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프리즘] '70대'는 면죄부가 아니다

ELS 가입액 평균 1억 넘어
투자자 책임원칙 확립해야

유병연 논설위원
홍콩 항셍중국기업지수(홍콩 H지수) 흐름에 따라 수익률이 결정되는 주가연계증권(ELS)이 시한폭탄으로 떠올랐다. 은행이 2021년 대거 판매한 이 상품의 만기가 도래하는 가운데 지수가 폭락해 대규모 원금 손실이 잇따르면서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이와 관련해 최근 “은행이 70대 이상 고령층에게 복잡한 고난도 상품을 권유하는 것 자체가 적합한가”라며 판매사를 직격했다. 그러면서 “(은행이) 무지성으로 소비자 피해 (예방) 조치가 마련됐다고 운운하는 것은 자기 면피”라고 일갈했다.

그의 발언처럼 70대 이상은 ‘금융 약자’로 통한다. 대부분 소득이 끊겨 어려운 데다 금융이해력도 떨어져서다. 통계청에 따르면 70대 고령가구의 42%는 저축액이 1000만원 미만이다. 70대의 금융이해력은 61.1점(한국은행·금감원의 2022년 전 국민 금융이해력 조사 결과)으로 전 연령 평균(66.5점)을 밑돈다. 이런 고령층에게 은행이 원금 손실이 발생할 수 있는 상품을 권유한 것 자체가 무지성이라는 지적은 일리 있게 들린다.그런데 ELS 가입자만 떼어 놓고 보면 달리 볼 여지가 있다. 금감원이 2018년 6월 말 기준으로 ELS로 대변되는 파생결합증권 개인투자자 현황을 조사한 적이 있다. 이 결과 1인당 평균 투자금액은 6290만원이었다. ELS는 주로 돈 좀 있는 사람들의 투자 수단이라는 의미다. 전체 투자자 75만 명 중 50대가 29.8%로 가장 많았다. 이어 40대(21.5%), 60대(21.2%) 순이었다. 70대와 80대 비중은 각각 7.7%와 1.3%에 불과했다. 그런데 1인당 평균 투자금액은 70·80대가 압도적인 것으로 드러났다. 80대 이상 가입자의 평균 투자액은 1억7230만원에 달했다. 70대도 1억230만원이었다. 60대(7530만원)와 50대(6500만원), 40대(5410만원) 투자금은 그 절반 수준에 머물렀다. 30대(3080만원)는 3분의 1 수준에도 못 미쳤다.

이처럼 한 금융상품에 평균 1억원 이상을 넣는 투자자를 단순히 고령이라는 이유만으로 금융 문맹이나 약자로 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자산이나 소득이 많을수록 금융이해력이 높은 것은 상식이다. 전 국민 금융이해력 조사 결과를 봐도 고소득층(연 소득 7000만원 이상)의 금융이해력은 68.7점으로 저소득층(3000만원 이하·63.2점)과 격차가 있다. 더구나 은행 ELS 가입자의 90% 이상은 기존 투자 경험이 있는 재투자자다.

그동안 투자 결과가 나쁘다는 이유만으로 피해보상 비율을 주먹구구식으로 정해온 게 현실이다. 2020~2021년 사모펀드와 파생결합펀드(DLF) 사태 때도 금융당국은 판매사에 사실상 ‘전액 배상’을 압박했다. 고령자는 손해배상 때마다 더 많은 배상을 받아 왔다. 물론 주식·투자 게시판에 오른 사연처럼 이름만 겨우 쓰는 노인에게 ELS 가입을 권유한 사례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이가 면죄부의 획일적 기준은 될 수 없다.

금융사에 판매 적합성 책임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투자자에게는 자기책임 원칙이 있다. 특히 이번 ELS 사태는 2021년 3월 금융소비자보호법 도입 이후 처음으로 불거진 불완전 판매 논란이다. 이 법이 시행되면서 판매사가 상품의 위험성과 원금 손실 가능성을 알리는 과정에서 녹취와 자필서명을 의무화하고, 2영업일 이후 가입 의사를 재확인하며 은행 본점이 모든 가입자에게 전화를 걸어 상품 가입 의사, 판매직원 설명 등 불완전 판매 요소를 점검하는 등 이중삼중의 투자자 보호 장치가 생겼다. 이번 사태가 향후 금융 분쟁 조정의 기준이 되는 만큼 판매사는 물론 투자자 책임 원칙을 확립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