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체가 흐르는 스피커, 기분 따라 다른 커피 맛...기술과 예술의 '바람직한 동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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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성형 인공지능(AI)처럼 세상을 바꾸는 신기술은 예술계에도 '생각할 거리'를 던졌다. 기술은 예술은 동반자인가, 경쟁자인가.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엿볼 수 있는 곳이 있다. 24개 아트테크 기업(팀)들이 입주한 서울 중학동 아트코리아랩이다. 이들 기업은 기술에 예술을 입히는 방식으로 새로운 사업모델을 개발하고 있다. "기술이 예술의 가치를 더욱 높여줄 것" "예술이 기술을 만나면 대중성과 상업성이 제대로 발현될 것"이라는 게 이들 업체의 생각이다. 그렇게 입주 기업들이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예술작품 같은 상업제품', 혹은 기술을 접목한 새로운 예술작품을 만들도록 돕는 게 아트코리아랩의 목표다.지난 10월 개관한 아트코리아랩은 문화체육관광부와 예술경영센터가 운영하고 있는 예술종합지원 플랫폼이다. 한국경제신문은 최근 아트코리아랩에 입주한 번슬랩, 얼스(3ARTH), 사운드울프 등 3개사 대표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수년 전부터 각자 프로젝트를 진행해온 이들 기업이 아트코리아랩 덕분에 한지붕 아래 모이게 됐다.
자성유체는 1960년대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로켓 연료로 개발한 물질로, 하이엔드 스피커와 모터 등에도 활용된다. 정 작가는 자성유체의 아름다움을 미술작품으로 만드는데 온 힘을 쏟았지만, 정작 그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준 건 자성유체로 만든 상업제품인 '비주얼라이저'(시각화 장치)였다.
2021년 2월 작업하다 남은 재료로 오디오의 자기에 반응하는 비주얼라이저를 만든 뒤 SNS에 올린 게 대박을 터뜨린 것. 재미로 올린 콘텐츠였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예술작품 저리가라'였다. 그 스스로 "작가 생활하면서 받은 것보다 훨씬 많은 관심을 받았다"고 할 정도다.그는 이 비주얼라이저를 스피커에 접목해 '베놈 스피커'를 만들었다. 제품에 내장된 전자석은 재생되는 소리와 상호작용해 자성유체를 움직이게 하는데, 이는 스피커에서 흘러나온 음악에 맞춰 액체가 춤추듯한 모습을 연출한다.
하나의 덩어리로 뭉쳤다가, 물방울처럼 퍼져나가기도 하는 다채로운 액체의 움직임은 기술을 통해 더욱 아름다워진다. 다양한 장치와 회로 수정 등 정 대표의 감각적인 터치를 통해서다. "수요가 충분하다"고 확신한 정 대표는 올 초 이 사업을 진행하기 위해 지난해 초 스타트업을 세웠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예술에 공감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선보이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가 개발한 스피커는 가격(120만원)이 만만치 않은데도 벌써 1만2000명 이상이 사겠다고 구매 대기 리스트에 이름 올려놓은 상태다. 시중에 모방 제품이 쏟아져 나왔지만, 예술가의 손길이 닿은 오리지널 제품을 찾는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고.정 대표는 "그 자체로 아름다운 유체에 실용성을 더하자 더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갖는 걸 보고 '이런 방법도 있구나' 생각하게 됐다"며 "앞으로 비주얼라이저를 스피커 외에 다른 기기에도 접목해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 작가는 HCI를 함께 공부했던 동료 공학도 2명과 2019년 얼스를 시작했다. 이들의 대표 프로젝트는 '탠저블 이모션'. 인간의 감정과 감각 사이의 상관 관계를 표현하는 작품이다.
VR 콘텐츠를 본 관람자의 전두엽 6개 채널의 뇌파를 측정한다 .측정된 뇌파는 얼스의 자체 알고리즘을 통해 뇌파-감정-감각 순으로 변환된다. 이를 뇌파에 반응하는 6개의 LED 바의 빛깔과 움직임(시각), 사운드(청각)를 통해 실시간으로 변화하는 관람자의 감정을 확인하는 것이다.
지난 4월 서울 동대문 DDP에서 진행한 전시에서는 여기에 미각을 더했다. 자신의 모습을 거울로 마주하고, 센서에 손을 대면 피부전도도(EDA) 감지로 감정 상태를 측정한 뒤 이를 미각으로 표현한다. 참여자의 감정 상태에 따라 다른 비율로 블렌딩된 원두가 추출되고, 참여자는 자신의 기분을 표현한 커피를 맛보는 식이다. 이 작가는 "원두는 원래 무료로 제공할 생각이었는데, 2000명 넘는 사람들이 몰려 유상 판매를 하게 됐다"며 "MBTI 열풍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요즘엔 나만의 개성, 나만의 스타일을 보여주는 걸 의미있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인간의 감정이나 정서, 추상적인 개념을 미디어아트로 표현한 사례는 많다. 얼스는 여기에 그들만의 기술, 사람의 감정이나 감각, 심리를 객관적으로 측정하고 분석하는 기술도 갖고 있다. 이를테면 몰입 상태인 사람의 뇌파, 체액 분비량, 심박수 등을 측정해 이를 예술로 표현하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개인맞춤형, 관객참여형 예술(인터랙티브)이 된다.
얼스는 앞으로 시청각과 미각을 넘어 촉각, 후각 등으로 감각의 영역을 확장해 나갈 계획이다.
이 작가는 "시각이 전부였던 미디어아트에 기술을 더해 오감으로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라며 "예술과 기술의 결합이 만들어내고 있는 새로운 시장에 올라탈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사운드마크'는 왜 하나도 없을까. 박소현 사운드울프 대표(27)는 이 점에 주목했다. 특정 장소를 떠올릴 때 흘러나와야 할 상징적인 사운드를 찾아주는 사업을 해보자는 것.
박 대표는 연극 및 공연 연출과 작곡을 전공했다. 내러티브(서사성) 기반의 음악을 만드는 게 그의 일이었다. 그는 "예술계에서 음악을 만드는 것을 넘어 청각 문화의 개념을 바꿀 수 있는 방식을 찾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지난해 말 사운드울프를 세웠다. 사운드울프는 각 장소에 맞는 '사운드마크'를 다양한 형태와 방식으로 구현하는 작업을 벌이는 회사다.이 회사의 대표 프로젝트는 '소리식물'. 서울 곳곳의 소리를 듣고 자란 식물들이 '사운드가든'이라는 공간에 모여 저마다의 소리를 들려준다. 꽃, 나무 형태의 스피커 형태로 만들어진 이 소리식물들은 각 장소에서 들리는 소리 음원을 따서 현대음악과 믹싱한다. 이를테면 보신각 근처에 서식하는 소리식물은 종소리, 사람들이 방문해서 나누는 대화소리 등이 포함된 음악을 들려준다.
또 다른 프로젝트인 '사운드 클럽 인 제주'는 공공저작물(소리)을 현대음악 장르와 결합해 지역문화 고유의 소리로 만드는 사업이다. 귤, 바람, 현무암 등 제주를 대표하는 상징물을 스피커와 결합된 형태의 사운드 오브제로 제작해 공공저작물에 입혔다.
이처럼 사운드울프는 공간 오디오 브랜딩이 필요한 플래그십 스토어, 휴게 공간, 온라인 사이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업에 기여하고 있다. "도심을 걷다보면, 사실 들리는 건 소음 뿐이에요.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으로 소음을 '차단'할 게 아니라 그 소음을 예술로 버무려 보자고 한겁니다. 그렇게 한 지역, 한 장소, 한 공간을 상징하는 소리를 갖게되면, 그 곳의 가치는 한층 더 높아질 겁니다."
최다은 기자 max@hankyung.com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엿볼 수 있는 곳이 있다. 24개 아트테크 기업(팀)들이 입주한 서울 중학동 아트코리아랩이다. 이들 기업은 기술에 예술을 입히는 방식으로 새로운 사업모델을 개발하고 있다. "기술이 예술의 가치를 더욱 높여줄 것" "예술이 기술을 만나면 대중성과 상업성이 제대로 발현될 것"이라는 게 이들 업체의 생각이다. 그렇게 입주 기업들이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예술작품 같은 상업제품', 혹은 기술을 접목한 새로운 예술작품을 만들도록 돕는 게 아트코리아랩의 목표다.지난 10월 개관한 아트코리아랩은 문화체육관광부와 예술경영센터가 운영하고 있는 예술종합지원 플랫폼이다. 한국경제신문은 최근 아트코리아랩에 입주한 번슬랩, 얼스(3ARTH), 사운드울프 등 3개사 대표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수년 전부터 각자 프로젝트를 진행해온 이들 기업이 아트코리아랩 덕분에 한지붕 아래 모이게 됐다.
○전업 예술가에서 아트 프로덕트 메이커로
'닥드정'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뉴미디어 작가이자 아트 스타트업 번슬랩을 이끌고 있는 정승훈 대표(41)는 전기, 정보통신, 일러스트레이션을 공부한 뒤 작가로 활동했다. 그는 8년여 전부터 자성유체(액체처럼 형태가 변하는 자석)의 신비로움에 매료돼 이를 토대로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구축해왔다.자성유체는 1960년대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로켓 연료로 개발한 물질로, 하이엔드 스피커와 모터 등에도 활용된다. 정 작가는 자성유체의 아름다움을 미술작품으로 만드는데 온 힘을 쏟았지만, 정작 그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준 건 자성유체로 만든 상업제품인 '비주얼라이저'(시각화 장치)였다.
2021년 2월 작업하다 남은 재료로 오디오의 자기에 반응하는 비주얼라이저를 만든 뒤 SNS에 올린 게 대박을 터뜨린 것. 재미로 올린 콘텐츠였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예술작품 저리가라'였다. 그 스스로 "작가 생활하면서 받은 것보다 훨씬 많은 관심을 받았다"고 할 정도다.그는 이 비주얼라이저를 스피커에 접목해 '베놈 스피커'를 만들었다. 제품에 내장된 전자석은 재생되는 소리와 상호작용해 자성유체를 움직이게 하는데, 이는 스피커에서 흘러나온 음악에 맞춰 액체가 춤추듯한 모습을 연출한다.
하나의 덩어리로 뭉쳤다가, 물방울처럼 퍼져나가기도 하는 다채로운 액체의 움직임은 기술을 통해 더욱 아름다워진다. 다양한 장치와 회로 수정 등 정 대표의 감각적인 터치를 통해서다. "수요가 충분하다"고 확신한 정 대표는 올 초 이 사업을 진행하기 위해 지난해 초 스타트업을 세웠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예술에 공감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선보이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가 개발한 스피커는 가격(120만원)이 만만치 않은데도 벌써 1만2000명 이상이 사겠다고 구매 대기 리스트에 이름 올려놓은 상태다. 시중에 모방 제품이 쏟아져 나왔지만, 예술가의 손길이 닿은 오리지널 제품을 찾는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고.정 대표는 "그 자체로 아름다운 유체에 실용성을 더하자 더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갖는 걸 보고 '이런 방법도 있구나' 생각하게 됐다"며 "앞으로 비주얼라이저를 스피커 외에 다른 기기에도 접목해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기분 따라 다른 커피맛…MBTI 같은 맞춤형 예술
뉴미디어 아트 작가이자 아트 스타트업 얼스의 대표 이승정 씨(34)는 "기술은 예술가에게 가장 재미 있는 놀이도구"라고 말한다. 미디어아트를 사랑하는 공학도였던 그는 한양대 아트 테크놀로지 대학원에서 인간-컴퓨터 상호작용(HCI)을 공부했다. HCI는 기술과 인간의 상호작용을 연구하는 인지심리학 기반의 학문이다.이 작가는 HCI를 함께 공부했던 동료 공학도 2명과 2019년 얼스를 시작했다. 이들의 대표 프로젝트는 '탠저블 이모션'. 인간의 감정과 감각 사이의 상관 관계를 표현하는 작품이다.
VR 콘텐츠를 본 관람자의 전두엽 6개 채널의 뇌파를 측정한다 .측정된 뇌파는 얼스의 자체 알고리즘을 통해 뇌파-감정-감각 순으로 변환된다. 이를 뇌파에 반응하는 6개의 LED 바의 빛깔과 움직임(시각), 사운드(청각)를 통해 실시간으로 변화하는 관람자의 감정을 확인하는 것이다.
지난 4월 서울 동대문 DDP에서 진행한 전시에서는 여기에 미각을 더했다. 자신의 모습을 거울로 마주하고, 센서에 손을 대면 피부전도도(EDA) 감지로 감정 상태를 측정한 뒤 이를 미각으로 표현한다. 참여자의 감정 상태에 따라 다른 비율로 블렌딩된 원두가 추출되고, 참여자는 자신의 기분을 표현한 커피를 맛보는 식이다. 이 작가는 "원두는 원래 무료로 제공할 생각이었는데, 2000명 넘는 사람들이 몰려 유상 판매를 하게 됐다"며 "MBTI 열풍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요즘엔 나만의 개성, 나만의 스타일을 보여주는 걸 의미있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인간의 감정이나 정서, 추상적인 개념을 미디어아트로 표현한 사례는 많다. 얼스는 여기에 그들만의 기술, 사람의 감정이나 감각, 심리를 객관적으로 측정하고 분석하는 기술도 갖고 있다. 이를테면 몰입 상태인 사람의 뇌파, 체액 분비량, 심박수 등을 측정해 이를 예술로 표현하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개인맞춤형, 관객참여형 예술(인터랙티브)이 된다.
얼스는 앞으로 시청각과 미각을 넘어 촉각, 후각 등으로 감각의 영역을 확장해 나갈 계획이다.
이 작가는 "시각이 전부였던 미디어아트에 기술을 더해 오감으로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라며 "예술과 기술의 결합이 만들어내고 있는 새로운 시장에 올라탈 계획"이라고 말했다.
○소리에도 브랜드가 있다?…공간의 시그니처 사운드
'랜드마크'가 될만한 건축물은 서울에만도 줄잡아 10여개는 된다. 잠실 롯데타워, 숭례문, 경복궁, 흥국생명 앞 '망치질을 하는 사람'까지.그런데 '사운드마크'는 왜 하나도 없을까. 박소현 사운드울프 대표(27)는 이 점에 주목했다. 특정 장소를 떠올릴 때 흘러나와야 할 상징적인 사운드를 찾아주는 사업을 해보자는 것.
박 대표는 연극 및 공연 연출과 작곡을 전공했다. 내러티브(서사성) 기반의 음악을 만드는 게 그의 일이었다. 그는 "예술계에서 음악을 만드는 것을 넘어 청각 문화의 개념을 바꿀 수 있는 방식을 찾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지난해 말 사운드울프를 세웠다. 사운드울프는 각 장소에 맞는 '사운드마크'를 다양한 형태와 방식으로 구현하는 작업을 벌이는 회사다.이 회사의 대표 프로젝트는 '소리식물'. 서울 곳곳의 소리를 듣고 자란 식물들이 '사운드가든'이라는 공간에 모여 저마다의 소리를 들려준다. 꽃, 나무 형태의 스피커 형태로 만들어진 이 소리식물들은 각 장소에서 들리는 소리 음원을 따서 현대음악과 믹싱한다. 이를테면 보신각 근처에 서식하는 소리식물은 종소리, 사람들이 방문해서 나누는 대화소리 등이 포함된 음악을 들려준다.
또 다른 프로젝트인 '사운드 클럽 인 제주'는 공공저작물(소리)을 현대음악 장르와 결합해 지역문화 고유의 소리로 만드는 사업이다. 귤, 바람, 현무암 등 제주를 대표하는 상징물을 스피커와 결합된 형태의 사운드 오브제로 제작해 공공저작물에 입혔다.
이처럼 사운드울프는 공간 오디오 브랜딩이 필요한 플래그십 스토어, 휴게 공간, 온라인 사이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업에 기여하고 있다. "도심을 걷다보면, 사실 들리는 건 소음 뿐이에요.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으로 소음을 '차단'할 게 아니라 그 소음을 예술로 버무려 보자고 한겁니다. 그렇게 한 지역, 한 장소, 한 공간을 상징하는 소리를 갖게되면, 그 곳의 가치는 한층 더 높아질 겁니다."
최다은 기자 ma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