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개의 손'으로 어루만진 피아노… 라흐마니노프를 입체적으로 빚어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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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PEACE CONCERT' 두 번째 공연 리뷰
한국·일본·대만 피아니스트 한 무대에
다른 연주 스타일 존중…'조화' 이뤄내
피아니스트 암스트롱 독주에선
명징하면서도 조화로운 울림
깊이 있는 작품 분석력 돋보여
2021년 이탈리아 부소니 콩쿠르에서 준우승한 한국 피아니스트 김도현과 ‘모차르트의 환생’으로 불리는 대만계 피아니스트 킷 암스트롱, 2019년 본 텔레콤 베토벤 국제 콩쿠르 준우승을 차지한 일본 피아니스트 다케자와 유토의 자리였다. 여섯 개의 손을 한 건반 위에 올리기 위해 몸을 아주 가까이 붙어 앉은 세 명의 피아니스트는 잠시 눈을 맞추고 고객을 끄덕이더니 바로 연주를 시작했다. 그렇게 들려준 작품은 라흐마니노프가 10대 때 작곡해 그 나이만의 순수함과 환상적인 감성이 오롯이 담겨있는 ‘여섯 개의 손을 위한 로망스’였다. 이들의 앙상블은 시종일관 입체적으로 조형됐다. 세 명의 피아니스트는 선율을 처리하는 방식이나 선호하는 음색 등 연주 스타일 전반에서 큰 차이를 보였는데, 억지로 서로의 음악을 따라가려고 하기보단 ‘다름’을 인정하고 그 속에서 ‘조화’를 이루는 데 집중한 결과였다. 라흐마니노프가 구태여 하나가 아닌 세 명의 피아니스트를 작품에 불러온 이유를 이들은 정확히 꿰고 있는 듯했다.
이들의 중심을 잡아주는 건 가운데 앉은 김도현의 몫이었다. 그는 한음 한음 건반을 깊게 누르며 담담하면서도 자연스럽게 라흐마니노프의 서정을 그려냈다. 밀도, 배음, 잔향의 정도를 예민하게 조율하면서도 호흡을 놓치거나 감정에 치우치는 법은 없었다. 점차 타건의 세기를 줄이면서 몽환적인 감정을 속삭이는 주선율을 따라 모든 소리가 사라지는 이들의 연주는 짙은 여운을 남기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피날레 무대가 한국, 일본, 대만을 대표하는 신성(新星) 피아니스트들의 유려한 음악적 대화를 엿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면, 그의 앞선 무대는 세계적인 클래식 레이블 도이치그라모폰(DG)에서 여러 장의 음반을 낸 실력파 피아니스트 암스트롱의 저력을 제대로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낭만주의적 색채가 다채로운 장면으로 펼쳐지는 생상스의 ‘앨범 모음곡’에선 자유분방한 에너지를 마음껏 펼쳐냈다. 유연한 터치와 제한된 음량으로 소리에 거대한 막이 쓰인 듯 모호한 심상을 표현하다가도 순식간에 강한 타건으로 악상을 몰아치면서 만들어낸 음영 대비는 손에 땀을 쥐게 할 정도의 긴장감을 선사했다. 역동성을 극대화하는 명료한 리듬 표현은 일관성 있게 나타났다. 다음 곡은 간결한 구성과 생동감 넘치는 표현으로 유명한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6번. 암스트롱은 ‘모차르트의 환생’이란 별칭이 아깝지 않은 연주를 보여줬다. 모차르트 작품에서 특히 중요한 트릴(두 개의 음을 교대로 빠르게 연주) 표현은 일품이었다. 깨끗하면서도 또렷한 터치로 지속 시간에 따라 색채의 변화를 일으키는 그의 트릴은 모차르트의 활기를 살려내기에 더할 나위 없었다.
느린 춤곡인 2악장에선 왼손과 오른손을 긴밀히 움직이면서 만들어내는 유선형의 자연스러운 울림으로 시적인 정취를 충실히 노래했다. 변주로 이루어진 3악장에선 쉼 없이 변하는 리듬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면서 모차르트 특유의 익살스러운 매력을 전면에 펼쳐냈다. 피아노 음색은 활기 넘치면서도 따뜻했고, 소리의 울림은 명징하면서도 조화로웠다.
'흰 건반, 검은 건반이 하나 되는 순간으로 평화와 화합의 메시지를 전한다.' 3 PEACE CONCERT 공연의 기획 의도다. 분명 이들이 들려준 음악은 그랬다. 추구하는 색채, 모양새, 방향이 다를지라도 하나의 소리로 귀결된 음향은 충분히 조화로웠고, 그 어떤 언어의 외침보다 강렬한 울림을 만들어냈다. '다름' 그 너머의 무언가를 그려볼 만한 연주였다.
김수현 기자 ksoo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