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한 장·만두 한 알 뺐다가…'국민 밉상' 된 회사들 [하수정의 티타임]

비상경제장관회의 "슈링크플레이션 근절"
식품제조사를 물가상승 주범으로 몰아
식품업계 "치솟는 생산원가 어쩌나..."
희망퇴직 잇따라...고용·투자 위축 '우려'
사진=뉴스1
식품기업들이 김 한 장, 만두 한 알을 슬쩍 뺐다가 ‘국민 밉상’으로 전락했다. 1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비상경제장관회의에선 제품 용량을 줄여 가격 인상 효과를 일으키는 ‘슈링크플레이션’을 ‘근절해야할 악(惡)’으로 인식했다.

여론의 뭇매를 맞은 식품기업들은 가격과 용량, 성분을 변경할때 소비자들에게 고지해야 한다는 정부의 지침에 대체적으로 수긍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치솟는 생산원가를 가격에 반영하지 못하게 틀어막는 것은 기업의 경영을 과도하게 침해해 결국 투자·고용을 위축시키는 부작용을 낳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물가 주범 낙인찍힌 식품업계

한국소비자원이 ‘슈링크플레이션’ 실태조사를 통해 적발한 37개 상품을 뜯어보면, '바프 견과류' 16종과 '호울스 사탕' 7종을 빼곤 대부분 언론보도를 통해 일찌감치 용량 조정이 알려진 것들이다.

기업들이 용량 축소를 결정한 배경을 들어보면 구구절절 사연이 많다. 서울우유협동조합은 ‘체다치즈’ 용량을 30~40g 줄였다가 적발됐는데, 그동안 다른 경쟁사보다 더 두터운 슬라이스치즈를 만들어오다가 제조원가 부담을 더이상 버티지 못해 타사제품과 동일하게 조정한 경우다. 조정 전 서울우유의 슬라이스치즈는 1매당 20g으로, 경쟁사 18g보다 2g많았다.

동원F&B는 올해 급등한 김 원재료 가격을 제품가에 반영하지 않는 대신 ‘동원 양반김’의 낱장 수를 10장에서 9장으로 1장 줄이는 결정을 했다. 겨울철에 주로 생산하는 김은 올해 겨울 이상고온 현상으로 생산량이 급감해 원재료 가격이 30% 가량 올랐다. 해태제과는 ‘고향만두’ (415→378g), CJ제일제당은 ‘백설 그릴 비엔나 2개 묶음’ (640g→ 560g)의 용량을 줄였다가 적발됐다. 이들 제품의 주요 원재료인 돼지고기만 해도 올해 20% 가격이 오르는 등 생산원가가 급등하자 해태제과와 CJ제일제당은 각각 봉지당 만두 1알, 소시지 2알을 뺐다. CJ제일제당은 중량을 줄이면서 가격도 9480원에서 8980원으로 인하했지만, ‘슈링크플레이션 낙인’은 지워지지 않았다.

식품업체 관계자는 “소비자 부담을 줄이려 여러가지 고민을 거듭한 끝에 가격을 올리지 않고 용량을 줄이는 결정을 했다가 평판이 크게 훼손됐다”며 “원재료와 인건비, 물류비 등 생산원가가 높아지는데 식품제조사들 팔을 비튼다고 영원히 물가가 잡힐지 의문”이라고 토로했다.

○“생산원가, 매출 78%에 달해”

실제 식품업체들의 생산원가는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증권 정보회사 에프엔가이드에 따르면 음식료 상장사 97곳의 올 3분기 평균 매출원가율(매출 대비 매출원가 비율)은 78.7%에 달한다. 이는 매출의 80% 가까이를 생산에 필요한 원재료비와 생산직 인건비, 전기·수도 등 제조경비로 쓴다는 뜻이다. 이는 2020년 77.5%에서 1.2%포인트 오른 수치다. 전체 업종 평균 69.8%보다 8.8%포인트 높다.

기업별로 CJ제일제당(78.7%), SPC삼립(84.6%). 대상(74.8%), 롯데웰푸드(72.3%) 등이 2020년에 비해 매출원가율이 올랐다. 원양어업을 하는 동원수산은 매출원가율이 100%를 넘었다. 식품업계에서 ‘원가 관리의 달인’으로 통하는 오리온조차 이 비율이 2020년 57.2%에서 올 3분기 61.5%로 상승했다.

○“기업활동 위축될 것” 우려

식품업계에선 정부의 과도한 반시장적 간섭이 기업들의 투자와 고용을 위축시킬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수익성 악화에 매일유업, SPC 파리크라상 등은 잇따라 희망퇴직을 단행하는 등 이미 식품업계에 인력 구조조정이 시작됐다.특히 기업을 ‘공공의 적’으로 만드는 사회적 분위기에선 실적이 좋은 기업들마저 눈치를 보느라 투자를 망설이게 하는 요인이 된다는 지적이다.

한 식품업계 최고경영자(CEO)는 “스태그플레이션(경기위축 속 물가 상승)이 우려되는 시기에는 정부가 기업을 물가상승의 주범으로 몰아 기업활동을 위축시킬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규제를 풀고 생산 효율성을 높여 투자를 확대하도록 인센티브 정책을 써야한다”고 강조했다.

하수정 기자 agatha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