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과 브람스가 극찬…"죽으면 이 와인 못 마시겠지"

삶의 마리아주-맛있는 음악

독일 라인가우 지역 리슬링 와인

독일 프랑크푸르트 근교 뤼데스하임의 포도밭.

“안타깝다. 너무 늦었어.”

1827년 봄 임종을 앞둔 베토벤이 나지막이 말했다. 독일 라인가우 지역의 리슬링 와인이 이제야 도착했다는 소식을 듣고서다. 그는 자신이 끝내 그 와인을 마시지 못할 것이라며 탄식했다.

그로부터 70년이 지난 어느 봄. 역시 죽음을 앞둔 한 남자가 자신을 찾아온 이들에게 한 가지 부탁을 한다. 그리하여 그는 인생 마지막 순간에 라인가우 지역의 뤼데스하임에서 생산된 리슬링 한 모금을 마셨다. 그리고 말했다. “아! 이건 언제나 훌륭한 맛이야!” 1897년 작곡가 요하네스 브람스는 이렇게 자신이 좋아하던 와인과 함께 세상을 떠났다. 브람스는 자신이 음악적 귀감으로 삼은 베토벤처럼 라인가우 지역의 와인, 그중에서도 리슬링을 매우 좋아했다. 브람스의 절친한 친구 가운데 라인가우 지역 와인을 유통하는 상인의 영향도 컸을 것이다.

브람스처럼 내가 리슬링을 알게 되고 푹 빠진 이유도 라인가우 지역 출신 한 절친한 친구 덕분이다. 십수 년 전 처음 독일에 나와 생활을 시작했을 때 만난 크리스티안은 40대가 된 지금도 20대에 처음 만난 그때 마음으로 만나는 친구다. 브람스의 마지막 와인이 생산된 뤼데스하임에서 대대로 살고 있는 그 친구는 내 독일에서의 첫 생일에 자기가 나고 자란 곳에서 생산된 코발트색 병에 든 와인을 선물했다. 푸름을 간직한 옅은 금색 액체에서 나는 청사과를 잘랐을 때의 상큼한 향, 침이 고이는 약간의 산도가 주는 기분 좋음, 비가 그친 뒤 숲이 보이는 창을 열었을 때 다가오는 그 향, 그것이 라인가우 지역 리슬링과의 첫 만남이었다.

10년 넘게 객원 지휘자로 함께한 바덴바덴 필하모니(브람스도 종종 이 악단을 지휘했다)를 만날 때면 클라라 슈만과 브람스가 산책한 길, 브람스가 자신의 집과 시내를 오가던 리히텐탈 가로수길을 걸으며 바덴 지역과 알자스 지역의 리슬링을 즐기곤 했다.

모젤강변에 있는 도시 트리어에서 지휘자로 일한 3년간은 매력이 넘치는 모젤 지역의 리슬링과 함께했다.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이자 로마시대 갈리아 지방 수도인 트리어는 그 역사만큼이나 와인의 역사도 길고 다양하다. 수만 년 전 화산활동으로 형성된 토양으로 이뤄진 땅 그리고 모젤강을 따라 굽이굽이 급격한 경사면에 자리 잡은 수많은 포도원이 이 지역의 독특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브람스와 베토벤이 독일 리슬링을 소중하게 여겼듯 리슬링을 한 모금 입에 머금었을 때 주는 향기의 추억은 소중하다. 그 색과 질감은 뤼데스하임의 포도밭을 거닐며 맡은 흙냄새와 따스한 햇살이다. 그 향은 트리어에서 살며 아침마다 창밖으로 본 계절마다 색이 바뀌는 포도밭이다. 잔에 떨어지는 소리는 바덴바덴에서 리허설을 마치고 걷던 리히텐탈 가로수길에서 만난 빗소리와 시냇물 소리다. 리슬링이 주는 기쁨은 그 길을 걷는 상쾌함과 사랑하는 친구들과의 웃음이다.

브람스 역시 바덴바덴 시내에서 친구들과 리슬링을 즐기며 웃고 이야기를 나눴을 것이다. 그가 집으로 가는 길, 리히텐탈 가로수길을 걸으며 그의 따뜻한 교향곡 2번을 구상했을 것이다. 밝고 사랑스러운 브람스 교향곡 2번을 틀어놓고 친구들과 리슬링을 마실 날을 기다린다. “와인이 없는 곳에는 사랑도 없다.”-에우리피데스(그리스 비극작가 BC480~406)

지중배 지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