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바이오 벤처시장 화두는…글로벌 기술이전·역대급 할인" [긱스]

2022년까지 버티던 바이오 벤처펀드도 올들어 확연히 줄어들었습니다. 내년엔 자금난에 처한 기업들이 증자에 나서면서 역대급 할인이 전망됩니다. 한경 긱스(Geeks)가 이알음 IMM인베스트먼트 상무로부터 2024년 바이오 벤처시장 전망을 들어봤습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내년 바이오 벤처투자 시장의 화두로 글로벌 기술이전과 밸류에이션 조정이 꼽혔다. 2021년의 '바이오 붐' 직후 불어닥친 투자 한파로 내년 바이오 시장에 옥석 가리기가 진행될 전망이다.IMM인베스트먼트에서 바이오 섹터 펀드를 운용하고 있는 이알음 상무는 "2021년 바이오 붐이 일면서 밸류에이션 부담은 생겼지만, 대규모 투자금이 유입된 덕분에 연구개발(R&D) 스케일이 글로벌 기술이전이 가능한 수준으로 올라왔다"며 "투자 한파를 견뎌 온 기업들도 내년엔 역대급 할인율로 증자에 나설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상무는 12일 한경 긱스와의 인터뷰에서 "연말부터 내년까지 K바이오 기업의 글로벌 기술이전 소식이 나올 것으로 예상한다"며 "제2의 '루닛' 같은 새로운 기업이 탄생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면서 "유전자 가위 기술, RNA 등 혁신 기술로 벤처 자금과 인재는 계속해서 흘러 들어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울대 약대 05학번인 이알음 상무는 증권사 애널리스트에서 벤처캐피털리스트로 변신한 경우다. 2015년 IMM인베스트먼트에 합류한 그는 2021년 전문성을 살려 개별 바이오 섹터펀드의 대표 펀드매니저가 됐다. 250억원씩 세 차례, 총 750억원 규모 펀드를 설정했다. 1호 펀드는 자금모집과 투자가 완료됐으며, 2호 펀드는 후속 투자 위주로 안전하게 진행 중이다.

역대급 할인 기대


2021년 국내에 바이오 붐이 일면서 지난해까지 이어진 벤처투자 물줄기는 올해 들어선 크게 위축했다. 내년도 회복세를 장담하긴 힘들다.

이 상무는 "데이터 세트를 만드는 전임상 비용이 몇 년 전만 해도 30~40억원 정도 들었는데 지금은 70억원 선으로 올랐다"며 "인플레이션 여파로 2년 치 기업 운영자금으로 1년밖에 못 버티는 실정"이라고 설명했다.내년 밸류에이션 조정이 비상장 바이오 투자엔 기회가 될 전망이다. 이 상무는 "혹한기 내내 허리띠를 졸라맸던 바이오기업들도 내년에는 증자에 나설 것"이라며 "역대급으로 밸류에이션이 싸지 않을까 예상한다"고 말했다.

다만, 지분율 이슈 때문에 생각보다 기업가치가 빠르게 내려가지 못하고 있다. 그야말로 버티기에 들어간 기업들도 상당수다.

보통 미국 벤처투자 시장에선 시리즈 A 라운드에서 바이오기업들이 1000억원 이상을 증자받는 데 반해, 한국은 50억~100억원 수준이다. 한국 벤처펀드 규모가 작아서는 아니다. 이 상무는 "상장할 때 대주주 지분율, 상장 후엔 증시에서 R&D 자금을 조달해야 해 창업가들은 '경영권 방어' 고민이 크다"며 "지분율 이슈가 상장 때에만 불거지는 게 아니다"고 지적했다.


글로벌 스케일 기술이전 기대


이 상무는 "벤처 호황기에는 평균 이상만 해도 좋은 회사였다면, 지금은 정말 좋은 회사를 골라야 한다"며 "다행히 글로벌 스케일로 갈 수 있는 회사가 많아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가장 공들인 포트폴리오로는 치매 뇌 질환 치료제 개발사 바이오오케스트라(대표 류진협)와 표적 단백질 분해기술 기반 신약 개발사인 업테라(대표 최시우)를 꼽았다. 이 상무는 "두 기업 모두 1980년대생 창업가가 이끌며 폭넓은 글로벌 네트워크가 기술이전으로 이어지고 있다"며 "해외 인재들도 적극적으로 영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바이오오케스트라는 모더나 출신 핵심 기술자를 영입했다.

국내 바이오 기업은 주로 핵심 파이프라인에 명운이 달리는 게 한계로 지목된다. 이 상무는 "파이프라인이 얼마나 확장성이 있고 지속 가능한지가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는 "바이오오케스트라는 본업인 뇌 질환 치료제 개발도 기대되지만, 모더나 RNA를 뇌에 전달할 수 있는 전달체 기술을 갖고 있다"며 "올해부터 기술을 이전하면서 연구비를 조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바이오오케스트라는 지난 3월 뇌 표적 고분자 기반 약물 전달체 기술을 8억6100만달러(약 1조1000억원)에 글로벌 제약사에 이전했다. 바이오오케스트라는 기술이전 실적을 바탕으로 내년 상장에 도전한다.


2018년 설립된 업테라는 체내 단백질 분해시스템(UPS)을 이용해 표적(질병 원인) 단백질을 제거하는 '프록탁' 기술 기반 차세대 신약 개발 플랫폼으로 주목받고 있다.

몸 안에서 표적 단백질을 자연스럽게 없애주는 분해 효소인 '프록탁 모달리티'를 연구하는 회사다. 분해효소를 서로 연결하기 쉽도록 자체적으로 새로운 'E3 라이게이즈'를 개발하면서 글로벌 제약사로부터 협력 제안이 이어지고 있다.이 상무는 "벤처투자는 기다리는 것"이라며 "힘든 시장 상황에서도 회수할 기회가 생긴다"고 말했다. 이어 "레고캠바이오가 상장 후 10년 뒤에서야 성과를 인정받듯이 바이오산업은 데이터의 질, 인력의 경험 수준이 과거 대비 우수하다"고 평가했다.

허란 기자 wh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