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4조원 '한·중 합작펀드' 장고 끝에 승인…韓이 빗장 먼저 풀었다

중국 최대 투자은행 한국 진출 본격화
국내 대기업 등 전략적 투자자로 펀드 참여
한중관계 개선 물꼬 트나
금융감독 당국이 중국 최대 투자은행인 중국국제금융공사(CICC)가 추진하는 총 4조원 규모의 한·중 합작 펀드를 1년이 넘는 장고 끝에 최종 승인했다. 경색된 한·중 관계 개선을 위해 한국 정부가 먼저 빗장을 풀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13일 한국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금융감독원은 지난달 29일 CICC 계열사인 CICC캐피털과 국내 사모펀드 운용사 어센트에쿼티파트너스가 공동으로 추진해 온 4조원 규모의 한·중 합작 펀드 등록을 승인했다. CICC캐피털과 어센트EP는 지난해 합작법인 CICC어센트를 설립하고, 한·중 합작 펀드 운용 준비를 마쳤다. 어센트EP는 미국 법인을 통해서 이번 펀드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CICC어센트의 한·중 합작 펀드에는 CICC 등 중국 본토 자금을 위주로 국내 대기업과 중견기업 여러 곳이 전략적투자자(SI)로 참여한다. 투자 대상은 반도체, 바이오, 신소재 등 유망 신산업을 총망라할 전망이다. 중국 진출 시 사업 확장 기회가 큰 국내 기업과 양국의 전략적 파트너들 사이에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기업이 주요 타깃이 될 전망이다. 이미 투자 대상을 10여 곳 물색해 뒀다.

그동안 감독당국은 CICC의 한·중 합작 펀드 승인을 특별한 이유 없이 1년 넘게 보류해 왔다. 중국 자본시장의 상징적 기관인 CICC의 한국 진출 배경을 면밀히 살피려는 한국 정부의 의중이 반영된 결과다. 하지만 금감원이 갑자기 태도를 바꾸면서 합작 펀드가 본격적으로 돛을 올리게 됐다.

4조 규모 초대형 펀드...팬아시아 투자

이번 한·중 합작펀드 출범은 중국 최대 투자은행(IB)인 중국국제금융공사(CICC)의 한국 진출을 한국 정부가 사실상 승인했다는 의미가 있다. CICC는 이번 합작펀드를 한국과 중국은 물론 아시아 전 지역을 아우르는 팬아시아 펀드로 키운다는 구상이다. 한국이 중국에 건낸 유화 제스처에 중국이 어떻게 화답할지 여부에도 관심이 쏠린다.
CICC 계열사인 CICC캐피털과 국내 사모펀드 운용사 CICC어센트가 공동 설립한 CICC에센트는 한·중 합작펀드를 통해 한국과 중국의 유망 기업에 집중 투자할 방침이다. 5000억원 규모의 1차 펀드를 조성한 뒤 추가 펀딩을 통해서 4조원까지 운용 규모를 키우기로 했다. CICC 등 중국 본토 자금을 위주로 국내 대기업과 중견기업 여러 곳도 전략적투자자(SI)로 참여한다.

투자대상은 반도체·바이오·신소재 등 유망 신산업을 총망라한다. 중국 진출시 사업 확장 기회가 큰 국내 기업과 양국의 전략적 파트너들 사이에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기업이 주요 타깃이 될 전망이다. 이미 10여 곳의 투자대상도 물색해 둔 상태다. 펀드 규모가 커지면 한국과 중국 외에도 아시아 시장 전체로 투자대상을 확대하기로 했다.

이번 CICC의 한국 진출 파트너로 낙점된 어센트EP는 올 들어 SK텔레콤이 설립한 인공지능 반도체 기업 사피온을 비롯해 씨앤씨인터내셔날·원텍·네이처홀딩스 등에 활발히 투자해 자본시장에서 존재감을 키우고 있는 신생 운용사다. 최근에는 미국 록펠러캐피탈매니지먼트와도 파트너십을 체결해 투자 보폭을 넓히고 있다. 이번 한·중 합작 펀드 운용에선 국내 투자사 발굴을 에센트EP가 주도할 것으로 알려졌다.

서로가 필요한 한·중, 중국 화답할까?

CICC에센트가 펀드 설립을 추진한 것은 1년이 넘었다. 하지만 금융 당국이 중국 자본의 국내 시장 침투 의도가 없는지 면밀히 살피면서 펀드 승인이 긴 시간 지연됐다. 이에 시장에선 대규모 한·중 합작펀드 조성 작업이 물건너 갔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감독 당국이 돌연 입장을 전환하면서 중국 최대 IB의 한국 진출 작업이 속도를 내게 됐다. 이에 대해 감독 당국은 "실제 펀드 심사에 돌입한 것은 지난 8월"이라며 "늑장 승인은 아니다"고 해명했다.

중국 자본시장의 상징적 기관인 CICC가 한국에 진출하는 것은 주변국과 경제적 연대를 확장하려는 중국 정부의 의도가 밑바탕에 깔린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중국이 경제적 고립을 회피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주변국과 투자·협력을 강화하는 것이란 점에서다. 한국 정부도 이런 점을 고려해 한·중 합작펀드 승인을 두고 장고를 거듭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교착상태에 빠진 한·중 관계를 푸는 것이 국익에 더 도움이 된다는 의견을 정부가 받아들였다는 평가다. 또 펀드 심사 과정에서 처음에 가졌던 의구심도 상당 부분 해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중국이 미국의 대(對)중국 첨단기술 수출통제 조치에 맞서 ‘자원 무기화’에 나서고 있는 상황에서 돌파구가 필요했다는 평가다. 중국이 이달부터 수출통제에 나선 흑연은 이차전지의 핵심 소재고, 최근 중국의 비료 연료(요소수·인산암모늄 등) 수출통제 조치도 한국의 공급망 불안정성을 가중시키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한국이 중국을 상대로 한·중 합작펀드 승인이라는 ‘선물’을 안긴 만큼 중국의 화답 여부에도 관심이 쏠린다. 최근 양국은 그동안 단절됐던 공급망 대화 채널을 복원키로 합의하고, 실무 협의를 진행하는 등 관계 개선을 모색하고 있다. 중국도 글로벌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하려는 미국의 제재를 피하기 위해선 한국과의 산업 협력이 꼭 필요한 상황이다. 한 관계자는 “그동안 경색됐던 한·중 관계를 재건하려는 물밑 작업이 활발히 진행중”이라고 설명했다.

베이징=이지훈 특파원/강현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