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의 '전기톱' 대통령, 페소화 54% 평가절하 '초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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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 후 첫 경제정책 내놓은 밀레이 정부하비에르 밀레이 아르헨티나 대통령이 취임 후 첫 번째 경제 정책으로 페소화를 50% 넘게 평가절하하고 보조금을 대폭 삭감하는 개혁안을 내놨다. 인플레이션이 악화할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아르헨티나 경제를 짓누르던 만성 재정 적자를 해소하기 위한 초강수라는 평가다.
쌍둥이 적자 해소 의도…인플레 심화 우려도
교통·에너지 보조금 삭감하고 공공사업 축소
'온건파' 정부 인선에 일각선 "달러화 포기"
"페소 평가절하는 달러화 사전 작업" 평가도
페소화 54% 평가절하
루이스 카푸토 아르헨티나 경제부장관은 12일(현지시간) 달러·페소 환율을 365페소에서 800페소로 조정한다고 발표했다. 페소화 가치는 약 54% 평가절하된다. 이는 공식 페소 환율과 암시장 거래 환율을 맞추기 위한 정책이라는 평가다. 밀레이 대통령 취임 이전 아르헨티나 공식 환율은 1000페소가 넘는 암시장 환율과 세 배 가까이 차이났다. 중앙은행이 재정 지출을 감당하기 위해 페소화를 대거 발행하며 페소 가치는 떨어졌지만, 정부가 공식 환율을 묶어뒀기 때문이다.밀레이 정부는 페소를 평가절하해 수출 경쟁력을 강화하고 만성 적자를 해소하겠다는 계획이다. 밀레이 대통령은 지난 10일 취임식에서 "재정·수출 쌍둥이 흑자를 자랑하던 전 정부는 오늘날 우리에게 국내총생산(GDP)의 17%에 달하는 쌍둥이 적자를 남겼다"며 "폐허처럼 변한 사랑하는 조국을 다시 일으켜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페소 평가절하는 아르헨티나의 만성적인 인플레이션을 악화시켜 서민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수입품 가격이 내려가 수요가 늘어나는 반면 페소화 구매력은 감소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여파를 의식한듯 카푸토 장관은 "몇 달 동안은 특히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상황이 더 나빠질 것"이라고 언급했다. 카푸토 장관은 에너지·교통 보조금 삭감, 공공사업 계획 축소 등 공공개혁 정책도 발표했다. 1년 미만의 정부 근로 계약은 갱신하지 않기로 했다. 그는 "정치는 사람들 주머니에 돈을 넣어준다는 식으로 속이고 있는데, 우리는 모두 보조금이 무료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라며 "마트에서 인상된 가격으로 사람들의 교통비를 내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밀레이 정부는 에너지 보조금 삭감으로 연간 GDP의 0.5%, 교통 보조금 삭감으로 0.2%를 절감할 수 있다고 추산하고 있다. 재정 정책을 통해 GDP의 총 2.9%에 해당하는 지출을 삭감한다는 계획이다. 밀레이 대통령은 선거 유세 중 전기톱을 들고 보조금을 삭감하는 퍼포먼스를 선보인 바 있다.
이같은 발표에 국제통화기금(IMF)은 "과감한 정책 시행은 경제를 안정시키고 보다 지속가능한 민간 주도의 성장을 위한 토대를 마련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며 환영했다.
페소화, 고쳐쓸까 폐기할까
밀레이 정부가 페소화를 고쳐 쓰는 방향을 택하면서 '페소화 폐기' 공약을 포기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된다.밀레이 대통령의 온건파 경제팀 기용은 달러화를 포기했다는 관측이 나오는 배경 중 하나다. 이번 정책을 발표한 카푸토 장관은 달러화에 반대한 인물 중 하나다. 그는 우파 마우리시오 마크리 정부(2015~2019년)에서 재무부 장관과 중앙은행 총재를 지냈다.
밀레이 대통령이 중앙은행 총재에 달러화 정책의 설계자인 에밀리오 오캄포 아르헨티나 거시경제연구센터(CEMA) 대신 산티아고 바우실리 전 재무장관을 내정한 점도 공약 이행에 대한 의구심을 불러일으켰다. 인선에 대한 논란이 커지자 지난달 24일 아르헨티나 대통령직 인수팀은 "아르헨티나 중앙은행 폐쇄는 협상할 수 없는 문제"라고 선 그었다. 일각에서는 페소 평가절하를 달러화의 사전 단계로 보고 있다. 페소를 달러로 대체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달러를 갖고 있어야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페소를 평가절하해 수출을 늘려야 한다는 설명이다. 로이터통신은 밀레이 대통령의 최측근을 인용해 "입법부와 협력하면서 (달러화 정책을) 추진하는 데 1년이 걸릴 수 있다"고 전했다.
김인엽 기자 insi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