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엔 명동성당…수직 공간을 상상의 놀이터로 만든 빛의 조각들

[arte] 배세연의 스페이스 오디세이
연말에 가장 어울리는 장소가 어디일까 생각해 본 결과, 여러 공간을 거친 생각의 끝이 명동성당에 가 닿았다. 어린 시절에 열심히 다녔던 성당이라는 공간을 지금 반추해보면 그 곳은 연말에 크리스마스와 함께 가장 화려하고 특별한 장소가 되는 곳이었다. 그 때의 기억이 아직도 무의식에 남아 연말이라는 시간과 성당이라는 공간을 연결지어 떠올리게 하는 것 같다.

명동성당은 천주교 서울대교구 주교좌성당으로, 이름 그대로 중구 명동에 위치하고 있다. 성당의 신자들은 기본적으로 본인이 속한 교구의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지만 명동성당은 한국 천주교회를 상징하는 그 대표성으로 인해 다른 교구에서 미사를 보러 온 신자들 뿐 아니라 성당을 구경하는 것 자체가 목적인 외부인들의 방문이 활발한 곳이다. 필자 역시 명동성당에서 종종 미사를 드렸었고, 마음이 심란할 때는 그냥 가서 앉아만 있기도 했었다. 또한 1898년 완공되어 120년 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 성당은 고딕양식으로 지어진 대규모의 건축물이 우리나라에 처음 구현된 사례라는 점에서 건축사적 중요성을 가진다. 특정한 건축 양식으로 지어진 건물들은 설계를 위한 그 양식만의 문법 같은 것을 가지는데 명동성당 역시 고딕양식의 문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우선 성당의 평면은 라틴십자형의 삼랑식 평면으로, 신자들이 미사를 드리기 위해 자리하는 곳은 중앙의 신랑(Nave)와 양 옆의 측랑(Aisle)으로 나누어진다. 이 공간을 지나 본당의 안쪽으로 들어가면 삼랑을 이루던 공간과 직각으로 교차하는 라인에 의해 형성되는 공간인 트란셉트(Transept)가 나타나고 이보다 안쪽, 본당의 가장 깊은 곳에 제단이 있는 앱스(Apse)가 위치한다. 입면의 체계는 세 개의 층을 가진다. 신랑과 측랑을 나누는 열주들이 늘어서 있는 아케이드(Arcade), 채광창이 나있는 가장 상부의 클리어스토리(Clearstory), 그리고 이들 사이에 위치한 중간 층 트리포리움(Triforium)이 그것이다.

고딕성당에서 형태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늘로 치솟는 듯한 수직성이다.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중앙이 뾰족한 아치인 첨두아치(Pointed arch)와 이들 사이에 형성된 리브볼트(Rib vault)이다. 그리고 이들을 지탱하는 높은 기둥 사이에 성당 안으로 빛을 유입시키는 창이 형성되고, 여기에 형형색색의 스테인드글라스가 설치되면 고딕양식의 성당이 제 모습을 갖추게된다.
출처 = 위키메디아
이러한 고딕양식의 건축물이 가지는 가장 큰 특징은 기둥다발, 첨두아치, 리브볼트 등 건물의 역학적 구조에 관여하는 요소들이 그 자체로 공간의 예술성을 형성한다는 것이다. 명동성당은 건물의 축조에 벽돌을 사용하여 이러한 형식을 구현하였지만 고딕양식의 건물에 주로 사용되었던 주요 재료는 석재이다. 정교하고 촘촘한 석공기술로 조각된 돌들이 만들어낸 구조와 장식들이 집대성 된 공간은 그 자체가 마치 하나의 조각과도 같아 보인다.

명동성당은 고딕의 극치를 이루어낸 것으로 알려진 성당들보다 장식적인 면은 덜한 편이지만 어린 시절의 필자가 명동성당 안에 들어갔을 때 처음 느꼈던 웅장함과 화려함은 가히 압도적이었다. 늘어선 기둥다발들이 만들어내는 웅장함, 창문의 패턴과 뾰족한 아치들이 크기를 달리하며 만들어내는 리듬감. 천장의 리브들이 가진 연속성이 모두 합쳐진 그 역동성 속에서 공간이 마치 레이스처럼 화려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기억에 남아있다. 그래서 대학에서 처음 서양건축사를 배우며 ‘고딕(Gothic)’이라는 단어가 야만스러운 고트족을 칭하는 뜻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납득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어렸던 필자에게 이러한 공간은 상상의 놀이터와도 같았다. 1시간 동안 엄숙한 분위기에서 진행되는 미사에 온전히 집중하기는 솔직히 어려웠던 이유로 머릿속에서 열심히 고딕의 문법들을 변형하며 다양한 형태를 상상해보곤 했었다. 기둥과 리브가 만들어내는 반복되는 선들을 배경삼아 여러 가지 패턴을 만들어보기도 하고, 가운데가 뾰족한, 크기가 다른 아치들의 배열을 달리하여 다른 형태를 만들어보기도 했으며 성당의 높이를 더 높여보기도, 낮춰보기도 하면서 공간의 곳곳에 눈과 마음을 빼앗겼었다. 하지만 가장 좋아했던 순간은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하여 성당의 표면에 맺혀있던 빛의 조각이 가만히 있다가 꿈틀 하는 장면을 포착할 때였다. 그때는 정말 공간이 살아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명동성당은 우리나라 천주교 성장의 구심점이자 민주화의 성지, 시민사회 성숙을 위한 공간 등 오랜 시간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다양한 방식으로 특별하게 존재해왔다. 그리고 필자에게는 심리적인 안정을 주는 것 뿐 아니라 상상력이 뛰어놀 수 있게 한 특별한 공간으로 기억되고 있다. 이처럼 어떠한 공간도 모두에게 똑같은 공간으로 기억될 수는 없다. 한 해의 마지막을 앞두고 있는 이 시점에서 각자에게 특별한 공간은 어디였는지 생각해보고 그 곳이 본인에게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새롭게 발견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