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 미술’ 탄생… “꼬리가 개를 흔들 듯, 돈이 예술 흔들다”

[arte] 정준모의 아트 노스탤지어

좀비 형식주의?

오늘날 미술은 ‘제3의 죽음’의 시대를 맞고 있다. 2008년 세계 금융 위기 이후 발생한 이런 현상은 ‘좀비 형식주의(Zombie Formalism)’로 나타났다. 포스트모던 미술이 미술계의 급속한 팽창을 전제로 했다면, 포스트 컨템포러리 미술(Post Contemporary Art)은 기대 감소 시대의 현상 유지 혹은 수축, 붕괴를 전제로 존재한다.

이러한 경향은 내용이 없는 순수 형식의 추상미술, 즉 ‘형식추상(Formal Abstraction)’이란 개념을 낳았고 이는 좀비 형식주의 논쟁으로 번졌다. 미술평론가 라파엘 루빈스타인(Raphael Rubinstein,1955~ )은 2009년 잡지 아트 인 아메리카(Art in America)를 통해 “‘일시적인 회화(Provisional Painting)’란 무심한 듯 보이거나(Casual), 미완성처럼 보이는(Unfinish) 새로운 추상미술을 일컫는다. 모더니즘의 역사 속에서 상상가능하거나 동원 가능한 전략은 이미 모두 사용되었고, 부정의 전략을 취하는 방식 역시 더이상 새로울 것 없는 시대에 나타나는 일종의 징후”라고 기술하면서 좀비 형식주의를 비판했다. ‘제3의 죽음’은 2008년 이후 ‘오늘’의 개념이 변하며 포스트모던의 비평 효과가 한순간에 파괴되면서 나타났다. 미디어 테크놀로지의 새로운 발달과 함께 역사가 되었던 데이터베이스 속 20세기는 더욱 생생한 모습으로 ‘오늘’로 귀환했다.

‘제3의 죽음’은 미술사에서 세 번째로 중요한 변곡점을 시사하는 개념으로, 1차 세계대전 이후 아방가르드 미술과 모더니즘의 탄생으로 인한 자연주의적 재현 회화의 ‘죽음’을 시작으로, 두 번째 ‘죽음’은 1968년 이후 새로운 아방가르드 미술과 포스트 모더니즘의 등장과 함께 모더니즘 특히 추상미술의 죽음을 전제로 나타났고 이후 2010년대에 이르러 20세기를 바탕으로 끝없이 재구성되는 다층적 층위를 지닌 미술의 시대가 되면서 오늘날의 좀비 형식주의와 형상주의가 성행하면서 제3의 죽음을 맞게되었다. 물론 이런 현상을 옹호하는 이들은 ‘레트로 마니아(Retro Mania)’의 시대라고 칭하며 시대적인 현상의 하나라고 주장한다.


짜깁기 또는 유사 미니멀리즘

오늘의 ‘좀비 형식주의’란 예술가이자 미술평론가인 월터 로빈슨(Walter Robinson,1950~ )이 2014년 아트 인 아메리카(Art in America)에 발표한 “뒤집기와 좀비 형식주의 탄생”(Flipping and the Rise of Zombie Formalism)이란 글에서 젊은 예술가들의 작품에 투기성 투자(Art Flipper)를 하는 컬렉터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특정한 유형의 그림을 지칭한 말이다. 2007년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자칭 컬렉터라는 이들은 젊은 작가들의 신작을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으로 구입한 뒤 곧바로 경매에 내놓아 단기 투기성 이익을 내는 일들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이들은 젊은 작가들의 철 지난 클레멘트 그린버그(Clement Greenberg, 1909~1994)의 미학을 되살린 형식주의적 추상을 선호했고, 오스카 무리요(Oscar Murillo,1986~ ), 루시앙 스미스(Lucien Smith, 1989~ ), 제이콥 케세이(Jacob Kassay,1984~ )와 같은 작가들을 소위 버려진 20세기 모더니즘 미학의 전형을 다시 호출하거나 그 일부를 짜깁기한 예술가와 그들의 작품을 선호했다. 이들은 첼시 이전, 미술의 절대적 중심이었던 소호시절의 “그린버그 주의”가 80년대를 맞아 신표현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에 밀려 완전히 물러났던 것을 재소환했다.
오스카 무릴로, 무제(벽에 걸린 그림), 2011 캔버스위에 오일스틱, 스프레이페인트, 에나멜, 기타그린 패밀리 아트재단소장 사진 Chad Redmon
루시앙 스미스 같은 동전의 양면 Two Sides of the Same Coin (2012) 소화기에 물감을 넣어 뿌린 회화로 좀비형식주의의 전형으로 인용된다
제이콥 캐세이 Jacob Kassay Untitled (diptych) 2012
제이콥 케세이(Jacob Kassay,1984~ ) 무제 2010 캔버스를 아크릴 페인트로 코팅한 다음 은을 전기도금해서 캔버스를 덮는 미니멀한 작품으로 좀비형식주의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거론된다
이런 류의 유사 미니멀 작품은 비평가 제리 잘츠(Jerry Saltz,1951~) 등 많은 비평가로부터 실망스럽다는 반응을 얻었고, 예술가 세스 프라이스(Seth Price,1973~ )는 그의 훌륭하면서도 논쟁적인 소설 <엿먹어라, 세스 프라이스(Fuck Seth Price)>를 통해 이런 류형의 작품을 “미온적인 구성, 주저함이 묻어나는 미니멀리즘적 외향, 이쁘면서, 헐뜯는 말로 가득한 것”이라고 신랄하게 평가했다.

이런 경향의 작품에 대한 정중하고 학문적인 명칭은 “과정기반 추상회화(Process-based Abstract Painting)”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짜깁기 모노크롬’ 또는 ‘유사 개념미술’로 존재한다. 그런 고로 로빈슨이 명명한 “좀비 형식주의”라는 비평적 명칭이 일반적으로 여전히 사용된다. 로빈슨은 미학적 조롱의 의미로 이 말을 사용했는데, 그린버그가 전 세계 아트 페어를 누비며 홍보했던 20세기 중반의 회화를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이런 비평적 시각에도 불구하고 이런 현상의 바이러스는 전염병처럼 빠르게 확산해, 최근 몇 년 동안 새로 데뷔하는 석사학위 졸업생과 그 뒤를 쫓는 탐욕스런 수집가들 사이에서 높은 감염률을 보이며 번져나갔다.

꼬리, 개 몸통을 흔들다

2012년 초까지만 해도 좀비 형식주의와 그 주변의 먹이사슬 열풍이 미술계의 판도를 바꿀 것처럼 보였다. 그 후 십 수년 동안 비평가, 큐레이터 등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돈 많은, 이해당사자들 사이에서 거래되던 미적 권력의 고삐는 이제 전 세계 주요 컬렉터들의 손아귀에 들어갔다. 그리고 이런 변화에 대해 비평가 데이비드 기어스(David Geers)는 그의 에세이 “네오 모던(Neo Modern)”을 통해 좀비 형식주의자들에 대해 가장 신랄한 비판을 가했다.

그는 “오늘날 예술의 궁정적 속성”을 프라고나르(Jean-Honoré Fragonard, 1732~1806), 나티에(Jean-Baptiste Nattier,1678~1726), 부셰(François Boucher, 1703~1770)와 같은 18세기 화가들의 거품 낀 로코코 스타일과 비교하면서, 기어스는 소위 컬렉터라는 이들의 손에 들어간 작품이 “주로 선전적, 긍정적 또는 장식적인 역할에 국한되어 있다.”고 한탄했다. 그는 여전히 좀비 형식주의자들을 보고 “이 순간, 제 느낌은,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소외되고 배제된 이들, ‘계몽된’ 지식인과 거리에 모인 ‘폭도’ 사이의 사회 계층 분열이 18세기 사회적 분열상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마찬가지로 더이상 미래를 상상하거나 모델링 할 수는 없지만, 신화적인 과거를 과장함으로써 현재의 지배 권력을 달래주는 예술가의 모델은 현대 이전을 연상하게 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그는 좀비 형식주의는 새로운 금화의 시대, 거상들에게 아첨하고 그들의 풍요로운 인생에 봉사하기 위해 제작된 새로운 시대, 새로운 종류의 ‘궁정 회화’라고 지적한다.


좀비 형상미술

거의 동시이긴 하지만 이후 등장한 것이 ‘좀비 형상미술’(Zombie Figuration)이다. 1978년 뉴뮤지엄 설립자인 마샤 터커(Marcia Tucker, 1940~2006)는 자신이 실제로 훌륭하다고 주장하는 비유적인 작품들로 구성된 <‘나쁜’ 회화>(Bad Painting,)>라는 전시회를 열었다. 터커는 1970년대 미국 구상 회화의 경향을 설명하기 위해 당시 뉴욕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14명의 작품을 선보이며 ‘나쁜 회화’를 당시 1970년대 회화 스타일에서 나타나는 인물의 변형, 미술사적 자원과 비 미술적 자원의 혼합, 환상적이고 불경한 내용을 특징으로 하는 집중적이거나 고의적인 무례라 정의했다. 특히 정확한 표현을 무시하고 예술에 대한 전통적인 태도를 거부한다는 점에서 ‘나쁜’ 그림은 재미있고 감동적이며 종종 좋은 취향의 기준에 대한 경멸로 인한 스캔들을 일으켰다.

이 전시에는 제임스 앨버트슨(James Albertson, 1944~2015), 조안 브라운(Joan Brown,1938~1990), 에두아르도 카리요(Eduardo Carrillo, 1937~1997), 제임스 샤틀레인(James Chatelain, 1947~ ), 크리플리(Cply, 별칭 윌리엄 코플리, William N. Copley, 1919 ~1996), 찰스 가라베디안(Charles Garabedian, 1923~2016), 샴 헨던(Cham Hendon, 1936~2014), 조셉 힐튼(Joseph Hilton, 1946~ ), 닐 제니(Neil Jenney, 1945~ ), 주디스 린하레스(Judith Linhares, 1940~ ), P. 월터 사일러(Walter Siler, 1939~ ), 얼 스탈리(Earl Staley, 1938~ ), 샤리 우르크하트(Shari Urquhart,1940-2020), 윌리엄 웨그먼(William Wegman, 1943~ )등 14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이들은 진보라는 개념을 우회한다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고 원하는 대로 될 수 있는 특별한 자유를 누렸다. 부분적으로는 이것이 '나쁜' 그림의 가장 매력적인 측면 중 하나인데, 선과 악의 개념이 유연하고 작품이 보여지는 즉각적인 맥락과 더 큰 맥락 모두에 영향을 받았고, 이들 중 몇 명은 의도적으로 외설적 관습을 시험했다. 이즈음의 미술은 대담한 붓놀림의 추상표현주의가 여전히 예술의 전형으로 여겨졌고, 개념미술이 지배하던 2010년 말 화가들은 마초적 네오 페인팅의 정점에 있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현실은 더더욱 비관적이다. 대중문화의 캐릭터나 만화 특히 웹툰의 주인공 이미지를 차용, 조합한 일러스트 수준의 그림을 소위 코리안 팝이라는 정체불명의 조어로 포장한 채 원작가가 누군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키치가 키치를, 아류가 아류를 낳고 다시 그 아류를 다시 조합한 의사 형상 미술이 판을 치기 때문이다. 물론 이를 구별 없이 바로 시장에 풀어내는 경매사나 화랑들의 책임도 크지만, 작가 의식을 결여한, 젊은 작가들의 배금주의와 허명 의식도 한몫하고 있다는 점은 더욱 씁쓸하다.


물러서기

이후 미술 시장의 단기 투기자들과 친화적인 프로세스 기반 유사 개념미술 또는 변종 미니멀리즘에서 벗어나는 듯했지만, 결국 2014년부터 디지털 시대의 혼란에 특히 적합한 제리 잘츠가 지적했던 “허접한 추상(Crapstraction)”을 대체하면 초현실주의의 변형된 형상이 나타나 신체가 부자연스러운 자세로 뒤틀린 이미지 또는 의미가 가득한 기괴한 물체의 집합체, 미술사적 비유의 도발적인 볼륨감, 남성과 여성, 아날로그와 디지털, 현실과 비현실 사이의 분열이 무너졌다. 물론 현재에 대한 암시와 약간의 특이한 조정이 포함되었고, 냉소적인 회화적 매체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그런데 최근 이런 ‘좀비형상미술’의 수명이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길어지는 것은 미술투기꾼들의 장난감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오늘의 미술 현상을 많은 비평가는 “꼬리가 개를 흔들 듯, 시장과 돈이 예술을 흔들기 시작했다”고 진단한다. 하지만 여기에 편승한 작가들은 애써 귀를 막고, 단기 차익을 노리는 투기꾼들은 여전히 컬렉터라는 이름으로 시장에서 으스댄다. 이런 오늘의 미술이 처한 처지를 보면 단토의 ‘예술의 종말 이후’ 다시 ‘예술의 종말’을 맞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종말의 파고를 넘어 위기를 벗어날 현인의 등장을 기대하는 일이 너무 멀리 있는 듯 보이는 것이다.
자네트 문트, 그녀의 머리를 물속에 담그고 싶습니다,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