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를 잡아먹지 말라"…신간 '포스터로 본 일제강점기 전체사'

계몽이란 미명하의 지배 이데올로기 세뇌
한 그림 속에 수염을 기르고 상투를 튼 한 남성이 무언가를 게걸스럽게 먹는다. 이 남성은 일제 강점기의 조선인이고, 먹는 것은 살아있는 게다.

보기에도 야만스럽게 묘사되고 있다.

1924년 8월 매일신보에 보도된 이 그림은 일제가 제작한 포스터다. 포스터에는 가재와 게의 그림, 조선인들이 이런 것들을 잡는 모습과 잡아먹지 말라는 경고문도 들어있다.

조선총독부는 당시 '토질', 즉 기생충 감염으로 목숨까지 잃는 폐디스토마가 확산하자 조사를 벌였다.

총독부는 조선인들이 가재와 동남참게를 날로 먹어 생긴다는 결론을 내리고 이러한 포스터를 만들었다. 이 포스터는 일제가 우리를 식민 통치하던 1915년부터 패망한 1945년 8월까지 제작하고 배포한 포스터 중 하나다.

저자인 청암대 최규진 교수는 신간 '포스터로 본 일제강점기 전체사'에서 식민 권력이 포스터를 활용해 어떻게 대중을 장악하려 했고, 일상생활을 재조직하려 했는지를 탐구한다.

최 교수는 책을 '전체사'(total history), 즉 정치·경제·사회·문화 등의 분리된 틀을 뛰어넘는 역사 서술이라고 설명한다. 포스터에 담긴 식민주의 이데올로기와 정치·사회적 맥락을 탐색하는 것이지, 단순하게 나열한 자료집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일제는 이른바 계몽 프로젝트, 즉 '문명화 기획'이라는 미명으로 식민지인들에게 열등감을 주어 저절로 순응하게 하려는 속셈이 있었다.

위생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내세워 피식민자의 저항 에너지를 누그러뜨리고 포섭을 강화하는 것도 그러한 사례다.

최교수는 "일제의 지배 수단은 총칼과 억압뿐이 아니다.

공중위생을 위하는 척 계몽하고, 유인하고, 설득하면서 생활 속으로 촘촘하게 파고들었다"면서 "포스터는 일상을 규율하는 강력한 선전 효과를 지닌 것으로 판단하고 이를 활용했다"고 말했다.
신문 방송 등 일반 매체에 비해 포스터는 비용도 적게 드는 데다가 직접 눈에 간단하게 호소하는 효과가 있어 일제의 선전 도구로 자주 이용됐다.

일제는 1932년 무렵, 피폐한 농가경제를 되살려 체제를 안정시키려고 농촌진흥운동을 벌였다.

농민은 게으르고 무지한 상태에서 벗어나 자력갱생의 정신으로 새 삶을 살아야 한다고 떠들었다.

이는 착취 메커니즘을 철저히 숨긴 채, 열심히 일하고 절약하면 잘 살 수 있다는 이데올로기 세뇌정책이었다고 최교수는 분석한다.

일제는 모든 예술을 포함한 매체 등을 프로파간다(propaganda)에 활용했다.

문학, 영화, 연극, 광고, 미술 사진 등을 활용해 선전을 퍼부었다.

선전전을 전투 수단의 최고봉이라고 여겼고, 라디오와 확성기가 '소리의 탄환'이라면 인쇄 선전물은 '종이 탄환'이라고 지칭했다.

공장, 집회소 등 대중이 많은 곳의 벽을 이용해 시사적인 내용의 글이 많이 들어간 포스터도 붙였는데 이는 '벽신문'이라고 불렸다.

당시 우리 노동운동이나 사회주의 계열에서도 벽신문을 활용하려 했으나 일제는 이를 금지했다.

최 교수는 10년이 넘는 기간 일제 강점기 신문이나 잡지 등의 매체와 문헌, 일본의 기록물에 실린 포스터를 샅샅이 훑어 모았다.

일제의 프로파간다를 위한 포스터 외에도 식민지 역사를 풍요롭게 이해할 수 있는 '작은 역사'들의 소재가 담긴 포스터도 많이 찾아냈다.

민중 포스터와 저항 포스터 등 알려지지 않았던 식민지 시대 미세한 생활사의 영역도 담겼다.

최 교수는 "당시 인쇄술이 발전해 모든 포스터는 컬러였다.

일제는 많은 문맹인에게 지배 이데올로기를 심어주기 위해 이러한 포스터의 시각적 효과가 큰 점을 이용했다"고 말했다. 서해문집.716쪽.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