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이 떡' 벌어지는 한국 공장…베트남 청년 먹여살린다 [강경주의 IT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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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주의 IT카페] 105회하노이 노이바이 공항에서 버스를 타고 동쪽으로 두 시간을 달리면 베트남 북부 최대 공업 도시 하이퐁에 위치한 짱쯔(Trang Due)공단이 나온다. 전체 면적 40만1000㎡(약 121만3025평)에 96개 기업이 입주한 짱쯔공단을 움직이는 건 LG전자, LG디스플레이, LG이노텍, LG화학과 이 기업을 뒷받침하는 제조부품 전문기업 탑런토탈솔루션이다.
베트남 북부 하이퐁 탑런토탈솔루션 공장 탐방
LG전자, LG이노텍 공장 바로 옆 위치
"베트남 공장 증설 LG發 수주 증가 대응 차원"
"2027년까지 매출은 1조원으로 끌어올릴 것"
지난 34년 간 LG그룹과 협력 관계를 이어온 탑런은 최근 베트남 C공장을 완공하고 지난 1일 기자에게 현장을 공개했다. 현지에서 만난 박영근 탑런 대표는 "공단 부지가 늪지대여서 35미터나 파고 내려가야 암반이 나올 정도로 공장 건축 과정이 쉽지 않았다"며 "LG그룹이 전략적으로 투자하면서 공단 일대가 천지개벽을 했다"고 입을 열었다.
탑런토탈솔루션 베트남 공장 가보니 '입이 떡'
짱쯔공단은 구미공단을 통째로 옮겨놓은 모습이었다. 공단 거리엔 한글 간판을 내건 음식점이 즐비해 베트남에 와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게 할 정도였다. 어딜가나 한국산 차량을 운행하는 LG그룹 임직원과 중소기업 관계자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공단 중심부로 들어서자 LG 계열사의 거대한 공장이 시선을 압도했다. 웅장한 LG 간판 밑으론 오토바이 십수만대가 빽빽하게 주차돼 눈길을 끌었다. 김진승 탑런 베트남 법인장은 "아침 저녁으로 오토바이를 타고 출퇴근하는 베트남 근로자들의 모습이 장관"이라며 "하이퐁의 역동성을 확인할 수 있는 순간"이라고 했다.탑런 하이퐁 공장은 지난해 회사 전체 매출액 4830억원 중 25%(1247억원)를 차지할 정도로 핵심 역할을 하는 곳이다. 그 중 탑런이 새로 개소한 베트남 C공장은 연면적 9788㎡(약 2961평)에 생산동 3층 규모다.
C공장에는 대형 사출 기기 6대와 정보기술(IT) 모바일 플라스틱-유기발광다이오드(P-OLED)의 주요 부품인 스티프너(Stiffener·충격 보호용 부품), 벤드PSA(Bend PSA·베젤 밴딩 가이드 부품), 백라이트유닛(BLU·Back Light Unit), 헤드업디스플레이(HUD·Head-Up Display) 등을 생산하는 통합 라인 설비가 설치됐다. 이번 증설로 IT 모바일 P-OLED 부품은 연간 9600만 대에서 1억8000만 대로 생산능력(CAPA)이 확대됐다.이번 증설은 탑런의 주요 고객사인 LG전자, LG디스플레이의 늘어난 수주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다. 박 대표는 "LG디스플레이에서 납품하는 글로벌 IT 기업 A사의 신형 모델의 OLED 패널 수주 계획이 전 모델보다 50% 증가했다"며 "LG전자 역시 전장 편의장비 수요가 급격히 증가해 전장 사업의 수주 잔고만 80%를 육박했다"고 귀띔했다.LG전자 공장 바로 옆에 위치한 탑런 공장 내부로 발을 내딛자 박 대표가 그토록 강조한 '관리의 중요성'을 단 번에 확인할 수 있었다. 중소기업 공장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깔끔했기 때문이다. 공장 내부에선 방진복을 입은 수백명의 현지 직원들이 조립과 검사, 테스트, 운반으로 분주했다. 이 법인장은 "LG계열사와 탑런이 만드는 일자리가 이곳 청년들에게 큰 희망이 되고 있다"고 자부심을 드러냈다.
공장 입구에는 높이 2~3m(미터)를 넘는 육중한 사출기가 굉음을 뿜어내고 차량용 부품을 찍어내고 있다. 사출기가 발산하는 열기로 내부 온도가 높았지만 바닥에는 먼지를 찾아볼 수 없었다. 이 법인장은 "모든 공정은 수율을 위해 철저하게 위생을 체크하고 있다"며 "품질검사(QC)를 마친 사출품은 3단계의 도장 공정을 거쳐 납품된다"고 말했다.다음으로 살펴본 BLU제조 공정은 '반도체 공장'과 맞먹을 정도의 최첨단 기술을 보유한 곳이었다. BLU는 운전석 계기판과 CID(차량용 정보안내 디스플레이)로 쓰이기 때문에 극도의 정밀성이 요구된다. 운전자 안전과 직결되서다. 글로벌 완성차 업체를 대상으로 공급하고 있는 탑런은 생산되는 BLU 전 제품에 대해 품질 검사를 실시한다. 최근 공정을 간소화 하면서 불량률은 10%에서 2%까지 낮췄다. 고객사 요구에 의해 완전 자동화 공정을 추진 중이어서 인력 재배치와 효율화를 꾀하고 있다.P-OLED의 방열·방습 등 내구성 강화에 필수 부품인 스티프너와 밴드PSA(베젤 밴딩 가이드 부품)를 만드는 공정도 눈에 띄었다. 월 최대 CAPA는 743만개로 업계 최대 수준이다. 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전 제품에 대한 품질 검사를 하고 있다. 최근 출시된 아이폰15에도 이 제품이 쓰였다. 박 대표는 "아이폰15에 탑재되는 스티프너는 기기 내 집적회로(IC) 칩의 충격을 보강하는 부품"이라며 "벤드PSA는 연성 회로 기판을 구부렸을 때 흠집을 피하기 위한 부품"이라고 설명했다.
"종합 소부장 업체 거듭나기 위해 M&A 계획 중"
탑런은 2004년 출범한 전장 디스플레이 및 OLED 부품 전문 제조기업으로, 1989년 설립된 동양산업이 모태다. 사출, 회로, 정밀·광학, 금형 사업에서 시작해 전장 부품 제조로 사업 영역을 확장했다. 지난해 매출은 전년 대비 25% 증가한 4830억원, 영업이익은 78% 뛴 200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12월 기준 3639명의 임직원이 활동하고 있다.창업주인 박용해 회장은 LG전자 협력사 모임인 '협력회' 회장을 20여 년간 맡았다. 연세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LG디스플레이에서 기술 영업을 하다 탑런에 합류한 박 대표 역시 지난해부터 LG디스플레이 협력회 회장, LG전자 VS사업본부 협력회 회장을 역임 중이다.박 대표는 이번 짱쯔공단 투어 일정에 극적으로 합류했다. 최근 수장이 교체된 LG디스플레이가 협력사 대표들을 긴급하게 소집해서다. 박 대표는 협력사 회장으로서 LG그룹의 가장 든든한 우군이라는 평가받고 있다.
탑런의 고객사도 탄탄하다. 도광판 패턴 설계·제조 기술을 기반으로 벤츠·BMW·폭스바겐·현대기아차 등 글로벌 완성차 브랜드에 전장용 디스플레이 모듈을 공급하고 있다. 아울러 LG전자·LG디스플레이와 30년 넘게 손발을 맞추면서, LG그룹 글로벌 생산기지가 있는 7개 국가에 동반 진출했다.
탑런은 내년 하반기 이후 기업공개(IPO)를 준비하고 있다. 자금 조달 후 베트남 4공장 증설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박 대표는 "기존 패널 보강 부품의 양산·납품 뿐만 아니라 차세대 P-OLED 패널 보강 부품 개발도 주력하고 있다"며 "향후 자체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기술력과 생산능력을 기반으로 글로벌 IT부품 제조 전문 기업으로 도약해 2027년 매출액은 올해의 2배 수준인 1조원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자신했다.현지 투어를 하는 동안 총 12000보를 걸을 정도로 공장 규모가 컸다. 직접 현황을 설명한 박 대표는 투어가 끝나자마자 베트남 박닌성으로 이동했다. 만나야 할 현지 관료와 거래처 미팅이 줄줄이 대기중이었다. 박 대표는 종합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업체로 거듭나기 위한 M&A(인수·합병)도 병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그는 "베트남 공장 증설을 통해 주요 고객사인 LG전자와 LG디스플레이의 요구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며 "앞으로도 회사는 고객사와 동반 성장하기 위해 사업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하고 안정적인 생산 능력을 확보하는데 주력할 것"이라고 말했다.하이퐁=강경주 기자 quraso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