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왕실이 사랑한 폴 당장 샴페인…"입에 닿는 순간 미소짓게 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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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와이너리 '폴 당장 에 피스' CEO 장 밥티스트연말은 ‘샴페인의 시간’이다. 친구들과의 송년회부터 연인과의 크리스마스 파티, 한 해의 마지막 날 가족과의 저녁 식사까지…. 사랑하는 이들과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식사에 샴페인만큼 어울리는 술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로맨스의 와인’이다.
佛 샹파뉴 지역에서 와이너리 운영
모든 포도 송이 직접 손으로 따고
대대손손 전통적인 방식만 고집
너무 많은 기교가 들어간 샴페인
우리가 추구하는 와인 철학 아냐
한국 생선과 굴, 샴페인과 찰떡
샴페인은 특별하다. 아무나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샴페인이란 이름은 프랑스 샹파뉴 지역에서 생산된 포도만을 사용해 전통적인 방식으로 양조했을 때만 붙일 수 있다. 그만큼 품질 관리도 엄격하다. ‘저질 와인은 있어도 저질 샴페인은 있을 수 없다’는 말도 이런 배경에서 나왔다.이처럼 특별한 샴페인 중에서도 ‘폴 당장 에 피스’는 군계일학으로 불리는 와이너리다. 샹파뉴에서 아직까지 가장 큰 규모로 가족 경영을 유지하는 곳이다. 돔페리뇽, 모에&샹동처럼 유명한 샴페인 제조사들과 달리 샴페인 제조에 쓰이는 포도를 100% 직접 일군다. 이런 정성 덕분에 1947년 생산을 시작한 신생 와이너리임에도 영국 왕실에 납품하는 6개 샴페인 중 하나로 선정되기도 했다.
일상을 파티로 만드는 마법
와인 애호가들 사이에선 이런 격언이 회자한다. ‘돌고 돌아 결국 샴페인’. 와인에 처음 입문하는 이들에게 샴페인 같은 스파클링(발포성) 와인은 다가가기 쉽다. 샴페인은 없어서 못 먹는 고급 중의 고급이다. 그러다 와인의 세계에 본격적으로 발을 디디면, 누구나 먼 여행을 떠난다. 다양한 품종과 지역, 특이한 생산자를 찾아가는 나만의 와인 리스트를 만들기 위한 ‘미각 여행’에 돈과 시간을 쏟아붓기 마련이다. 샴페인은 초심자나 마시는 것이고, 생일 같은 특별한 날에만 마시는 것으로 치부되곤 한다.하지만 ‘와인 여정’의 종착지에 다가갈수록 고수들의 손과 입은 샴페인으로 되돌아간다. 마치 연어가 태어난 강으로 회귀하는 것처럼 말이다. 샴페인을 마시다 보면 깨닫게 된다. 어떤 음식과의 ‘마리아주(궁합)’에도 잘 맞고, 특별한 순간에만 마시는 게 아니라 샴페인을 마시는 그 순간이 특별하다는 것을.폴 당장 에 피스가 만들어내는 샴페인은 과시용으로 소비되던 흔한 샴페인과 정확히 대척점에 있다. 4대 당주인 장 밥티스트 당장의 철학만 들어봐도 이를 알 수 있다. 그는 최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좋은 샴페인이란 입에 머금는 순간 미소를 짓게 만드는 것”이라며 “내가 죽고 난 후에 남는 건 내가 만든 샴페인뿐이라는 생각으로 포도를 가꾸고 와인을 제조한다”고 말했다.
화려하진 않지만 진심을 다한 샴페인
폴 당장 에 피스는 1947년 샹파뉴 지역 코트 데 바 마을에서 시작됐다. 설립자인 폴 당장은 14세 때부터 포도 재배 일을 시작했다. 대형 와인 업체에 포도를 납품하는 게 그의 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폴은 마을 친구들과 뜻을 모았다. ‘우리가 최고의 포도를 재배하는데 직접 와인을 만들어보자’는 결의였다. 그는 ‘폴 당장과 아들들’이란 뜻의 폴 당장 에 피스를 설립하고 ‘당장 페이 브뤼’라는 샴페인을 출시한다. 일본의 유명 와인 만화인 ‘신의 물방울’에 소개된 제품이다.피노누아 100%로 제조한 샴페인은 출시 직후 샴페인 애호가들에게 큰 관심을 받았다. 실력을 인정받아 설립 2년 만인 1949년 영국 왕실 납품허가권을 지닌 업체 J&B에 발탁됐다. 당시 영국 왕실에 납품하던 다른 6개 회사는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대형 샴페인 업체다. 오로지 맛으로 승부를 건 신생 와이너리가 당당히 이름을 올린 것이다.
일명 ‘당장 샴페인’의 차별화 포인트는 포도다. 샴페인에 사용되는 포도는 전부 손으로 수확한다. 샴페인에 가장 어울리는 포도송이를 선택하기 위해선 직접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봐야 한다는 신념에서다. 모에&샹동, 돔페리뇽, 뵈브클리코 등 대형 샴페인 제조사조차 포도의 80%를 다른 밭에서 가져온다. 장 밥티스트는 “대형 샴페인 브랜드들은 오랜 시간에 걸쳐 샴페인 시장을 키운 공이 있다”고 평가하면서도 “샴페인 제조에서 가장 중요한 작업이 포도를 키우는 것인 만큼 샴페인 양조의 80%를 안 한다는 것과 다름없다”고 말했다.폴 당장의 빈티지 샴페인은 최소 두 개 연도 이상의 와인을 더하는 것이 특징이다. 오래된 와인에 새로운 와인을 첨가함으로써 ‘당장 샴페인’만의 스타일을 살리면서도 신선함을 가미하기 위해서다. 위스키, 셰리 등에 적용되는 ‘솔레라 시스템’을 샴페인에도 적용했다. 피노누아, 샤르도네, 피노므니에 등 2종 이상의 포도를 블렌딩한 제품이 많은 것도 특징이다. 그래서 당장 샴페인을 마시면 피노누아의 볼륨감, 샤르도네의 산뜻한 산도, 피노므니에의 풍성한 과일 향을 모두 느낄 수 있다.
굴 한입에 ‘퀴베 장 밥티스트’ 한 잔의 호사
폴 당장 에 피스는 올해 세 종류의 샴페인 신제품을 내놨다. 종합주류기업 아영FBC와 손잡고 ‘폴 당장 프레스티지 퀴베’ ‘폴 당장 퀴베 장 밥티스트’ ‘폴 당장 브뤼 로제’를 선보였다. 이 중 퀴베 장 밥티스트는 장 밥티스트가 야심 차게 자신의 이름을 걸고 내놓은 제품이다. 샤르도네 단일 품종으로 만들었다.장 밥티스트에게 어떤 점이 특별한지 물었다. 그는 “와이너리를 운영하는 건 자전거와 같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전통을 고수하는 와이너리라도 앞으로 한 발짝이라도 나아가지 않으면 자전거처럼 넘어지기 마련”이란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샴페인 철학을 묻는 질문에 현대 하이패션의 아이콘인 카를 라거펠트의 말을 인용했다. “라거펠트는 진짜 패션은 보이지 않는 것이라고 했어요. 저의 샴페인 철학은 그의 패션 철학과 비슷합니다.” 다른 샴페인처럼 화려한 외양을 갖고 있지는 않지만 ‘전통적인 방식으로 만든 진짜 샴페인’이 제대로 평가받을 날이 있을 것이란 신념이다.장 밥티스트는 이번 방한 길에 한국의 굴을 맛봤다고 했다. 그의 이름을 딴 샴페인과 곁들였다. 그는 “한식엔 많은 생선 요리가 있는 만큼 샴페인과의 궁합이 훌륭하다”며 “특히 퀴베 장 밥티스트는 한국의 맛있는 굴과 환상적인 조화를 이룬다”고 말했다.
송영찬 기자 0ful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