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의 소리'가 들리는 아마추어 탐정과 후텁지근한 지구

[arte] 심완선의 SF라는 세계

윤이안, [온난한 날들]
이번 달은 이상기후가 온몸으로 느껴졌다. 겨울인데 코트가 필요 없을 정도로 날씨가 온난했다. 어딘가에선 꽃이 피었다고도 했다. 하지만 일기예보를 보면 일주일쯤 후에는 기온이 영하로 곤두박질할 예정이었다. 겨울이 따뜻하면 농사가 망한다던데. 작물들이 제때를 놓치고 우왕좌왕하고, 냉해와 병충해 위험이 커진다던데. 그럼 또 식자재값이 훌쩍 뛸 텐데.

환경문제의 비용을 생각하다 보면 ‘친환경’ 용품의 값은 별것 아니라고 느껴진다. 시간이 더 흐르면 나중에는 아예 국가가 환경보호 비용을 세금으로 징수할지도 모른다. 윤이안의 [온난한 날들] 속 세상처럼.
온난한날들 (사진=교보문고)
주인공 ‘박화음’은 환경보호구역으로 지정된 평택, 에코시티에 거주한다. 소설 속 근미래에서 에코시티 사람들의 일상생활은 평온해 보인다. 소설 안이든 밖이든 세상은 기울어지는 배와 같다. 우리가 일상을 영위하듯 인물들도 하루하루 살아간다. 여기저기가 조금씩 더 기울어졌을 뿐이다. 작중에서는 탄소배출규제 때문에 한여름에도 에어컨을 마음대로 못 틀고, 기후변화가 극심한 탓에 다음 날씨를 도무지 예측할 수 없어 우산을 상비해야 한다.

박화음은 자전거로 출퇴근하기 때문에 여름에는 땀을 뻘뻘 흘린다. 무더위로 인해 커피 위의 크림은 눅진하게 녹아내린다. 따뜻하지만 불길한, 온난하지만 불온한 나날이다.

소설의 장르를 분석하자면 <온난한 날들>의 구성성분은 기후소설 30%, 미스터리 50%, 판타지 20% 정도다. 박화음은 식물의 소리를 듣는다. 정확히는 식물이 메아리처럼 반영하는, 식물 주변에 있었던 사람의 말이나 원념이다. 원체 오지랖이 넓어서인지 뭔지, 남들은 못 듣는 식물의 소리가 박화음에게는 비명처럼 또렷하다. 불특정한 다수가 남겨두고 가는 욕설과 저주와 분노가 박화음을 덮친다.소리는 진하고 강할수록 오래 남는다. 나쁜 소리를 담아낸 식물은 머지않아 시들시들해진다. 덕분에 그녀는 식물을 돌보는 일을 잘한다. 식물이 시들기 전에 영양제를 꽂는 등 힘을 보태면 대개의 식물이 곧 회복한다.

덤으로 박화음은 남들이 잃어버린 대상을 찾는 일도 잘하는 듯하다. 박화음이 일하는 카페의 점장님은 그녀에게 대단한 추리력이 있다고 믿는 중이다. 예전에 가게에서 잠시 사라졌던 점장님 아들을 찾아 데려왔던 후로, 점장님은 미스터리가 보이면 박화음에게 운을 띄운다. “화음 씨, 어떻게 방법이 없을까?”

당연히 방법은 없다. 박화음은 식물의 중얼거림을 참고했을 뿐이다. 그래도 가만히 있기에는 양심이 쑤신다. 박화음은 근방 칼국숫집 사모님과 딸내미가 실종되었다는 말에 두 사람을 찾아 나선다. 출퇴근 전후의 비는 시간에, 자전거를 타고, 식물이 들려주는 흔적을 따라 곳곳을 향한다. 별다른 보상도 없는 오지랖이다. 언제든 그만두든 상관없을 생고생이다. 그래도 박화음은 꾸준히 남의 일에 참견하며 손을 뻗는다. 박화음은 그런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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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에피소드의 진상은 씁쓸하다. 무탈해 보이는 일상 뒤에는 일상처럼 벌어지는 폭력이 자리하고 있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눈을 한 사람들은 쉽게 잘못된 일을 한다. 남의 일에 무관심한 사람들은 사태가 심각해지도록 방치한다. 많은 사람이 “사소하게 나쁜 선택”을 하면 비극이 일어난다. 에피소드를 거듭할수록 박화음이 끼어드는 사건의 규모는 약간씩 커진다. 마지막 에피소드는 소설 전체를 아우른다. 연작소설로서, 미스터리로서 이 소설은 불온한 감각을 단정하게 마무리하는 미덕이 있다.

박화음은 탐정 노릇은 도무지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반면 진짜 탐정인 ‘이해준’은 박화음이 탐정다운 중요한 자질을 갖췄다고 생각한다. 바로 오지랖과 감이다. 비극이 무심함을 먹고 자란다면, 비극을 와해시키는 것은 관심이다.

식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남들의 속내를 듣는 박화음은 사건을 쫓는 동안 자주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을 빼놓는다. 귀를 막지 않는 것은 박화음의 선택이다. 어쩌면 이것은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태도일지도 모른다. 조용한 듯 불길하게 엄습하는 멸망을 조금이라도 늦추기 위해서 ‘사소하게 좋은 선택’을 이어가기. 이미 일어난 비극이 없던 일로 변하진 않지만 적어도 다음 선택은 가능하다. 소설 속 평범한 사람들의 위태로운 일상에 깊은 동질감을 느끼며, 나는 우울한 마음을 다독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