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키징 인재' 쟁탈전…삼성전자, 사업장까지 옮긴다

칩 쌓고 자르고 연결하는 기술
AI 붐 타고 반도체 핵심경쟁력
후발주자 韓 'S급 인재풀' 좁아
삼성 AVP팀 천안서 수도권으로
SK는 경력채용 대부분이 패키징
경기 이천 SK하이닉스의 반도체 패키징&테스트 라인에서 직원들이 칩을 검사하고 있다. SK하이닉스 제공
삼성전자에서 최첨단 패키징(advanced packaging)을 담당하는 AVP사업팀의 본거지는 충남 천안이다. 신입·경력사원 채용 때 ‘서울에서 KTX로 한 시간 거리’라고 강조하지만 반응은 뜨뜻미지근하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삼성전자는 AVP사업팀의 개발 조직을 경기 화성·용인으로 옮기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산업계 관계자는 “수도권 출퇴근 마지노선으로 불리는 경기 중부로 조직을 옮겨 직원 이탈을 막고 외부 인재를 영입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디스플레이에서 AVP사업팀으로 이동

13일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최첨단 패키징 인력 확보를 위해 총력전을 벌이고 있다. 최첨단 패키징은 이종(異種) 칩을 쌓거나 수평으로 배치해 하나의 반도체처럼 작동하게 하는 후(後)공정이다. 칩을 작게 만들어 성능을 높이는 ‘초미세공정’에 한계가 오면서 반도체 기업들은 최근 최첨단 패키징을 통한 성능 극대화에 주력하고 있다. 인공지능(AI) 반도체의 핵심으로 꼽히는 고대역폭메모리(HBM)가 최첨단 패키징을 활용한 제품이다.

삼성전자가 인력 확보전에서 가장 적극적이다. 지난해 12월 경계현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장(사장) 직속으로 최첨단 패키징 전담 조직인 AVP사업팀을 구성했다. 임직원은 수백명 규모로 알려졌다. 올 3월엔 TSMC에서 최첨단 패키징을 맡은 린준청 씨를 영입해 AVP사업팀 개발실 부사장으로 임명했다.

신입직원 채용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9월엔 AVP사업팀이 독자적으로 주요 대학을 돌며 채용 설명회를 열었다. 팀 단위 조직이 직접 대학에서 채용 행사를 여는 건 이례적으로 평가된다. 최근에는 삼성디스플레이 같은 삼성 정보기술(IT) 계열사에서도 인력을 충원 중이다. 검증된 엔지니어를 발 빠르게 확보하기 위한 것이란 분석이다.삼성 계열사 관계자는 “맏형 삼성전자가 전략적으로 육성하는 조직이어서 인력이 옮겨가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패키징 임원 1년 새 25% 급증

SK하이닉스도 최첨단 패키징 조직에 힘을 싣고 있다. 9월 말 기준 SK하이닉스의 최첨단 패키징 조직인 ‘P&T(패키징앤드테스트)’ 소속 임원은 15명이다. 1년 전(12명) 대비 25% 증가했다. 수시로 사내 공모를 통해 P&T로 직원들을 빨아들이고 있다. 8월엔 사내 커리어 성장 프로그램(CGP)을 통해 기술 인력을 패키징 쪽으로 재배치하기도 했다.

오는 20일까지 진행되는 경력직 채용의 주요 타깃도 최첨단 패키징 인력 확보다. SK하이닉스는 채용 대상 28개 직무 중 16개의 주요 수행 업무로 ‘패키징 개발’을 명시했다. 차세대 패키징 기술로 꼽히는 ‘팬아웃웨이퍼레벨패키징(FOWLP)’, 엔비디아에 HBM 납품을 계기로 중요성이 커진 ‘2.5D 시스템인패키징(SiP)’ 개발 인력 충원이 대표적이다.

○패키징 전문업체 인력 이탈로 몸살

국내 간판 반도체 기업의 최첨단 패키징 인력 확보전은 상당 기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AI 반도체 시대를 맞아 여러 칩을 패키징해 데이터 학습·추론 능력을 극대화하는 기술에 대한 중요성이 계속 커지고 있어서다. 최첨단 패키징 산업도 급성장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욜인텔리전스에 따르면 2022년 443억달러 규모였던 최첨단 패키징 시장은 2028년 786억달러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패키징 인력 블랙홀이 되면서 OSAT(외주반도체패키지테스트)로 불리는 앰코, 스태츠칩팩 등 외국계 패키징 전문 업체는 인력 이탈로 몸살을 앓고 있다. OSAT 기업 관계자는 “공들여 육성한 3~4년차 대졸 신입 엔지니어들이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한국 반도체 대기업으로 이탈하는 경우가 늘었다”며 “인력 관리에 비상이 걸렸다”고 전했다.

황정수/김익환/최예린 기자 hjs@hankyung.com