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올리브영 수천억 과징금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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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위 "지배적 사업자 불확실"납품업체에 대한 ‘갑질’ 논란에 휩싸였던 CJ올리브영이 수천억원의 과징금 폭탄을 피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CJ올리브영이 헬스·뷰티(H&B)업계의 시장지배적 사업자인지 불확실하다”고 판단하면서다. 이번 사건은 유통시장에서 온·오프라인 기업 간 경쟁 구도를 인정한 첫 사례라는 점에서 영향이 작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경쟁사 이벤트에 참여 말라
CJ, 납품사 압박" 19억 부과
공정위 "올리브영 경쟁자는
오프라인에 국한되지 않아"
온오프 유통 경쟁 처음 인정
○과징금 5800억원 → 19억원
공정위는 CJ올리브영이 대규모유통업법을 위반해 과징금 18억9600만원 부과와 시정명령, 법인 고발을 결정했다고 7일 발표했다. 올리브영은 2019년부터 최근까지 판촉 행사를 하면서 ‘랄라블라’ ‘롭스’ 등의 행사에는 참여하지 말라고 납품사에 강요한 것으로 조사됐다.당초 공정위는 심사보고서에서 CJ올리브영이 시장지배적 지위를 남용했다고 판단해 전·현직 대표를 검찰에 고발하고 최대 과징금 5800억원을 부과하는 등 중징계 의견을 냈다. 하지만 지난달 두 차례 열린 전원회의 심의 과정에서 공정위 주장의 허점을 지적하는 의견이 잇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온라인 시장이 급격히 커지고 오프라인에 다양한 유통채널이 있는 마당에 CJ올리브영의 경쟁 상대를 랄라블라와 롭스로 한정한 것은 무리라는 지적이 주를 이룬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공정위는 CJ올리브영에 공정거래법상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이 아닌, 대규모유통업법상 우월적 지위 남용을 적용했다.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에 관해선 판단을 유보하고 심의 절차 종료라는 모호한 결정을 내렸다. 심의 절차 종료는 사실관계 확인이 곤란해 법 위반 여부 판단이 불가능한 경우, 새 시장에서 시장의 향방을 가늠하기 어려운 경우 등 판단을 유보할 필요가 있을 때 내리는 결정이다.
○쿠팡 갑질 혐의 소송에 영향 주나
관련업계에선 공정위의 이번 판단이 향후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하는 분위기다. 특히 이번 제재와 묘하게 얽혀 있는 쿠팡에 관심이 쏠린다. 쿠팡은 CJ올리브영을 납품업체에 대한 갑질 혐의로 지난 7월 공정위에 신고했다. 쿠팡은 신고서에서 “CJ올리브영이 중소 화장품업체의 쿠팡 거래를 막았다”며 “CJ올리브영과 쿠팡이 서로를 경쟁 상대로 여기고 있다”고 명시했다.이는 CJ올리브영을 공격한 신고였지만, 공정위 전원회의가 온·오프라인 기업 간 경쟁 현황을 인식하게 해 되레 올리브영을 도와준 셈이 됐다는 해석이 나온다. 특히 유통업계에선 공정위가 이번에 CJ올리브영 제재 배경을 설명하면서 “온·오프라인 기업 간 경쟁 구도가 강화되는 상황인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고 밝힌 것에 주목한다. 온·오프라인 간 시장 획정(시장 범위 구분) 기준을 다시 세우는 신호탄이 됐기 때문이다.
LG생활건강 등에 대한 갑질 혐의로 행정소송에 걸려 있는 쿠팡 처지에선 공정위의 이번 판단이 호재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분석된다. 공정위는 쿠팡이 LG생활건강에 광고 강매 등 경영 간섭을 했다며 과징금 32억9700만원을 2021년 부과했다.쿠팡은 이에 반발해 지난해 2월 행정소송을 제기하고 최종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쿠팡은 롯데, 신세계 등 오프라인 유통업체도 경쟁사로 인식해야 한다는 논리를 펼친 바 있다.
이에 따라 유통업계에선 쿠팡의 CJ올리브영 공정위 신고가 일종의 ‘기획’이었을 것이란 의혹이 번졌다. 올리브영은 이날 “유통 플랫폼을 육성하는 과정에서 살피지 못한 부분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다”며 “시스템을 개선하고 모든 진행 과정을 협력사와 공유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하수정/박한신 기자 agatha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