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 대낮에 짖고 있느냐"…싸움하는 신하를 '개'에 빗댄 영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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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탕평평-글과 그림의 힘' 특별전주인한테 대들고 있는 걸까. 앞을 노려보며 으르렁대는 개 한 마리가 화폭을 가득 채우고 있다. 조선시대 화가 김두량(金斗樑·1696~1763)의 작품 '삽살개'(1743)다. 세밀한 붓질로 풍성하게 묘사한 털과 굵직한 선으로 휘갈긴 날카로운 발톱이 종이를 찢고 나올 듯하다.
국립중앙박물관. 12월 8일부터 내년 3월 10일까지
김두량 '삽살개' 최초 공개 등 유물 88점 선보여
"밤에 사립문을 지키는 것이 네 책임이거늘, 어찌하여 낮에도 이처럼 짖고 있느냐." 그림 상단에는 영조(재위 1724~1776)의 글이 적혀 있다. 당시 조정의 관료들은 노론과 소론으로 분열돼 다투고 있었다. 화합을 도모했던 영조가 이들을 '대낮에 짖는 삽살개'에 빗대 꾸짖은 것이다.이처럼 '탕평(蕩平)'을 위해 글과 그림으로 소통했던 영조·정조대의 궁중 서화들이 한자리에 모인다. 8일부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는 '탕탕평평-글과 그림의 힘' 특별전에서다. 이번 전시에는 처음 대중에 공개되는 '삽살개'를 비롯한 88점의 유물이 걸린다. 탕평은 유교 경전 <서경>에서 따온 말로 '치우침 없이 공정하면 왕도가 넓어지고 평탄해진다'는 뜻이다. 전시는 내년 3월 10일까지.전시는 내년 영조 즉위 300주년을 앞두고 마련됐다. 윤성용 국립중앙박물관장은 7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편향되지 않고 공정한 사회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한 영조·정조의 탕평 정신을 돌아볼 때"라며 "글과 그림으로 자신들의 의지를 알리고자 소통한 두 임금의 행적에 주목했다"고 말했다.
영조가 탕평을 추구한 건 왕권을 강화하는 동시에 인재를 폭넓게 등용하기 위해서였다. 전시장 입구를 지키듯 걸려 있는 '삽살개'를 지나면, 이에 대한 영조의 고민을 담은 작품을 여럿 만날 수 있다.벽면에 빼곡히 들어선 신하들의 초상화가 대표적이다. 영조는 충신들의 초상화를 적극적으로 제작하고 시를 하사하는 식으로 지지 세력을 불렸다. 인재를 공정히 대우하겠다는 탕평 정신처럼 출신에는 제약을 두지 않았다. 소론 출신 박문수, 남인 출신 강세황 등 다양한 배경의 신하들이 얼굴을 남겼다.이미지를 활용한 정치는 정조대에도 이어졌다. 탕평을 펼치려면 강력한 왕권이 필요했다. 아버지 사도세자의 권위를 세우는 일이 급선무였다. 정조는 사도세자에게 '장륜융범 기명창휴'라는 존호를 올리고 이를 새긴 '장조 추상존호 금인(금 도장)'을 만들었다. 아버지 사도세자를 추존하며 정조 본인이 정당한 후계자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후반부에 등장하는 '화성원행도'다. 1795년 정조의 수원 화성 행차 장면을 담은 높이 151.8㎝ 너비 66.2㎝의 8폭 병풍이다. 가운데 임금을 중심으로 신하들은 대칭을 이루듯 앉아 있지만, 바깥쪽의 백성들은 둘러앉아 담소를 나누고 물건을 사고파는 등 자유로운 모습이다. "왕과 신하들은 질서를 이루고 백성은 태평성대를 누리는 것. 이것이 영조와 정조가 꿈꾸던 '탕평이 실현된 사회'가 아닐까요."(이수경 학예연구사)성별, 지역, 정치적 가치관의 차이 등. 현대 사회의 소통을 가로막는 여러 갈등을 고려했을 때, 전시가 전하는 메시지는 지금도 유효하다. 이 학예연구사는 "탕평은 소수의 지도자나 왕만을 위한 가치가 아닌,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지켜야 할 보편적인 가치"라고 했다. 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