모든 시나리오를 집대성하면서 불확실한 정세를 가늠할 수 있게 해주는 지침을 전한다.

최종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