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맥주 솥' 자랑한 베를린 양조장, 현대미술관 됐다

[arte] 변현주의 Why Berlin
서로 다른 개성을 지닌 16개의 연방주(Länder)로 구성된 독일연방공화국에는 각 지역의 특성을 반영하는 맥주가 있을 정도로 맥주는 독일의 ‘국민’ 음료이다. 베를린의 대표적 지역 맥주는 베를리너 킨들(Berliner Kindl)인데, 이번 글에서는 바로 이 베를리너 킨들을 만들던 양조장 중 한 곳에 대해 소개하려 한다.

베를린의 남동쪽 노이쾰른에 위치한 킨들 양조장(KINDL brewery)은 1920년대 건축가 한스 클라우스(Hans Claus)와 리처드 셰프케(Richard Schepke)가 표현주의 양식으로 지은 역사적 건축물이다. 제 2차 세계대전 중 파손된 부분은 건축가 게르하르트 프리츠쉬(Gerhard Fritsche)가 보수하였고, 근대적 양조 시설을 갖추어 2006년 문을 닫을 때까지 베를린 맥주 문화의 중심지로 역할하며 맥주 양조장으로 사용되었다. – 물론 베를리너 킨들은 현재에도 다른 양조장에서 제조되고 있다.

이후 문을 닫은 킨들 양조장은, 마가린 공장을 미술관으로 바꾼 베를린의KW 현대미술관이나 화력발전소를 예술공간으로 변환시킨 크래프트베르크 베를린처럼, 레노베이션을 통해 미술기관으로 바뀌어 2016년 ‘KINDL-동시대 미술센터(Zentrum für zeitgenössische Kunst, 이하 킨들)’란 이름으로 재탄생했다.
KINDL-동시대 미술센터의 전경. Photo by Hyunjoo Byeon.
이제는 동시대 미술센터로 바뀌었지만 여전히 맥주 양조장의 모습 일부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이 킨들의 매력이다. 건축물의 중심 부분에 위치한 카페에서는 대형 구리솥 6개를 볼 수 있는데,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맥주 솥이었다는 이 장치는 근대성을 과시하던 과거와 포용적 현재가 공존하는 인상적인 풍경을 보여준다. 또한 킨들의 전시실 이름은 ‘기계하우스(machinehaus)’ 혹은 기계실로 명명되어 20세기 초 맥주 양조장에 이미 다양한 기계가 사용되었음을 짐작케하며 전시를 감상하도록 이끈다.
킨들 내에 위치한 카페 전경. Photo by Hyunjoo Byeon.
킨들 내의 전시실의 이름은 기계실이다. Photo by Hyunjoo Byeon.
이처럼 과거의 시공간을 품고 있는 킨들의 가장 특징적 공간은 바로 ‘보일러하우스(kesselhaus)’이다. 층고가 20미터에 달하는 이 거대한 공간에서는 장소특정적인 대규모 설치 작업 전시가 가능하고, 킨들은 매년 한 명의 작가에게 새로운 작품 제작을 커미션해 2년에 걸쳐 작품을 선보인다. 예를 들어, 지난 2017년부터 2018년까지 보일러하우스는 양혜규의 신작 <침묵의 저장고-클릭된 속심>(2017)을 전시했는데, 산업화 시기에 지어진 건축물에 새겨진 시대와 역사를 재해석하고 공간과 어우러지는 압도적인 스펙터클을 관객에게 선사했다.
양혜규의 <침묵의 저장고-침묵의 속심>(2017). Photo by Hyunjoo Byeon. 
한편, 현재의 보일러하우스에서는 지난 9월부터는 영국 출신 작가 엠마 탈봇(Emma Talbot)의 전시 <마침내, 시작 (In the End, the Beginning)>이 열리고 있다. 실크에 그린 회화 작업, 조각적 앙상블, 천정에서 매달린 오브제로 구성된 이 전시는 고대 그리스 신화 속 복수의 세 자매 여신, 사이렌, 신탁을 전하는 사제, 마녀 등을 등장시키며 과거의 목소리를 소환해 현재의 환경적, 정치적 폐해에 대해 경고한다.

강렬한 형태의 조각적 오브제와 함께 다채로운 색상으로 펼쳐진 시각적 시(詩) 속에서 이들이 말하는 독성의 여파와 치유, 긍정적 미래를 만들 수 있는 대안적 이야기는 작품의 규모뿐 아니라 내재된 내러티브로 마법을 부린듯 관객을 사로 잡는다.
엠마 탈봇, 《마침내, 시작》, 2023. Photo by Hyunjoo Byeon.
엠마 탈봇, <When Screens Break> 디테일, 2020. Photo by Hyunjoo Byeon.
일전에 소개했던 크래프트베르크 베를린이 별다른 개조 없이 날 것에 가까운 공간성과 규모로 관객을 압도하는 반면, 킨들은 공간의 역사를 남기되 동시대 미술의 맥락에 맞게 개조된 공간에서 아티스트가 쉽게 시도하기 어려운 규모의 작품 제작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아티스트와 관객 모두에게 새로운 예술 경험의 순간의 장을 펼친다.

물론 대단한 규모의 스펙터클을 ‘구경’하며 감탄만을 자아내게 하는 작품들도 있었지만, 역사와 사회적 배경, 다양한 인물의 삶이 얽힌 내러티브 사이를 가로지르며 현재를 직면하게 하는 작품을 만나는 행운을 접하기도 한다. 더불어 전시를 본 후 대형 구리솥이 있는 카페이자 베를리너 킨들이 만들어지던 장소에서 새로운 지역 명물이 된 수제 맥주를 마실 수 있다는 점이 바로 동시대 미술센터로서 킨들이 매력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