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과 함께 보기

[arte] 김리윤의 부드러운 재료
세계를 묶어주는 것은 장애물이며, 구조를 말할 수 있는 한, 장애물들이 세계에 구조를 부여한다, 장애물들은 앞으로 무엇이 장애물이 되고 되지 않을 것인지를 결정한다, 이것이 되든, 저것이 되든, 나쁜 늑대가 되든, 빨간 두건이 되든, 어느 쪽은 될 것이며, 어느 쪽은 되지 않을 것인지, 어디로 갈 것인지, 어디에서 멈출 것인지, 혹은 어디에서 시작할 것인지, 과연 시작이라도 할 것인지, 아무것도 없다.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미래는 오로지 우리가 현재 지닌 두려움과 희망의 형태로만 현실성을 지니며, 과거는 기억으로만 존재한다. (…) 제4의 철학학파의 대표자들은 이미 모든 시간이 지나갔으며, 우리의 삶이란 돌이킬 수 없는 과정의 여운이 비치는 것일 따름이라고 주장한다.
—W. G. 제발트

너는 언제나 불빛의 가장자리에 서 있다. 침침한 빛과 희미한 어둠 사이. 꾹 눌러 밟고 있어도 언제나 움직이는 가장자리, 희부옇게 번지는 테두리의 시간에. 너는 언제나 너무 많은 종류의 미래를, 너무 많고 미세한 세부를 상상하기 때문에 막상 도착한 미래 속에 있을 때는 돌아왔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했지. 낯선 미래는 없다, 미래는 손에 익은 물질이며 기시감을 유발하는 이미지다. 낯선 것은 차라리 과거다. 너는 언제나 현재와 친해지려 애쓰지만 그건 발아래서 매순간 어슴푸레함으로 도망가는 가장자리에 가깝다고 했지. 마주 앉아 어색한 침묵을 견디듯이 너는 쉴 새 없이 발을 조정한다. 혀끝의 말을 굴린다.너는 배수구에 엉킨 머리카락을 맨손으로 떼어내기 위해 욕실 바닥에 쭈그리고 앉은 사람 같은 얼굴과 눈빛으로, 구부정한 자세로 미래에 대해 말하곤 했다. 네 눈이 가질 수 없었던 선명도를 갖고 눈앞에 있는 것을 다시 보듯이. 확대경으로 들여다본 이구아나의 피부나 거미의 털북숭이 다리 같은 것, 언젠가 인쇄소에서 루페로 들여다보았던 종이의 질감 같은 것을 보듯이. 손에 닿는 종이의 매끈함, 눈앞에는 만약 네가 아주 작은 벌레의 몸을 가졌다면 기대어 잠들 벽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은 거친 요철들. 촉감과 장면 사이에 놓인 간격. 그런 공간은 두려움이 고이기에 좋다. 너는 그런 공간 앞에 놓인 얼굴을 마주하듯이, 같은 얼굴이 되어가며 사랑하듯이 본다.

상상 속에서 보이는 것은 언제나 네가 만지는 촉감과 네가 느끼는 온도를 초과해 있다고, 무시무시한 것을 본 얼굴로 너는 말했지. 그것은 미래에 한해서만 가능한 보기다. 미래의 해상도에 비하면 현재는 바닥에 엎질러진 액체처럼 느껴진다. 어딘가 옮겨 담으려 하면 증발하거나 사방으로 흐르거나 틈새로 스며든다. 액체의 색깔에 바닥이 얼마나 섞여 있는지 분간할 수 없다. 미래의 선명함은 눈이 가질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때때로 나는 우리 뇌에 저울이 있고, 이 저울의 한쪽에는 두려움이, 다른 한쪽에는 상상력이 있다고 생각하곤 한다.”* 어떤 극의 대사를 읊어 주었을 때, 너의 얼굴은 두려움 쪽으로 완전히 기울어진 저울을 가진 것처럼 보였다. 완전히 기울어진 나머지 반대편에 올라갈 물질의 종류도 무게도 질량도 상관없어진 얼굴. 너는 기우뚱한 자세로 상상한다. 우리를 상상하고, 우리가 속할 미래를 상상하고, 우리를 말하기 위해 필요한 미래를, 그곳에서 몸을 둘 장소를, 장소로서의 몸을 상상한다.도시에는 밤이 없다고 너는 말했지. 밤 대신 어두운 조명만이 있는 것 같다고. 너무 어슴푸레한 어둠. 너무 어슴푸레한 밝음. 환하다고 하기엔 너무 회색인, 캄캄하다고 하기에도 너무 회색인 시간. 그런 시간 속에서 클럽은 끊임없이 사진을 찍어내는 거대한 추상화 기계라고. 안개가 피어오르고, 천장을 올려다보면 불빛이 보이는 가장자리에 있고, 그 안에서는 무형의 것들이 반짝이고 깜빡거린다.** 지하로 통하는 입구들은 밤새 열려 있고, 바깥은 어두운 조명인 채로 지속되고, 안쪽에서는 작은 빛들이 우글거린다. 너는 작은 빛들이 우글거리는 곳을 안쪽이라고 느낀다. 입구는 사람들을 구부정한 뒷모습으로 집어삼킨다. 어두운 조명의 가장자리로, 바깥으로, 연약한 불빛 속으로 몸들을 밀어 넣는 거대한 추상화 기계.

언제나 눈을 감는 것으로는 부족했지. 눈을 감는 일은 눈꺼풀의 두께를, 연약함을,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어둠이 얼마나 얄팍하고 반투명에 불과한 것인지를 실감하게 할 뿐이었지. 우리의 눈꺼풀은 언제나 떨렸지. 어둠 역시 떨렸지. 우리는 떨리지 않는 어둠을 원했다. 미동 없는 어둠을 원했다. 몸을 잊을 어둠을 원했다. 우리에게는 스스로 추상이 되기 위해 기계 안으로 걸어 들어가는 시간이 너무나 필요했다. 같은 어둠과 같은 빛을 뒤집어쓰며, 같은 빛의 움직임 아래서 제각각 춤을 추며, 휘청거리며, 구부정대며, 떨며, 허물어지며, 몸의 바깥을 분명히 느끼며 몸을 잊어버리는 시간이. 깜빡이는 빛이 있고 희부연 가장자리가 있고 가장자리 너머에는 우리를 푹 담가둘 어둠이 있는 추상이.

푸르고 붉은 인공 빛 아래서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잘 마주 볼 수 있었지. 내일은 언제나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고 가까이서 우리를 마모시키고 있는 것 같았지. 우리는 닳고 닳은 어깨로 서로에게 기대어 술을 주문하고, 플라스틱 잔을 들어 올려 시원찮은 소리를 내는 테두리를 부딪치며 웃었지. 슬퍼했지. 내일 너머의 미래는 먼 벽처럼, 먼 벽이 만드는 새카만 소실점처럼 있었지. 그런 이야기를 하는 대신 피로한 아기 같은 얼굴로 내일을 떠들고 내일을 여럿으로 늘려보려 애썼지. 살아 있는 일에 대해 굳이 말하지 않았지.우리는 서로의 자세를 수선하며, 서로의 몸을 선명하게 빚으며, 서로의 몸을 실감하며, 서로의 몸을 생생한 추상으로 만들며, 생생함과 선명함을 맞바꾸며 몸을 잊었다. 몸을 잊으며 우리를 우리라고 부를 수 있었다. 우리라는 호명을 소리로 만들 때 모여드는 조그마한 소음들을 다 껴안으며. 우리라는 안쪽이 좁아지게 하는 공간의 구획을, 우리라는 안쪽이 움직이게 만드는 테두리를 생각하며. 술잔을 부딪히고 법석을 떨며.

너는 여전히 구겨지듯 걸어 다니며 미래를 말하고, 미래를 말할 때 기우뚱한 목소리가 되는지. 아픈 짐승을 껴안고 무거운 자세로 잠을 청하는지. 피로한 꿈을 꾸고 피로한 얼굴로 모든 꿈을, 꿈의 세부를 다 기억하는지. 그걸 세계와 포개어 보고 있는지. 알 수 없는 것을 알 수 없는 채로 내버려두며 이해하는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할 수 없는 채로 내버려두며 알게 되는지. 모르는 이해와 이해할 수 없이 아는 것 사이에서 자라고 있는지. 안전하지 않은 구역에 있는지. 많은 것이 무섭고 또 더러운지. 무서운 것에도 더러운 것에도 침식되지 않은 새 친구들, 오래된 친구들과 함께 있는지.

여전히, 어쩌다 보니 살아남은 사람이 되어 버렸다는 기분 속에 있는지. 피구 경기가 한창인 체육 시간, 멈춘 것들과 멈추게 될 것들의 동작이 뒤엉키는 운동장 표면. 너는 시간을 함부로 다루듯이 발생하는 동작들 사이에 선 채로 헤맨다. 너는 사람을 맞추기 위해 날아다니는 공들을 멀거니 서서 보고 있다. 너의 얼굴은 피로하고, 그 피로가 너를 유령처럼 보이게 한다. 너는 유령이 되어 살아남지만 살아남은 자가 된 너는 즉시 발각된다. 사방이 너를 노출한다.그래 너는 여전히 살아남은 사람이 되어 원한 적 없는 낯선 곳에 와버렸다는 느낌 속에서 발등에 먼지를 쌓고 있는지. 자리를 정리하고 무릎을 털고 일어나 다른 곳으로 뚜벅뚜벅 걸어가는 사람들 속에 섞여 보기도 하는지. 네가 있지만 그려둔 너의 모습이 없는 미래를 생각하며 안도하는지. 네가 보는 구체성 바깥에서 미래는 언제나 조금씩 움직이는 중이라는 걸, 그걸 다 볼 수는 없다는 걸 알게 되었는지. 세계가 아무리 낡거나 닳았다 해도 여전히 네가 매만지며 소모할 귀퉁이가 남았다고 믿는지.


나는 거대한 사진 앞에 있다. 충격적인 선명도를 가진 세부들. 아주아주 작은 픽셀들이 우글거리며, 서로를 껴안으며, 어깨를 맞대며 무한을 보여주는 것 같은 해상도. 있는 그대로의 눈이 가질 수 없는 물질적 현실.

붉은 어스름. 텅 빈 시간을, 없는 공간을 에워싸며 무언가 있게 만들 안쪽을 생성하는 테두리. 공간을 호명할 수 있게 만드는 테두리. 음악을 이루던 모든 소리들이 갑작스러운 정적이 된 자리에 발생하는 텅 빈 안쪽이 있다. 우리는 떠난다. 다른 사람 없이는 떠나지 않는다. 하나를 이루던 여기에서. 우리를 우리라고 부를 때, 하나가 가면 다른 하나는 가지 않는다. 갈 시간은 찾아오고, 가야 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이 보고 싶어 하는 것이, 그들의 원하는 눈을 따라 옮겨지는 사물이, 꿰매지는 풍경이, 이동하는 몸이, 지금도 움직이는 미래가 있을 때. 음악을 이루던 소리들이 모두 변할 수 없는 하나라는 듯이, 하나의 시간을 결연하게 종료하듯이 사라질 때. 우글거리는 시간을, 구깃구깃한 공간을 펼치며 텅텅 비울 때. 비워진 자리에 누군가 놓고 간 겉옷의 구겨짐이 없는 몸을 증언하며 있을 때. 몸들이 사라진 자리에서 냄새들이 소란한 그림자를 만들 때. 뒹굴던 먼지들이 서로에게 발각될 때. 조그마한 소음들이 하나둘 테두리 안쪽으로 모여들 때. 꺼지지 않은 조명들은 아침 햇빛의 붉음과 뒤엉키며 창백해지고, 정지한 미러볼은 어색하게 자연광을 반사하며 빛날 때. 아침에 침범당하지 않으려 빛나는 어슴푸레함 속에서. 아무도 다른 사람 없이는 떠나지 않는다.

이제 여기엔 무겁고 오래된 자세로 잠을 청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낡고 늙은 너의 얼굴에서 내 얼굴을 발견한다. 되찾는다. 발견은 언제나 되찾는 일이기도 하다는 것을 기억해 낸다. 기억한다. 나는 일어나서 사랑을 되돌아본다. 얼굴은 서로의 장애물들로 있었다. 세계는 간소하고 소박한 구조였다. 우리의 발이 접할 영토가 발바닥 주변으로 자라고 있었다. 땅이 우리의 웃음을 묻는다. 우리의 슬픔을 묻는다.*** 강도, 경도, 탄성, 연성 같은 땅의 성질 때문에 우리는 발바닥이 얼마나 부드러운 물질인지를 처음으로 실감하고 있었다. 물질의 연약함 때문에 마음이 애닳는 일을 알아버린 얼굴로 헤매며 서 있었다. 그런 얼굴들이 장애물로 배치되고 있었다. 생겨나는 매듭이 발바닥을 간지럽히고 있었다.

우리는 일어나서 사랑을 보았다. 매듭은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 우리는 그걸 딛고 서서, 장애물 사이로 기우뚱하게 서서 서로의 구조가 되고 있었다. 눈을 감으면 눈꺼풀이 떨렸다. 벌어지려는 것처럼, 모든 것을 다 보려는 불가능을 향하여. 눈꺼풀 안쪽의 밝은 눈동자로. 안전한 구역의 눈동자로. 무섭고 더러운 것들이 많았다. 그래도 곳곳에서 일어나는 사람들이 있었다. 같은 노래를 부르며. 장애물이 되려고. 서로의 구조가 되어주려고. 시간의 무구한 얼굴로. 서로를 꼭 쥔 늙고 닳은 손으로. 우리가 우리를 호명하는 마음이 장애물이 놓일 세계를 만들 때, 우리가 우리를 부를 때 지나가는 시간 속에서.

우리는 모두 일어나 사랑을 본다.

이탤릭체로 표기한 부분은 존 애쉬베리의 시 「계속하는 방법 How to continue」를 인용 또는 변용한 것이다.

* 엘 콘데 데 토레필 〈정원에서 숲을 호흡하듯이〉
** “저에게 클럽은 끊임없이 사진을 찍어내는 거대한 추상화 기계입니다. 안개가 피어오르고 천장을 올려다보면 불빛이 보이는 가장자리에 있는 경우가 많죠. 그 안에서는 무형의 것들이 반짝이고 깜빡거립니다.” 볼프강 틸만스의 인터뷰에서 발췌.
*** “어느 밤에 만난 이가 / 너의 슬픔이 진짜냐 물으면 / 너의 웃음이 진짜냐 물으면” (이민휘의 노래 〈무대륙〉, 《미래의 고향》, 2023.)

이 글은 볼프강 틸만스의 전시 《To look without fear》, 사진 〈Wake〉(2001), 이민휘 앨범 〈미래의 고향〉(2023), 존 애쉬베리의 시 「How to Continue」를 재료 삼아 쓴 것이다.
© Wolfgang Tillmans, courtesy Maureen Paley, London
○ 이민휘 《미래의 고향》


○ John Ashbery 「How to Continue」
https://www.poetryfoundation.org/poems/52163/how-to-contin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