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이 정한 '안전지대' "인간 살 곳 아냐"…팔 피란민 분노

히스로공항보다 좁은 땅으로 피란 유도…물·식량·전기조차 없어
전염병 번지고 인근선 군사작전도…이, 피란처 공격까지 '만지작'
"알마와시는 인간을 위한 곳이 아니에요. 물은 하루만 나왔고 이후 열흘간은 나오지 않았어요.

전기도 마찬가지예요"
'인도주의 구역으로 대피하라'는 이스라엘군의 권고에 따라 지중해 연안 도시 알마와로 피란한 가자지구 주민들이 식량과 물, 전기, 텐트 등 필수 물자 부족에 시달리는 등 비인도적 상황에 절망하고 있다고 영국 BBC 방송이 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가자지구 북부에서 남부 칸 유니스로 피란했다가 이스라엘군의 남부 대공습이 시작되자 다시 지중해 연안의 알마와시로 대피했다는 림 압드 라부는 이곳에서 물, 전기와 같은 기본 서비스를 전혀 지원받지 못했다면서 "인간을 위한 곳이 아니다"라고 성토했다. 칸 유니스에서 이웃집이 폭격당하는 것을 목격하고 알마와시로 피란했다는 모나 알 아스탈도 이곳에서 텐트와 생필품을 300달러(약 40만원)에 사야 했으며, 배고픈 사람들이 유엔 창고에 침입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고 전했다.

그는 머릿니와 수두, 장염 등 질병이 어린이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다면서 "하루하루 지날수록 우리가 마주한 위험은 커진다"고 말했다.

두 달 넘게 이어진 전쟁으로 가자지구 인구 230만명의 85%인 190만명이 고향을 떠난 상황에서, 이스라엘군이 '안전지대'로 정한 알마와시로의 인구 유입이 급증하자 피란처의 위기도 심화하는 모양새다. 가자지구 남부 라파 지방에 있는 알마와시는 이스라엘군이 전쟁 초기부터 '인도주의 구역'으로 지정해 피란을 유도한 지역이다.

이스라엘군은 지난 10월 18일 엑스(X)를 통해 "군은 가자지구 주민에게 알마와시 지역의 인도주의 구역으로 이동할 것을 명령한다.

알마와시는 필요한 경우 국제 인도주의 지원을 바로 받는다"고 밝힌 이래 지금까지 최소 15차례에 걸쳐 이곳으로의 피란을 권고했다. 하지만 알마와시는 애초 생존에 필요한 기반 시설이 부족한 황무지였던 까닭에 초기부터 피란민들이 제대로 된 지원을 받지 못했다.

게다가 이스라엘군이 안전하다고 지정한 구역도 8.5㎢ 정도로 영국 런던 히스로 공항보다도 작은 수준이다.
국제기구들은 이미 이스라엘군의 설정한 인도주의 구역이 낳을 수 있는 비인도적 상황에 대해 상당한 우려를 표명했다.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은 지난달 중순 "인프라나 서비스가 거의 없는 작은 지역에 너무 많은 사람을 밀어 넣으려는 시도는 이미 위기에 처한 사람들의 건강에 대한 위험을 크게 증가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가자지구 남부의 최대도시 칸 유니스를 맹폭하고 있는 이스라엘군은 최근 알마와시의 인도주의 구역도 하마스 활동지역으로 지목하고 나서 피란처의 인도주의적 위기는 한층 심화할 가능성이 커졌다.

이스라엘군은 가자지구 북부의 알시파 병원을 '하마스 지휘본부'로 지목하다 끝내 공격한 바 있다.

피란민 쉼터와 구호활동 지역을 군사작전 대상으로 삼을 경우 민간인 사상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다.

북부에서 알마와시로 내려온 모하메 가넴은 "알마와시는 인도적이지도 안전하지도 않다"며 "1㎞도 안 되는 거리에서 이스라엘 탱크를 목격했으며, 인도주의 구역에서 불과 500m 떨어진 지역에서 공격이 있었다"고 전했다.

알마와시 뿐만 아니라 피란민이 대거 몰리고 있는 이집트 국경 근처 라파 지역에서는 생존 위기가 극에 달하고 있다.

주민 샤흐드 알 모달랄은 영국 일간 가디언에 칸 유니스 주민들이 라파로 피란하기 전에 라파에는 이미 연료와 물, 식량이 부족했다면서 "이곳은 조용하지만, 난민의 규모와 식량·자원 부족으로 상황이 끔찍하다. 진짜 기근 상황이다"고 강조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