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예술성지'를 만든 로버트 드 니로가 찍은 두번째 도시, 마이애미 [마이애미 아트위크]
입력
수정
아트바젤 마이애미와 함께 열린 트라이베카 영화제"토요일은 드 니로의 날이잖아!"
911 테러 위로하고 뉴욕 부흥하기 위해 2002년 개최
창립자인 로버트 드 니로, 뉴욕 밖 첫 트라이베카로
미국 '문화의 도시'로 거듭나고 있는 마이애미 택해
JR크로니클스와 '숲 속 대담'...디캐프리오도 관객으로
12월 첫주 수요일부터 닷새간 열린 제 21회 아트바젤 마이애미 비치 현장. 개막 첫날부터 VIP 라운지 곳곳에서 익숙한 이름이 들려왔다. '로버트 드 니로'가 언제 오는 지, 그의 대담 행사를 직접 볼 수 있는 객석 예약엔 성공했는 지에 대한 대화가 이어졌다. 그는 아트바젤에 오는 게 아니었다. 자신이 21년 전 뉴욕에서 만든 '트라이베카 영화제'의 첫 마이애미 진출을 기념해 직접 스토리텔러로 무대에 서기로 한 것. 트라이베카 영화제는 21년 전 같은 해에 마이애미에 진출한 아트바젤과 공식적인 협력을 맺고 이번 행사를 기획했다. 아트바젤 나흘째인 지난 9일(현지시간) 아트바젤 행사장 길 건너 보태니컬 공원 내 숲속에 마련된 작은 무대에 드 니로가 모습을 드러냈다. 프랑스 사진작가이자 거리예술가 JR크로니클스와 함께였다. 50~60석에 불과한 '부티크 무대'를 꾸려 미처 입장하지 못한 사람들은 공원 곳곳에서 어깨 너머로 그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드 니로는 2001년 9·11 테러 사건 이후 집단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는 뉴욕의 부흥을 기원하며 프로듀서 제인 로젠탈, 부동산 투자자 크레이그 햇코프와 함께 '트라이베카 영화제'를 만들었다. 영화제를 기반으로 매년 봄마다 예술가와 창작자들이 모여들며 이 지역은 지금 뉴욕에서도 가장 많은 갤러리와 작가들의 스튜디오가 모인 '예술의 성지'가 됐다.
트라이베카 영화제는 해를 거듭하며 영화 장르를 넘어 파괴적 혁신을 만든 예술가와 단체에게 상을 수여하며 단숨에 세계적인 영화제로 거듭났다. 2013년엔 한국 가수 싸이가 이 영화제에서 혁신상을 받기도 했다. 드 니로는 이날 자신의 아버지, 가문의 예술적 유산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나눴다.
"난 아버지가 쓰던 스튜디오를 그대로 뒀어요. 그가 얼마나 사랑했는 지 알기 때문이죠. 그가 거기 있는 것처럼 느껴지고, 또한 그의 예술혼도 아직 살아 숨쉬는 것 같습니다."
그의 아버지 로버트 헨리 드 니로(1922~1993)는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한 추상화가. 어린 시절 부모의 이혼으로 평범하지 않은 청년기를 보내야 했던 그는 아버지가 사망한 지 약 10년이 지나 "아버지는 동성애자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세상에 밝혔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고 밝힌 바 있다.이탈리아계 가문의 가부장적 문화 속에서 아버지에 대한 복잡한 반항심이 있었던 그는 이후 아버지가 살던 뉴욕 소호의 아파트를 다시 사들여 지금까지 살고 있다. 2014년엔 아버지에 관한 다큐멘터리 '예술가를 기리며'에 직접 출연해 아버지로부터 받은 영향과 존경심을 기록으로 남기기도 했다. 2년 전부턴 JR과 함께 아버지의 작품과 일기를 시작으로 드 니로 가문의 손자 손녀들을 위해 추억을 기록하는 작업도 하고 있다. JR은 "세대를 이어가는 예술가 가문의 이야기는 시대를 거슬러 끝없이 전해질 수 있다"며 "수년 동안 계속될 수 있다"고 했다. 음악과 토크쇼, 스토리텔링과 영화 상영 등을 함께 하는 이 행사엔 나흘간 유세프 다예, 나타샤 디그스 등 DJ는 물론 최근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가 된 화제의 회고록 <당신이 만약 내게 말해줬다면(If You would Have Told Me)>을 쓴 배우 존 스테이머스도 함께 했다. 지독한 알코올 중독과의 투쟁기록을 책으로 펴낸 그는 스토리텔러로 나서 "영웅 이야기가 아닌, 나를 도왔던 사람들과 나 자신의 하루 하루 기록을 지금도 어딘가에서 싸우는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었다"고 했다. 드 니로는 마이애미와 인연이 깊다. 마이애비 해변의 고급 호텔인 '노부 호텔'의 공동 소유주이기도 하고, 오랫 동안 휴양지로 드나들던 도시이기 때문이다. 객석에는 그와 수 많은 영화에 함께 출연한 예술적 동지 레오나르도 디캐프리오가 참석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아트바젤 전시담당 이사인 빈센조 드벨리스는 "전 세계 창의적인 선구자들이 마이애미의 문화적 혜택에 매력을 느끼고 있다"며 "아트바젤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트라이베카 페스티벌과 연결돼 진정으로 독특한 경험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트라이베카 영화제의 최고경영자(CEO)인 제인 로젠탈은 "트라이베카는 예술의 스토리텔링의 최전선에 있고, 아트바젤은 최고의 국제 아트페어인 만큼 양쪽 모두 경계를 넓히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마이애미=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